[해설] 산화전극/환원전극

다음 문장을 번역해 보자.

In a primary battery, the cathode is always the positive electrode.

* 번역의 포인트는 cathode인데 사전이나 학술용어를 참조하면 ‘음극’이라는 용어로 주로 번역되는 말이다. ‘positive electrode’는 ‘양의 전극’(양극)이므로 번역하면 이런 문장이 된다.

1차전지에서 음극은 항상 양극이다.

왜 모순적인 내용이 돼버렸을까? ‘cathode = 음극’이 아니기 때문이다. cathode는 전자를 받아들이는 반응(환원)이 일어나는 전극(전기의 출입구)을 가리키는 것으로 ‘환원전극’이라고 옮겨야 적절하다. 양극이 환원전극 역할을 할 때도 있고 음극이 환원전극 역할을 할 때도 있다. cathode와 쌍을 이루는 켤레 개념은 anode다.

이 말을 창안한 사람은 마이클 패러데이인데, 위쪽으로 향하는 길과 아래쪽으로 향하는 길을 가리키는 그리스어 ἄνοδος(아노도스, ‘오르막’) κάθοδος(카토도스, ‘내리막’)를 활용해 만들었다. 서로 쌍을 이루는 켤레 개념을 표현한 것이므로 어원에 의미를 부여할 필요는 없다.

cathode가 ‘음극’이라고 잘못 번역되는 것과 마찬가지로 anode 역시 ‘양극’이라고 잘못 번역되는 경우가 많다. 올바로 옮기려면 환원의 반대 작용인 ‘산화’(전자 방출)가 일어나는 ‘산화전극’이라고 표현해야 한다. 다시 번역해보자.

In a primary battery, the cathode is always the positive electrode.
1차전지에서 환원전극은 항상 양극이다. (o)

건전지(1차전지)에 도선(전선)을 연결하면 화학 반응이 일어나면서 아랫부분인 음극에서 전자가 나와서 전선을 따라 이동하기 시작한다. 전지 안에는 산화 반응이 일어난다. 따라서 음극은 산화(전자 방출)가 일어나는 anode가 된다.

핸드폰 배터리는 충전과 재사용이 가능한 2차전지인데 핸드폰을 사용할 때는 전가가 음극에서 양극으로 이동을 하는 방전 활동이 진행되는데, 이때 음극은 전자를 방출하는 전극인 산화전극(anode)이 된다. 그런데 배터리가 다 소모되어 충전을 할 때는 외부 전력의 힘으로 전자들을 원래 방향으로 밀어넣게 되므로 전자의 이동 방향이 반대가 된다. anode 역할을 했던 음극이 이제 전자를 받아들이는 환원전극 cathode로 바뀐다.

야구 경기에서 같은 선수가 1루에 있더라도 공격(주자) 때와 수비(1루수)일 때 역할이 다른 것과 비슷하다. 양극은 cathode가 될 때도 있고 anode가 될 때도 있다. 음극은 cathode가 될 때도 있고 anode가 될 때도 있다. 따라서 cathode를 ‘음극’이라고 옮기면 안 된다.

‘positive electrode’(양의 전극)라는 용어는 전기 시대가 열리던 초창기 학자인 벤저민 프랭클린이 창안한 것으로, 전기가 물처럼 흐르는 에너지라고 간주하고 에너지가 상대적으로 높은 출발점을 양극(positive, +)으로 에너지가 상대적으로 낮은 도착점을 음극(negative, -)으로 정한 것이다. 이 역시 상대적인 개념이므로 조건에 따라 양극이었던 것이 음극이 될 수도 있다.

anode / cathode에 대한 적절한 번역어는 ‘산화전극/환원전극’이다. 학생들이 처음 배울 때 ‘산화/환원’ 개념을 모르는 상태에서 용어 먼저 받아들여야 하는 어려움이 있긴 하지만, 받아들이기 쉽다고 해서 잘못된 개념을 먼저 배우는 것보다는 훨씬 바람직하다.

전기 시대가 열리던 초창기 학자들은 진공관 양쪽에 전기를 연결하여 각종 실험을 했다. 전기를 연결하면 음극과 연결된 쪽에서 뭔가 방출되어 반대쪽으로 향해 가는데, 이 방출의 시작점을 학자들은 cathode라고 불렀다. 오늘날 사용되는 환원전극 개념과 달라서 혼란을 유발하는데, 한국어로 ‘음극’이라고 번역되면서 용어/개념 충돌이 발생했다.

과학사에서 항상 중요하게 다뤄지는 ‘Cathode Ray Tube’(진공 방전관)는 한국어 문헌에 ‘음극선관’이라고 표현되기 때문에 ‘cathode = 음극’이라는 선입관이 생기게 되었다. (대안: ‘크룩스관’ ‘진공 방전관’) 대한화학회에서 “cathode = 음극, anode = 양극”으로 용어를 통일시켰는데 이것은 더 큰 실수였다. 초창기 번역 혼란을 바로잡을 기회를 놓치고 오개념을 확산시키는 데 앞장선 격이 되었다. cathode가 ‘음극’으로 번역되는 탓으로, 고등학교 물리/화학 교사 중 25퍼센트 정도가 “cathode = 음극”이라고 잘못 알고 있거나 그 개념을 정확히 이해하고 있지 못하다는 연구 보고가 있다.

일단 cathode를 더 이상 ‘음극’이라고 표현하지 않는 일부터 시작해야 한다. 그런 다음에 가장 적절한 대안을 찾아야 한다. 기존에 사용되던 ‘음극선관’은 ‘크룩스관’처럼 고안자의 이름을 따서 부르면서 사용 빈도를 낮춰가고, cathode는 ‘환원전극’ anode는 산화전극이라고 고쳐 쓰는 방식이 무난해 보인다. 그러면 어느 시점에서 모든 모순이 제거될 것이다. 모순이 발견되었을 때 바로잡는 것, 학자들(학술 번역자들)이 해야 할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