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념 정리] 플라톤의 〈정치가〉 편에서 “대각선”의 의미
플라톤의 <정치가>는 1) 정치가의 통치 대상과 2) 바람직한 정치가의 역할은 무엇인지 다루는 대화편이다.
대화편은 다음 두분으로 구성돼 있다.
1. 정치가는 인간 무리를 돌보고 양육한다.
2. 정치가의 역할은 서로 다른 속성들을 연결하고 묶는 일이다.
현대 독자들에게 낯선 사례들이 많이 나오기는 하지만, 내용 자체가 난해하지는 않다. 한 고비만 넘기면 나머지는 어렵지 않기 때문에 모든 내용을 충분히 이해할 수 있다. 그 이해하기 어려운 한 고비는 266a ~ 266b(플라톤 전집 편집자인 스테파누스가 붙인 쪽번호, 숫자는 해당 쪽이고 로마자는 단락 순서)에 나온다.
어려운 대목이 나오기 전까지 내용은 대략 다음과 같다.
정치가는 세상 모든 존재와 모든 일에 관여하지는 않는다.
→ 정치가는 일단 무생물이 아닌 생물에, 특히 동물에 관여한다.
→ 수상 동물보다는 육상 동물에 관여한다.
→ 개별 생명체보다는 유순하게 무리짓는 동물 양육에 관여한다.
→ 무리짓는 동물 중에 뿔이 없는 종에 관여한다.
→ 뿔이 없는 종 중에 이종교배가 아닌 동종교배를 하는 종에 관여한다.
→ 이렇게 나누었더니 돼지 무리와 인간 무리 두 종만 남는다.
→ (이제 이 둘을 구분하는 기준은 무엇이 돼야 할까?)
266a ~ 266b 해당 본문을 살펴보자. (번역본: 김태경 옮김, <정치가>(한길사))
젊은 소크라테스: 우리는 이 둘을 무엇에 의해 나눌까요?
손님: 그것에 의해 테아이테토스와 자네까지도 의당 나눈 것이네. 왜냐하면 자네들은 기하학에도 밝으니까 말이야.
젊은 소크라테스: 그건 무엇인데요?
젊은 소크라테스: 그야 대각선이지, 다시금 대각선의 대각선이기도 하네.
젊은 소크라테스: 무슨 뜻으로 하는 말씀입니까?
손님: 우리 인간의 부류가 지닌 성향은 본래 걷는 데 있어서 ‘2피트의 근(√2)인 대각선’과 다르지 않은가?
젊은 소크라테스: 다르지 않습니다.
손님: 게다가 나머지 부류의 성향은 다시금 근과 관련해서, 그게 본래 2피트의 제곱의 근(√4)이라면 또한 우리의 대각선의 대각선이기도 하네.
젊은 소크라테스: 그야 물론이죠. 더구나 저도 선생님께서 밝히기를 바라는 것을 대충 이해하게 된 것 같군요.
이해하기가 쉽지 않다. 일단, ‘대각선’이 중요하다는 점은 분명하다. ‘근’의 개념이 왜 나왔는지 맥락을 이해해야 한다. ‘대각선의 대각선’이 무엇을 의미하는지까지 알면 충분할 것 같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이족 보행’(인간)과 ‘사족 보행’(돼지)의 차이인데, 인간 속성과 관련된 2라는 수와 돼지 속성과 관련된 4라는 수를 비교하면 차이가 드러난다. 돼지 무리는 자연수를 이해하듯 우리가 이미 잘 알고 쉽게 파악 가능한 존재인 반면, 인간 무리는 무리수처럼 풀리지 않는 신비로 가득찬 존재라는 맥락을 알면 모든 것이 퍼즐처럼 맞춰진다.
조금 더 이해하기 좋게 의역해보았다.
젊은 소크라테스: 그러면 돼지와 인간 무리는 어떤 기준으로 나뉘나요?
손님: 기하학에 밝은 자네들에도 익숙한 개념으로 나눌 것이네.
젊은 소크라테스: 무엇입니까?
손님: 대각선이네. 2족보행을 하는 인간 무리는 2라는 대각선과 관련이 있고, 4족보행을 하는 돼지 무리는 4라는 대각선과 관련이 있다네. 그리고 그 4라는 수는 인간의 숫자인 2와 관련이 있지.
젊은 소크라테스: 무슨 뜻인지요?
손님: 인간은 본성상 두 발이 대각선을 이루며 걷지 않는가? 그러면 한 변의 길이가 1인 정사각형의 대각선 길이는 2의 제곱근이 돼야 할 걸세. (그 수가 뭔지 정확히 표현할 수는 없지만 말일세.)
젊은 소크라테스: 맞습니다.
손님: 다른 무리인 돼지는 4족 보행을 하는데, 대각선의 길이가 4일 때 정사각형의 한 변의 길이는 2의 제곱근에 해당한다네. 즉, 인간의 오묘한 숫자로 돼지의 단순한 숫자를 표현 가능한 것이지.
젊은 소크라테스: 그렇군요. 저도 선생님께서 밝히고자 하는 것을 어렴풋이 알 것 같습니다.
한 변이 1인 작은 정사각형 4개가 붙어 있다. 그 한 정사각형은 변의 길이가 1이면서 대각선은 √2를 이룬다. 무리수라는 신비한 수가 된다. KLMN을 네 꼭지점으로 정사각형을 다시 만들 때는, 방금 대각선이었던 √2가 정사각형의 한 변이 된다. 그때 대각선은 √4가 된다. 즉, 자연수라는 단순한 수 2가 된다.
설명을 덧붙이면,
“2족 보행을 하는 인간의 속성은 2의 제곱근처럼 파악하기 어렵다네.”
“4족 보행을 하는 돼지의 속성은 4의 제곱근처럼 파악하기가 쉽다네.”
“정치가는 모름지기 그렇게 다루기 어려운 신비한 인간 무리를 다스리는 자이네.”
플라톤의 학당 아카데미아 정문에는 “기하학을 모르는 자는 들어오지 말지어다.”라는 문구가 적혀 있었다고 전해진다. (구전되는 이야기라서 출처는 따로 없다.)
<정치가> 편의 이 대목이 까다로운 이유는 그 시대에 아직 정립되지 않았던 ‘무리수’의 개념 때문이다. 무리수는 1, 2, 3, 4… 같은 자연수의 비(분수, 유리수)로 표현할 수 없는 수다. 피타고라스 학파에서 처음 발견됐다. 한변이 1인 정사각형을 대각선으로 자르면 직각삼각형이 되는데 피타고라스 정리에 따르면 대각선의 길이가 무리수인 √2가 된다. 피타고라스 학파의 토대는 “우주 만물은 모두 비례 원리로 구성된다.”라는 것이었다. 그런데 피타고라스 정리가 모든 직각삼각형에 적용되는 진리라면 그 수(√2) 역시 존재해야 한다. 모순에 빠진 피타고라스는 비례(유리수, 분수) 개념으로 도무지 해명할 수 없는 무리수를 부정하기에 이른다.
한 변이 1인 정사각형의 대각선은 분명히 존재하는 수이지만 그것을 기존의 수로는 표현할 방법이 없었기에 ‘제곱하여 자연수가 되는’처럼 ‘말’로 표현할 수밖에 없었다. 플라톤은 (이데아처럼) 분명히 완전한 형상으로서 존재하지만 우리가 쉽게 이해는 할 수 없는 신비한 그 수를 인간의 오묘하고 신비한 본성의 상징으로 본 듯하다. 2족 보행을 하는 인간이 만드는 그렇게 신비한 존재다. 반면 4족 보행을 하는 돼지는 항상 인간의 이해 범위 안에 있다.
정치가의 통치 대상인 인간이 그러하기에 정치가의 역할 역시 어렵고 심오해진다. 플라톤은 직조술로 예를 들면서 왕도적 정치가의 일에 관해 말한다.
- 용기와 절제는 각기 훌륭함의 한 부분이다.
- 낯설게 들리겠지만 이 둘은 서로 대립하고 반목한다.
- 민첩하고 용기 있다고 말하거나, 침착하고 점잖다고 말하는 칭찬들은 상황에 따라 비난이 대상이 된다.
- 우리는 저마다 친근한 것에 끌리기 때문에 모든 낯선 것을 싫어한다.
- 이런 끊임없는 불일치가 나라의 모든 우환이 된다.
- 지나치게 절도만 차리는 사람들은 언제나 평화만 추구하므로 공격적인 자들의 노예가 되기 쉽다.
- 지나치게 용감한 사람들은 나라를 항상 전쟁 상태로 몰아간다.
- 왕도적 치술은 관할하는 기술이다. 이렇게 서로 대립하는 성향들을 묶고 엮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