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념 정리] 일상에서의 오전 12시 개념과 민법에서의 오전 12시 개념

[영상] “오전 12시/오후 12시” 구별하기 (1) 일상 용어편
[영상] “오전 12시/오후 12시” 구별하기 (2) 법률 용어편

늘 헷갈리는 ‘오전12시/오후12시’를 잘 파악하려면, 하루 24시간을 반으로 나누어 앞 절반은 오전, 뒤 절반이 오후라고 생각하면 된다. 오전 12시에 시작하는 하루의 앞부분이 있고, 오후 12시에 시작하는 하루의 뒷부분이 있다. 반을 나눈 다음에 숫자가 있는 벽시계를 떠올리면서 항상 시작은 12시가 기준이라는 걸 기억하면 된다. 시계에는 0이라는 숫자가 없다. 그래서 12가 항상 출발점이다.

0부터 시작한다고 보는 관점이 민법상의 시간 해석이고, (시계를 안 본다.)
12부터 시작한다고 보는 관점이 우리의 일상적 해석이다. (시계를 본다.)

그래서 우리는 하루가 시작되는 12시(자정)를 하루의 앞부분인 오전이 시작되는 시점으로 보기에 ‘오전 12시’라는 (모순적인) 표현을 편의상 쓰는 것이다.

하루를 파악할 때 24시간으로 쪼개서 보는 방식이 있고, 12시간으로 쪼개서 보는 방식이 있다. 24시간제에서 그날 자정은 0시다. 그날 24시는 그다음날 0시와 같다. 오전과 오후를 나누어 각각 12등분하여 보는 방식이 12시간제다.

한국을 비롯해 동아시아에서는 자, 축, 인, 묘, 진, 사, 오, 미, 신, 유, 술, 해 등 12지를 본떠서 하루를 12등분한 다음 각 시간대에 12지의 이름들을 부여했다. 그 중에서 오후 11시부터 오전 1시에 해당하는 시간대가 ‘자시’다. 이 자시의 정중앙을 ‘정자’(현재는 ‘자정’)라고 부른다. 오전 11시부터 오후 1시에 해당하는 시간대가 ‘오시’다. 이 오시의 정중앙을 ‘정오’라고 부른다. 하루가 바뀌는 기준이 자정이고, 하루를 반으로 나누는 기준이 정오다. 정오의 앞 시간대가 ‘오전’이고 정오의 뒤 시간대가 ‘오후’다. 라틴식 표기는 a. m. (ante meridiem, 정오의 앞)과 p. m. (post meridiem, 정오의 뒤)이다.

기준점인 자정과 정오는 오전도 아니고 오후도 아니지만, 밤이 먼저 오고 그다음에 낮이 오므로, 편의상 밤 12시인 자정을 오전에 포함시키고 낮 12시인 정오를 오후에 포함시킨다. 오후 12시가 낮 12시인지 밤 12시인지 헷갈리고, 12:00 am이 밤인지 낮인지 헷갈릴 수밖에 없는 것은 이렇게 애초에 이분법으로 나눌 수 없는 개념을 이분법으로 나눴기 때문이다.

오후 11시 59분(11:59 pm)의 1분 뒤는 오전 12시 00분(12:00 am)이 된다.
오전 11시 59분(11:59 am)의 1분 뒤는 오후 12시 00분(12:00 pm)이 된다.

1999년 12월 31일 오후 11시 59분의 1분 뒤는 2000년 1월 1일 0시가 된다. 따라서 하루를 반으로 나누는 12시간 표시에서도 날이 바뀌는 시점을 기준으로 오전/오후, am/pm도 함께 바뀌는 게 합리적이다. 헷갈리지 않게 하는 대안 중 하나는 애초에 am/pm 나누지 말고 24시간제를 사용하는 것이겠지만, am/pm 구분도 편리한 점이 많기 때문에 일부러 버릴 필요는 없고 잘 병행하여 쓰면 좋다. 하루를 둘로 나눠서 앞부분과 뒷부분이 있다고 생각하고, 항상 12시를 기준으로 시작한다고 생각하면 된다. 오전으로 시작하는 앞부분(12:00 am)이 먼저 있고, 오후로 시작하는 뒷부분(12:00 pm)이 그다음에 온다고 여기면 된다.

‘오전/오후’라는 표현 자체는 지금까지 써온 대로 그냥 편하게 계속 쓰면 된다. 다만, 뜻에 어긋나는 ‘오전 12시’ ‘오후 12시’ 이 두 표현은 불가피한 경우에만 예외적으로 쓰되, ‘자정’과 ‘정오’라는 원래 개념에 딱 맞는 표현인 ‘밤 12시’와 ‘낮 12시’라고 쓰고자 노력하는 것이 더 좋겠다.


참고로 민법에서 따지는 오전 12시, 오후 12시 개념은 우리가 살펴본 일상적이며 보편적인 용법과 다르다.

일상에서 우리는 지금이 하루의 ‘어디쯤’인지 ‘상대적인 위치’를 알기 위해 시계를 본다.그래서 전체 시각이 둥그렇게 표시된 아날로그 시계가 시간의 대략적 위치를 파악하기에는 숫자만 나오는 디지털 시계보다 훨씬 편하다. 현재의 시간적인 위치를 아는 것이 목적이므로, 시계에 나오는 것처럼 12 다음에 1이 오는 게 자연스럽다. 오전 12시 다음에 오전 1시가 되어도 괜찮은 것이다.

민법의 목적은 당사자들의 권리를 따져서 손익을 계산하는 것이므로, 계약 당사자들은 시간이 ‘얼마나’ 흘렀는지 그 ‘양’을 재기 위해 시간을 검토한다. 그래서 무게나 온도, 높이 등을 잴 때처럼 0 다음에 1이라는 눈금이 오는 게 자연스럽다. 오전 0시에서 시작하여 그다음에 오전 1시가 온다고 본다.

민법에서 ‘오전 12시’는 새로운 날이 시작되고서 0시부터 12시간만큼 양이 증가한 시점을 가리킨다. 우리가 아는 정오(낮 12시, 오후 12시)가 민법에서 오전 12시다. 이와 마찬가지로 우리가 아는 자정(밤 12시, 오전 12시)가 민법상으로는 ‘당일 오후 12시’(익일 오전 0시)다.

일상적 표현과 법률적 표현의 의미가 서로 어긋나지 않도록 하는 것이 물론 가장 좋다. 그런데 민법에서는 시간의 객관적 측정이 더 중요하므로 24시간제로 시간 표현을 다루는 것이 더 나을 것이다. 복잡하게 규정하고 복잡하게 해석할 것 없이 ‘법률 문서는 원칙상 24시간제를 따른다’라고만 규정됐다면 훨씬 간단했을 것이다. 여기에 ‘오전’ ‘오후’ ‘정오’ ‘자정’ ‘낮 12시’ ‘밤 12시’ 같은 표현을 필요에 따라 적절하게 사용하면 문제될 것이 전혀 없다. 문제는 애초 잘못된 표현인 ‘오전 12시’와 ‘오후 12시’를 객관성이 생명인 법률 영역에서 사용한다는 점이며, 더 큰 문제는 일상적 용법과 정반대뜻으로 사용한다는 점이다.

법률 상담 게시판에 “계약서의 오후 12시는 정오인가요, 자정인가요?” 하는 질문들이 꾸준히 올라오는 것만 봐도, 문제점을 쉽게 알 수 있다.

민법에서 하루는 오전 0시에서 시작하여 오후 12시에 끝난다. 만 나이를 따지듯, 0시에서 시작해 12시간을 다 채워야 하루의 반이 종료되는 것으로 보기 때문에 낮 12시(우리가 오후 12시라고도 흔히 부르는 시간)가 되는 지점까지를 오전으로 본다. 따라서 정오는 민법에서 오전 12시이면서 오후 0시다. 오후 12시 30분은 30분이 경과된 오후, 즉 오후 0시 30분이라고 표현한다.

24시간제를 기본으로 하되 여기에 ‘오전/오후’라는 12시간제 표현을 함께 사용하면서 여러 혼란이 빚어진다. 가령 계약 종료 시간이 금요일 오후 12시라면 낮 12시가 아니라 밤 12시 자정에 계약이 끝나는 것이다. ‘오후 12시’라는 애매하면서도 생소한(일상적 뜻과 반대인) 표현을 붙이니까 혼란이 발생하는 것은 당연하다. 민법을 포함하여 각종 법률 문서와 계약 문구 등에 24시간제 표기를 원칙으로 하되, 의미 혼동의 여지가 전혀 없으면서 개념 파악을 도와줄 수 있는 ‘오전’ ‘오후’ ‘정오’ ‘자정’ ‘낮 12시’ ‘밤 12시’ 등을 적절히 함께 사용하면 좋다. ‘오전 12시’와 ‘오후 12시’라는 애매모호한 표현은 법률 영역에서 사용하지 않는 것이 바람직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