씨줄과 날줄이라는 상징
베를 짤 때 세로실인 날줄을 經(경)이라고 하는데 실을 뜻하는 부분과 베틀을 형상화한 부분이 합쳐졌다. 가로실인 씨줄을 한자로는 緯(위)라고 하며 왼쪽에 역시 실 사변이 붙어 있다. 지도에 표시된 경도와 위도 개념도 베틀과 똑같아서 경도는 세로줄, 위도는 가로줄에 해당한다.
사건의 자초지종을 캐물을 때 ‘경위를 밝히다’라는 표현을 쓰는데 이때의 ‘경위’ 역시 날줄과 씨줄에 해당하는 한자를 쓴다. 실마리를 풀어헤쳐서 원래 사건을 파악한다는 뜻, 즉 과정을 보여준다는 뜻이다. 다만, 아주 비슷한 표현 중에 ‘경위가 분명하다’라는 말이 있는데, 이때는 실 사 변이 아니라 삼수(물 수) 변을 써서 涇渭라는 한자를 쓴다. 헷갈리는 두 개 중에 무엇이 옳고 그른지 분별하고 판단한다는 뜻이다.
중국의 징수이(涇水) 강의 물은 평소 탁하고 웨이수이(渭水) 강의 물은 평소에 맑다고 전해진다. 그래서 둘을 비교하면 쉽게 구별된다고 하여, 징수이강의 ‘징’이라는 글자와 웨이수이강의 ‘웨이’라는 글자를 딴 ‘경위분명’(涇渭分明) 같은 관용어가 생겼다.
석가모니와 불교 선지자들의 깨달음을 기록해둔 성스러운 문헌들을 산스크리트어로는 수트라(सूत्र)라고 하는데 중국어(한자)로는 ‘경’이라고 옮겨졌다. ‘수트라’가 원래 옷감을 짤 때 재료가 되는 실이나 띠를 의미하므로 이를 날줄을 의미하는 ‘경’으로 옮긴 것은 매우 절묘한 번역이다.
플라톤의 대화편 <정치가>에는 정치가의 가장 중요한 역할이 사회에서 서로 대립하는 사람(집단)을 서로 조화롭게 연결하는 일이라며, 씨줄과 날줄을 서로 잘 엮어 삶에 필요한 옷감을 만들어내는 직조공(織組工)에 비유했다. 해당 구절의 내용을 요약하면 이렇다.
직조술의 예를 들어 왕도적 엮음에 관해 말해 보겠다. 용기와 절제는 부분으로 보면 제작기 훌륭한 덕목이지만, 전체로 보면 서로 대립적이다. 용기만 앞세우면 나라는 전쟁 상태가 된다. 절제만 앞세우며 평화만 추구하면 공격을 받기 십상이다. (308A) 정치가의 통치술은 서로 대립하는 성향들을 묶고 엮는다. 영원한 부분을 신적인 끈으로 묶고, 불완전한 부분을 인간적인 끈으로 묶는다. 신적인 끈으로 타고난 본성들을 잘 연결해야 하고, 인간적인 끈으로 서로 다른 성향들이 만나 자손을 낳게끔 해야 한다. 두 부류가 상부상조해야 국가가 제구실을 한다. 훌륭한 직조공은 용기 있는 사람들과 절제 있는 사람들의 품성을 한데 엮어 천으로 짠다. 그렇게 짠 천으로 모든 국가 구성원을 감쌀 때, 국가는 행복해질 수 있는 잠재력을 지니게 된다. (311C)
베틀은 실로 옷감을 짤 때 사용하는 기계로서, 세로줄인 날줄을 걸어놓고 북이라는 도구를 활용해 씨줄을 가로로 왔다갔다 하면서 서로 엮는 원리로 작동된다. 세로실과 가로실이 서로 겹쳐지면서 옷감이 되는 이러한 방식이 정치가의 역할뿐 아니라 여러 다양한 상황에서 상징적으로 표현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