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수 표기에 자유를 허하라.
대한민국은 국제도량형총회 미터협약을 따릅니다. 계량에 관한 법률 제6조에 따르면, 현재 아파트를 비롯해 면적을 표기할 때는 공식적으로 미터법만 사용 가능하고, 상업 활동에서 평수를 표기하는 것은 불법입니다. 아파트 분양 광고나 홍보물에는 평수 표기를 못 합니다.
그런데 이건 매우 잘못된 규정 같습니다. 일반인들이 접하는 홍보물이나 광고, 일상 표현에서는 미터법 면적 개념보다 ‘평수’ 개념이 훨씬 이해하기 좋기 때문이죠.
여러분은 59제곱미터가 어느 정도 면적인지 대강 가늠할 수 있나요? 언뜻 개념이 안 설 것입니다. 그러면 돗자리 열여덟장을 모두 펼쳤을 때 넓이는 대강 가늠할 수 있나요? 아마 대강 그려볼 수 있을 겁니다. 59제곱미터는 18평으로서 돗자리를 18장 정도 펼칠 수 있는 면적입니다.
조선시대의 공식 단위였던 1척(尺)은 한 자로서 약 30센티미터입니다. 여기에 6을 곱한 단위가 1간(間)입니다. 180센티 정도 되죠. 한 평(坪)은 가로 1간, 세로 1간으로 된 면적을 가리킵니다. 사람 하나가 누울 수 있는 넓이를 표현하기 위한 단위였습니다. 초가삼간은 방 한 평, 마루 한 평, 부엌 한 평으로 구성된 세 평짜리 작은 집입니다.
100m, 1km처럼 일반인들에게 미터는 길이나 거리를 가늠할 때는 좋지만, 면적을 가늠할 때는 매우 불편하고 어렵습니다. 면적으로 표시된 제곱미터 수치를 보고 몇 곱하기 몇으로 된 것인지, 그러니까 가로가 얼마고 세로가 얼마인지 알아내는 건 매우 까다로운 일이기 때문입니다. 100제곱미터인 경우 가로 10미터 x 세로 10미터일 테니까 이해하는 게 어렵지 않지만 제곱수가 아닌 대부분 경우에는 계산이 무척 까다롭습니다. 59는 가로 몇 세로 몇 미터를 곱한 걸까요? 7×7의 49이고 8×8의 64이니까 그 중간 어디쯤이겠네… 하고 한두 번 더 계산을 해야 합니다. 돗자리 18장 깔 수 있는 정도, 일반인은 그렇게 이해하는 게 훨씬 좋죠. 평수 표기의 장점이 그것입니다. 매우 직관적이죠.
보통 사람에게는 전용면적 84제곱미터보다는 전용면적 25평이 면적을 이해하기는 더 편하고 좋습니다. 넓은 토지 면적을 설명할 때 축구장 몇 개라고 비유적으로 설명하는 것과 매우 비슷합니다. 미터와 같은 1차원 선의 개념으로 2차원 면의 규모를 이해시키려고 하니까 어려운 겁니다. 면의 개념은 면으로 이해시키는 게 자연스럽습니다. 그래서 돗자리 한 장의 넓이, 평수 개념이 유용한 것입니다.
미터법으로 도량형을 통일하는 것은 장점이 많지만, 일상 영역에까지 미터법만 강요하는 것은 득보다 실이 많습니다. 평수 개념처럼 이해하기도 좋은 표현 방법을 법으로 금지할 이유가 전혀 없습니다. 설계나 계약과 관련한 문서에는 미터법으로 통일하되, 광고나 안내문처럼 일상생활과 관련된 영역에서는 미터법과 평수 표시를 자유롭게 선택하여 할 수 있도록 자율권을 주는 것이 좋다고 생각합니다.
* [참조] 조선의 단위 개념: 건축사 김법구 칼럼 “[시론] ‘평’ 단위 표기가 존재해야 하는 이유”(대한경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