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약] 에른스트 카시러(Ernst Cassirer), 최명관 옮김, «인간이란 무엇인가», 창, 2008.

* 인간의 자기 인식 위기

자기 인식은 철학적 탐구의 최고 목표라고 인정된다. 회의적 사상가들은 사물의 일반원리를 불신했으나 자기 인식의 가능성을 부인하지는 않았다. 회의론자는 자기 인식이 자아 실현의 선결 요건이라고 선언한다. 심리학 지식의 진보는 이러한 데까르뜨적 내성법을 받아들일 수 없었다. 내성은 인간 생활 가운데 경험이 얻을 수 있는 적은 부분만을 우리에게 드러내 주기 때문이다. 플라톤과 달리 아리스토텔레스는 인간의 감각을 중시하여, 인식의 세계를 생명으로서 설명하고자 했다. 인간은 물질적 환경에 의존하고 있다. 우리는 외향적 견해를 수반하고 이것을 보충하는 삶에 대한 내향적 견해를 본다. 우주에 대한 신화적 설명들 속에는 언제나 우주론과 나란히 인간론이 있었다.

자기 인식은 인간의 근본적 의무다. 가치의 변화는 철학적 사유의 일반적 진화에도 들어맞는다. 밀레토스 학파의 자연 철학을 넘어서 피타고라스 학파의 수리철학, 그리고 엘레아 학파의 논리 철학 인식과 더불어, 우주론적 사상에서 인간론적 사상으로 향하는 경계에 헤라클레이토스의 사상이 나왔다. 그는 인간의 비밀을 연구하지 않고는 자연의 비밀을 밝힐 수 없다 확신했다. 소크라테스에 이르러 ‘인간이란 무엇인가’ 하는 문제가 뚜렷해졌다. 그는 선, 정의, 절제, 용기 등 본질을 정의하고자 하지만 절대 인간을 정의하려 하지는 않는다. 소크라테스의 반어법, 즉 소극적 답변이 인간에 대한 적극적 통찰을 준다.

우리는 물리적 사물 탐구 방법으로는 인간의 본성을 찾을 수 없다. 인간은 오직 의식으로써만 기술되고 정의될 수 있다. 인간을 이해하려면 인간과 실제 대면해야 한다. 지적 독백으로 여겨진 철학은 변증법적 사고, 즉 대화로 변모했다. 진리는 본래 변증법적 사고의 소산이다. 그러므로 묻고 답하는 주체들이 협동하지 않고서는 얻어질 수 없는 사회적 행동의 산물이다. <인간이란 무엇인가?>라는 물음에 대한 간접적 답을 얻게 된다. 그것은 ‘인간이 쉴 새 없이 자기 자신을 찾는 피조물’이라는 점이다.

소크라테스와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는 인간의 본질을 찾기 위해, 인간 존재로부터 모든 외적, 우연적 특성을 먼저 제거해야 한다는 확신을 공유했다. 인간 본질은 바깥 환경에 의거하지 않고 자신에게 부여하는 가치에 의존한다. 자기 추구 요구는 스토아 철학에서도 인간의 특권이요 근본 의무이다. 우리가 질서를 파악하는 건 감각 세계에서가 아니라 판단력에 의해서이다. 스토아 학파의 인간관이 지닌 장점은, 인간과 자연의 조화, 자연으로부터의 인간의 도덕적 독립 감정 둘 다 인간에게 준다는 점이다. 인간은 자신이 우주와 더불어 완전한 균형 속에 있음을 발견한다. 스토아 사상에는 그리스도교의 이상과 타협할 수 없는 문제가 있다. 스토아 학파가 강조한 인간의 절대적 독립이 그리스도교 이론에서는 인간의 근본적 부덕이기 때문이다. 이 대립은 근대가 시작할 무렵에도 여전했다. 이 문제를 뚜렷히 부각한 것은 아우구스티누스다. 이성은 절대로 단독으로는 자체 능력을 가지고 본래로 돌아갈 수 없으며 설사 그렇다면 그것은 신적 은혜의 힘에 의해서다. 이것이 아우구스티누스에 의해 이해되고 중세 모든 사상 속에 이해된 인간학이다. 토마스 아퀴나스도 이 근본 교리에서 벗어나려고 하지 않았다.

근대 초에 이러한 인간학에 활력을 준 사상가 빠스깔이 나타났다. 그에게는 근대 문학과 근대 철학의 모든 장점이 결합돼 있다. 그는 <기하학적 정신>과 <예민한 정신>을 근본적으로 구별했다. 기하학적 정신은 훌륭한 추론 방법이지만 모든 대상이 이렇게 다루어질 순 없다. 섬세함과 무한한 다양성으로 인해 논리적 분석을 허용치 않는 사물들이 있다. 모순이야말로 인간 실존의 진정한 요소다. 인간에게는 <본성>이라 할 수 있는 것이 없다. 인간은 존재와 비존재의 이상한 혼합물이다. 인간성의 비밀로 나아가는 길은 종교뿐이다. 종교는 인간의 신비를 밝히지 않는다. 도리어 이 신비를 심화한다. 우리가 종교로부터 받는 유일한 답은 스스로 숨는 것이 하나님의 뜻이라는 것이며, 따라서 종교는 부조리의 논리가 된다. 코페르니쿠스의 태양중심설은 근대의 새로운 인간학을 위한 건전하고 과학적인 기초다. 세계와 인간의 운명을 지배하는 섭리가 있다는 기존의 근본 전제는 새로운 우주관에 의해 의문시된다. 자신이 사는 생활 공간을 표준으로 삼으려는 인간의 편협한 사고는 포기돼야 했다.

브루노의 사상에서 무한은 단순히 부정이나 한정을 의미하지 않고, 오히려 인간 이성에 대한 커다란 자극이 된다. 데카르트, 라이프니츠, 스피노자는 이성을 인간과 우주의 연결자로 삼았다. 계몽주의의 대표자 디드로는 이러한 수학적 이성(계몽적 지식의 기반)의 절대성을 의심한다. 일반적 원리들의 가정보다 사실들의 관찰에 기초를 두는 과학이 발생할 것이라 예측했다. <종의 기원>이 출판된 후 생물학이 수학보다 우위에 서고, 질료로 유기적 자연을 이해하게 되었다. (아리스토텔레스의 목적론 쇠퇴) 자연 도태가 무상의 힘이라 간주한 진화론은 생명들 간의 한계를 제거했다. 이뽈리트 텐느는 이를 문화 영역에 적용하고자 했다. 그럼에도 인간의 ‘충동’은 해명되기 어려웠는데 니체, 프로이트, 마르크스 등은 이를 자신들이 제시한 틀에 맞추려 노력했다. 인간에 대한 현대 이론은 완전한 무정부 상태로 돌입했다. 사실들이 풍부하다 하여 사상도 풍부한 건 아니다. 개념을 통일하기 위해 실마리를 찾는 노력이 필요하다.

* 인간성에의 실마리

윅스퀼은 활력론의 대변자로서 생명의 자율성 원리를 옹호했다. 각 생물은 단자적 존재로 자신만의 세계를 갖는다. 심리학적 해석 대신 객관적이고 행동주의적인 방법에 따라야 한다. 생명의 열쇠는 해부학이다. 생명체는 일정한 메르크네츠(수용 계통)와 비르크네츠(운동 계통)을 소유하며 이는 ‘동물의 기능고리’(기본 범주)다. 이를 인간세계에 적용하려면 제3의 질적 연결 고리인 ‘상징 계통’을 고려해야 한다. 생물의 반동(직접 응답)과 인간의 반응(응답 지체) 사이에는 차이가 있다. 인간은 한갓 물리적 우주가 아닌 상징적 우주에 산다. 언어, 신화, 예술, 종교에 둘러싸여 이 매개물이 아니고서는 아무 것도 볼 수 없다. 실천 영역에서도 인간은 사실 세계에만 살지도, 욕구 세계에만 살지도 않는다.

인간에 대한 고전적 정의인 <이성적 동물>에서 언어는 이성과 동일시돼왔다. 그것은 ‘부분으로 전체를 보는 것’인 바, 개념적 언어와 더불어 정동적 언어가 있으며, 논리적 언어와 더불어 시적 상상의 언어가 있기 때문이다. 칸트가 체계를 세운 <순수 이성 한계 안의> 종교도 합리적 추상일 뿐이다. 인간을 이성적 동물이라 정의한 사상가들은 인간 본성을 경험으로 설명하고자 하지 않았다. 인간의 풍부함을 이해하려면 <상징적 동물>로 정의해야 한다. 그러면 인간에게 열린 새로운 길을 이해할 수 있다.

* 동물의 반동에서 인간의 반응에로

상징은 인간 고유의 특징인가? 상징성과 사실을 연결하려는 시도는 대개 형이상학적 논란으로 변질되었다. 파블로프, 울프 실험은 동물에게도 상징적 과정이 일어난다는 점을 밝혔다. 여키스는 동물이 ‘인간의 상징 과정의 선행자인지도’ 모른다고 적었다. 조르쥬 레베스는 ‘동물 언어 문제’가 동물심리학의 기초 위에서는 충분히 해결되지 못한다고 결론내렸다. 경험적 사실의 올바른 논리적 출발점인 ‘말의 정의’가 필요하다. 최초의, 가장 근본적인 말의 지층은 정동의 언어다. 이는 침팬지의 의사 표현에도 드러나지만 객관적 기호가 존재하지 않는다. 따라서 ‘명제적 언어’와 ‘정동적 언어’가 인간 세계와 동물 세계의 경계표가 될 것이다. 레베스는 “말이란 인간학적 개념으로 동물 심리 연구에서 배제돼야 한다”고 했다. 신호와 상징을 구별하자. 동물 행동 속에도 제법 복잡한 신호 체계가 있다. 특정 신호에 따라 특정 행동이 유발된다. 그러나 상징은 단순히 신호로 환원되기 어렵다. 신호는 실체를 지닌 조작자(operatiors)인 반면 상징은 단지 기능적 가치를 지닌 지시자(designators)다. 신호는 물리적 존재 세계의 일부인 반면, 상징은 인간의 의미 세계의 일부다.

동물 지성에 관한 문제는 오랜 수수께끼다. 손다이크, “동물은 그것에 관해 생각하지 않고 다만 그것을 생각할 뿐이다.”(메타적 사고는 인간의 속성) 동물은 실제적인 상상력과 지성을 갖는 반면, 오직 인간만이 새로운 형태인 ‘상징적인 상상력과 지성’을 발전시킨다. 개인의 지적 발달에서도 실제적 태도에서 상징적 태도로 전이가 일어난다. 이는 헬렌 켈러 사례에서도 드러난다. 설리반이 자신의 교육에서 제2의 큰 전진이라 말한 것은 헬렌 켈러가 ‘물건마다 이름이 있으며, 수화 문자는 알고자 하는 모든 것에 대한 열쇠’란 점을 깨달은 시점이다. 모든 것에 이름이 있다는 것을 이해한다는 것은, 상징이 인간 사고 전 분야를 감싸는 보편적 적용성의 원리라는 점을 이해한다는 것이다. 로마 브리지만도 헬렌 켈러와 마찬가지로 언어의 상징성을 이해하는 순간에 도달했다. 이는 인간 존재가 세계 구성에 있어 감각적 소재의 질에 의존하지 않음을 보여준다. 인간 문화는 지적, 도덕적 가치들을 재료에 의존하지 않고, 형식과 건축적 구조로 얻는다. 인간은 빈약한 재료를 갖고도 상징 체계를 만들 수 있다.

1)보편적 적용성은 인간의 상징성의 가장 큰 특성이다. 그러나 상징은 보편적이기만 한 것이 아니라 또한 극히 가변적이다. 동일한 의미가 여러 언어로 표현된다. 진정한 인간의 상징은 제일성이 아니라 2)변통성을 특징으로 삼는다. 로라 브리지만은 동일 인물을 관계 변화에 따라 달리 불러야 한다는 점을 깨달았다. 상징성의 또 하나 중요한 특징은 3)관계적 사고가 상징적 사고에 의존한다는 점이다. 감각주의의 여러 학설은 감각 자체가 고립된 인상들의 단순한 묶음이 아니라는 점을 보지 못했다. 형태 심리학이 이를 보완했다. 인간은 추상적 의미에서 고찰하는 능력을 발전시켰는데 기하학이 그 전환점의 예다. 여기서 물리적 대상은 문제되지 않는다. 상징적 체계의 문제를 통찰한 최초의 사상가는 헤르더다. 4)<반성적 사고>로 언어의 성질을 설명하고자 했다. 이는 일반적 인식론이 아니고 직관에 기초를 둔 시적 초상처럼 보이지만 가장 가치있는 논리적, 심리적 요소를 내포한다. 인간의 고유한 특징은 반성을 통해 자신을 “미래로 투사”할 수 있는지 여부다.

* 인간의 공간 및 시간의 세계

공간과 시간은 모든 현실에 관여하는 틀이다. 공간과 시간이라는 조건 없이 사물은 개념을 가질 수 없다. 신화적 사고에서 시공간은 사물을 다스리고 인간과 신의 생명을 결정하는 신비한 힘을 갖는다. 유기체마다 각기 다른 시공간이 있을 것이다. 어떤 순서에 따라 배열된 높고 낮은 층이 있다. 가장 낮은 층이 ‘유기적 공간과 시간’이다. (하르트만, 존재의 층위 비교) 고등 동물에 이르면 ‘지각적 공간’이라는 새로운 형태의 공간이 발견된다. 시각, 촉각, 청각 등 여러 감각 요소들이 지각적 공간을 구성하는데, 이렇게 협동하는 양식은 감각 지각에 관한 현대 심리학에서 매우 어려운 문제다.

공간 지각의 기원 문제는 유일하지도, 중요하지도 않은 문제다. 우리는 그 대신 ‘상징적 공간’을 분석하겠다. 유기적 공간에서 인간은 여러 측면에서 동물보다 못하다. 이 결함에 대해 인간은 ‘추상적 공간’이라는 다른 재능으로 보충한다. 유물론자와 관념론자 모두 이 발견의 중대한 의의를 강조했다. 데모크리토스는 ‘공간은 비존재이지만 ‘참된 실재’를 가진다’고 말했다. 뉴턴은 ‘추상적 공간’과 ‘감각 경험의 공간’을 혼동하지 말라고 경고했다. “사람들은 공간, 시간, 운동을 감각될 수 있는 사물의 관계로만 파악한다. 그러나 학적 진리를 얻으려면 추상으로 나아가야 한다.” 추상적 공간의 관심사는 사물들의 진리가 아니라 명제들과 판단의 진리다.

하인츠 베르너, “원시인의 공간 관념은 진보된 문화를 가진 인간의 추상적 공간보다 훨씬 감정적이며 구체적이다.” 기하학적 공간에서 우리는 동질적이고 보편적인 공간을 갖는다. 인간이 우주의 통일성과 합법칙성에 도달하는 것은 이 공간을 매개로 가능하다. 원시인의 공간 체계는 도식적 모양을 가질 수 없었다. 구체적 이해만 있었지 추상적(일반화) 능력이 없었다. 위대한 진보가 바빌로니아 천문학에서 이루어진 듯하다. 포괄적 시야에서 전 우주를 포용하려는 시도가 나타났다. 바빌로니아 사람들은 상징적 대수를 발견했다. 바빌로니아 천문학은 우주에 대한 신화적 해석임에도, 구체적이고 신체적인 공간 테두리에 제한되지 않았다는 의의를 지닌다. 케플러가 나타나고서야 천문학이 점성학을 대체하고, 기하학적 공간이 신비적 공간의 자리를 차지했다.

데카르트는 ‘나는 생각한다. 그러므로 나는 있다’에서 출발한 게 아니라, <보편학>에 대한 개념과 이상에서 출발했다. 그의 이상은 해석 기하학에 기초를 둔다. 모든 공간과 관계를 수의 언어로 옮길 수 있다는 시도다. 공간 문제에서 시간 문제로 넘어갈 때도 동일한 진보가 발견된다. 칸트, “공간은 <외적 경험>의 형식이요, 시간은 <내적 경험>의 형식이다.” 물리적 세계를 체계화하는 시도는 시간 문제에서 다른 방법을 찾아야 한다. 유기적 생명의 문제를 다룰 때 우리는 화이트헤드가 <단순한 위치 선정>의 편견이라 한 것에서 우리를 해방시켜야 한다. 유기체는 단일한 순간에 정착하지 않으며, 시간의 세 양식인 과거 현재 미래는 나눌 수 없는 전체다.

19세기 생리학자 헤링은 “기억이 모든 유기체의 일반 기능으로 여겨져야 한다”고 주장했다. 자극이 가해지면 유기체에는 생리적 자국이 남는다. 이 연쇄에 의해 반작용이 결정된다. 그렇지만 인간의 기억은 이것만으로는 불충분하다. 개개 사건을 모두 포함하는 ‘계열적 순서’를 고려해야 한다. 단순한 기억 재생은 고등 생물군에도 나타난다. 중요한 것은 관념을 구성하는 과정들의 사실이 아니라 과정들의 형태다. 과거 경험에서 소여 사실들을 뽑아내는 것이 아니라 사실들을 회상하여 재수습한다. 베르그송은 «물질과 기억»에서 “기억은 깊고 복잡한 현상으로 ‘내화’와 집약을 의미한다”고 했다. 과거 생활의 모든 요소들이 상호 침투하는 것, 이것은 ‘생철학’의 주춧돌이다.

우리는 논점을 인간 문화의 현상학으로 한정한다. 기억은 과거 경험을 재구성하는 과정이다. 상상이 필요하다. 괴테는 «시와 진실»에서 공상, 허구 요소를 배제하려 하지만, 그가 추구한 진실은 흩어진 사실에 시적인 형태, 즉 상징적 형태를 부여함으로써만 발견될 수 있었다. 시는 한 인간이 자신과 자신의 생활에 판정을 내리는 형식들 중 하나이며, 이때 판정은 재해석을 뜻하며 다른 예술적 표현에서도 가능하다. 자서전의 위대한 예인 아우구스티누스의 «고백록»은 그리스도교 신앙의 상징 언어 없이는 이해가 불가능하다.

또 하나 중요한 측면은 ‘미래’다. 우리는 여러 회상이나 현대 경험 속에서도 살지만, 여러 회의와 공포, 장래에 관한 불안, 희망 속에서도 산다. 미래에 얽매여 사는 것은 인간성의 어쩔 수 없는 부분이다. 동물에게도 이런 것이 나타나지만 미래 의식은 인간에게 독특한 의미 변화를 부여한다. 미래는 한 심상에 그치지 않고 한 <이상>이 된다. 한갓 기대에 그치지 않고 생활에서 ‘명령’이 된다. 이 명령은 실제 요구와 경험 생활을 넘어선다. 이것이 ‘상징적 미래’요, 종교적 의미에서 ‘예언적 미래’다.

* 사실과 이상

칸트는 «판단력 비판»에서 지성의 근본 구조를 밝히고, 이 구조를 다른 모든 인식 양식과 구별해낼 수 있는 일반적 기준을 발견할 수 있는가? 하는 물음을 제기하는데, 인간 지식의 성격은 오성이 사물의 현실성과 가능성 사이에 날카로운 구별을 짓지 않을 수 없는 그러한 것이라는 결론을 내린다. 존재의 연쇄에서 인간 위치를 결정짓는 것도 이러한 성격이다. <현실>과 <가능> 사이의 차이는 인간 이하 존재에도 없고 인간 이상 존재에도 없다. 하느님의 지성이 <원형 지성>이라면 인간의 지성은 <파생적 지성>으로 오직 인간에게만 가능의 문제가 생긴다. 현실과 가능 사이의 차이는 형이상학적(존재론적, 사물 자체)인 것이 아니라 인식론적(사물에 대한)인 것이다.

칸트는 신적 지성을 적극 주장하지 않았다. 다만 인간 지성의 한계를 밝히려고 <직관적 오성> 개념을 사용했다. 인간 지성은 <사변적 오성>으로서 이질적 두 요소인 표상과 개념에 의지한다. 우리는 표상 없이 생각할 수 없으며, 개념 없이 직관할 수 없다. “직관 없는 개념은 공허하고, 개념 없는 직관은 맹목적이다.” 이러한 이원론이 가능과 현실 사이를 구별짓는다. 나는 인간 지성을 <표상을 필요로 하는> 지성 대신 상징을 필요로 한다고 말하고 싶다. 상징은 현실적 실존은 없으나 <의미>를 지닌다. 문화 진보에 따라 사물(현실)과 상징(가능)의 차이가 뚜렷해진다. 상징적 사고의 기능이 방해되었거나 불명료하게 된 조건에서는 현실과 가능 사이의 차이 역시 불확실하게 된다.

과학의 사실들은 항상 이론적 요소를 내포하는데 이것은 다름 아닌 상징적인 것이다. 갈릴레오의 물체는 현실적인 것이 아닌 가능한 것이었다. 수학자들은 끊임없이 분야를 확대하고 <새로운> 수들을 도입하지 않으면 안 되었다. 수학의 기본 개념들은 명석판명하기는커녕 함정과 모호성으로 가득 차 있었다. 이것은 수학이 사물들의 이론이 아니라 상징들의 이론이라는 점이 인정되기 전에는 제거될 수 없었다. 상징적 사고의 힘은 윤리적 관념들과 이상들의 발달에서 더욱 명백해진다. 위대한 철학자들은 한갓 현실에 머무르지 않고 현실 세계의 여러 한계를 넓히고 초월하고자 한다. 윤리적 세계는 주어진 것이 아니라 영원히 형성되고 있는 중이다. 인간의 자연적 타성을 극복하고 그에게 새로운 능력, 그의 인간 우주를 끊임없이 재형성하는 능력을 부여하는 것은 바로 이러한 상징적 사고다.

* 인간 문화에 의한 인간의 정의

소크라테스는 개인으로서의 인간에 접근했다. 플라톤은 인간을 알려면 정치 생활과 사회 생활을 연구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정치 생활만이 인간 생존의 유일한 형태인 것은 아니며, 언어, 신화, 종교 및 예술 속에도 인간 감정과 사상을 조직하고 체계화하려는 시도가 담겨있다. 꽁뜨의 실증주의는 플라톤의 인간 이론의 현대판으로 보아야 한다. 인류가 인간에 의해 설명될 것이 아니라 인간이 인류에 의해 설명되어야 함을 파악했다는 점에서 동일하다.

사회적 현상들은 물리적 현상들과 똑같은 규칙에 지배되지만 더 복잡한 성격을 띤다. 꽁뜨의 후계자들은 이런 구별을 인정하지 않고 생리학과 사회학을 동일한 것으로 간주했다. 진화론은 이런 차이를 모두 없애 버렸다. 그러나 이들은 대부분의 현상을 <본능>이라는 애매한 술어로 환원하고자 하고 이를 실체화하려 한다. 여러 구별과 분류를 사물 자체로 보는 경향은 과학적 전문화에 흔히 있는 오류다. 인간의 본성이나 <본질>에 관한 정의가 존재한다면 그것은 오직 기능적인 것으로 이해돼야지 실체적인 것으로 이해되선 안 된다. 언어, 신화, 종교, 예술, 과학, 역사는 <인간성>의 범위에 있는 성분들이다. 이것들은 공통된 유대에 의해 결합돼 있는데 이는 <실체적 결합>이 아니라 <기능적 결합>이다.

이 근본 기능을 밝히기 위해 우리는 모든 경험 증거를 검토해야 하며, 내성법과 생물학적 관찰과 역사적 탐구의 모든 방법을 활용해야 한다. 그것은 <인간> 세계 내부에 있는 것이며, 그 문턱을 넘어서 있지 않다. 기술적 분석의 필요성은 일반적으로 인정되고 있다. 뵐플린이 <고전형>과 <바로크식>이라는 술어를 사용했을 때 이것은 특수한 시대에 한정되지 않는 일반적 구조상의 양태를 지적하려는 것이었다. 철학은 개별 형식을 분석함으로 만족할 수 없다. 철학은 모든 개별 형식을 포함하는 보편적이고 종합적인 견해를 추구한다. 철학적 종합에서 추구하는 것은 결과의 통일이 아니라 행동의 통일이요, 소산들의 통일이 아니라 ‘창조적 과정’의 통일이다. <인간성>이란 말이 의미를 지닌다는 것은 갖가지 형식들의 차이와 대립에도 불구하고 모두 하나의 공통 목적을 향해 움직이고 있기 때문이리라.

* 신화와 종교

신화와 종교는 논리만으로 분석하기에 가장 힘든 문화현상이다. 신화는 조리에 맞지 않는 관념의 무더기인 듯 보인다. 종교적 사상은 반드시 합리적, 철학적 사상에 반대되는 건 아니다. 이 두 사고 양식의 관계를 확정하는 것은 중세 철학의 주요 과제였다. 아퀴나스는 종교적 진리가 초이성적이지만 <비이성적인> 것은 아니라 단언함. 이성을 보충하고 완전하게 하는 것. 두 힘을 절충하려는 시도에 반대한 종교 사상가들도 있다. 터툴리아누스, “불합리하기 때문에 믿는다.” 빠스깔은 애매성과 불가해성을 종교의 진정한 요소라 보았다. 참된 하나님은 <숨은 하나님>이다. 키에르케고르에게 종교생활은 위대한 <역설>이다. 종교는 초월적 세계에 대한 전망을 주지만 언제나 ‘너무나 인간적’이다. 우리는 신화적 상상, 종교 사상의 내용을 탐구하는 게 아니라 그 형식을 탐구하고자 한다. 신화 창작의 다양성과 불일치에도, 신화를 만드는 기능을 동질성을 지닌다. 종교적 상징은 늘 변하지만, 그 원리인 상징적 활동 자체는 언제나 동일하다.

신화 이론은 처음부터 여러 난점을 지닌다. 의미와 본질상 비이론적으로 사고의 근본 범주를 거부한다. 신화의 논리가 만일 있다면, 그것은 경험적, 과학적 진리에 대한 개념과 다른 기준을 가질 것이다. 신화가 온갖 심상과 상징 밑에 <의미>를 감추고 있다면 이를 밝히는 게 철학의 과제다. 스토아 학파 이래 철학은 비유적 해석의 정교한 기술을 발전시켰다. 베이컨은 <고대인의 지혜>에서 고대 신화 해석에 대단한 재능을 발휘했다. 현대인은 유치하다고 웃을지 모르지만 더 세련되게 해석한들 똑같은(견강부회식) 비난을 받기 쉬울 것이다. 신화적 현상을 설명하려는 시도는 신화를 부정하는 것이다. 현대의 연구 방법은 신화를 조작으로 보지 않는다. “신화는 무의식적 허구이지 의식적 허구가 아니다.” 가면 뒤에 있는 참된 면모를 밝히는 것이 과학적 분석이 할 일이다.

과학적 분석에는 객관적 방법과 주관적 방법이 있는데, 객관적 방법은 신화적 사고의 “대상들”을 분류하고 주관적 방법은 신화적 사고의 “동기들”을 분류한다. 여기서 한 대상, 한 동기를 발견하면 과제를 완수하게 된다. 민족학, 고고학의 많은 학파들은 “찾아야 할 것은 신화적 세계의 객관적 중심”이라는 전제에서 출발했다. 말리노프스키에 따르면, 이런 전제에서 출발하는 학파의 저술가들에게 모든 신화는 각기 궁극의 실재로서 어떤 자연 현상을 가지고 있다. 어떤 이는 달을, 어떤 이는 바람, 하늘빛, 태양을 상징적 이야기를 엮을 유일한 주제로 본다. 프로이트의 정신분석학적 신화 이론은, 모든 신화적 창작이 ‘성욕’의 여러 변화상이라 본다. 내용이 다를지라도 이 모든 이론은 동일한 방법론적 태도를 보여주는데, 지적 환원 과정으로 신화적 세계를 이해하기를 바란다는 점이다.

신화는 이론적 요소와 예술적 창작의 요소를 결합하는데 이는 시와 흡사하다. “신화 제작자의 정신은 원형이며 시인의 정신은 여전히 신화 창작적이다.” 발생적으로 유사해도 신화와 예술 사이에는 특수한 차이가 있다. 이에 대한 실마리를 칸트의 미학적 구상에서 볼 수 있다. “그 대상의 존재 혹은 비존재에 대해 전혀 무관심하다.” ‘무관심’은 신화적 상상에서는 용납되지 않는다. 언제나 ‘믿음’(대상의 실재성)이라는 활동이 내포돼 있다. 같은 방법을 쓰진 않지만 ‘대상의 실재성’을 탐구한다는 점에서 신화적 사고와 과학적 사고는 관련성이 있다. 이 관련성은 제임스 프레이저에 의해 강조되었다. “마술과 과학적 사고 방식의 분명한 경계선은 없다.” “자연의 진로는 인격적 존재들의 열정이나 자의에 의한 것이 아니라, 기계적으로 움직이는 변함없는 법칙들의 작용에 의해 결정된다.” 따라서 마술은 자연의 질서와 제일성에 대한 확고한 신념이다. 그러나 현대인류학은 프레이저의 견해를 완전히 포기한 듯하다. 우리는 신화를 몇몇 고정된 정적 요소로 환원할 수 없다. 내적 생명에서 그 동적 원리를 파악해야 한다.

신화는 ‘개념적 구조’와 ‘지각적 구조’라는 이중의 얼굴을 지니다. 일정한 지각 양식에 의거해 지각의 심층으로 돌아가야 한다. 감각 경험은 신화적 지각(이론 세계보다 유동적 단계)과 사고의 근본 구조에 반대되는 분석 과정을 내포한다. 신화가 지각하는 것은 객관적 성격들이 아니라 상모적(생김새) 성격들이다. 신화의 세계는 ‘일반 법칙이 작용하는 자연’이 아니라 행동과 힘의 세계, 세력들이 충돌하는 세계다. 우리는 격렬한 정동(emotion)의 긴장 속에서 모든 사물을 극적으로 본다. 그러면 모든 사물은 평소의 면모를 버리고 갑자기 상모를 바꾼다. 과학적 사고는 이런 모든 흔적을 없애려 한다. 인간 세계에서 부정할 수도, 제거할 수도 없는 이 소여 사실들은 객관적 가치를 잃었지만 그 인간학적 가치는 존속한다. 우리는 과학 개념으로 적색과 청색의 차이를 수의 차이로 환원한다. 그러나 수가 빛깔보다 더 실재적이라 말하는 건 옳지 않다. 수학 표현은 지식의 지평을 열어주지만, 수를 실체로 보는 건 형이상학적 오류다.

1) 감각 경험의 최하층 2) 감각 지각의 세계 3) 과학적 개념, 세 단계 모두 일정한 기능적 가치를 지닌다. 각기 그 정도에 따라 현실로 나아가는 도정상 단계다. 존 듀이, “경험상 사물들에 대한 감정들은 감각 경험과 같은 수준에 있으며, 직접적 성질들의 현존은 부인할 수 없다.” 우리의 이론적 이상으로 신화적 지각과 상상의 세계를 비판해서는 안 된다. 신화는 행동에서 성립한다. 이 구조에 관한 가장 명료한 이론은 뒤르껭 학파에 의해 전개됐다. “자연이 아니라 사회가 신화의 참된 모형이다.” 모든 근본 동기는 사회 생활의 투영이다. 말리노프스키, “인간이 마술, 종교 의식에서 초자연적 의식과 기적을 행할 것을 시도하는 건, 인간이 정신 능력의 한계를 몰라서가 아니라 이 한계를 충분히 알기 때문이다.” 신화의 진정한 하층 구조는 사고가 아니라 감정으로 돼 있다. 과학적 사고는 현실을 분류하고 체계화하지만 원시인의 정신은 이를 거부한다. 종합적이다. 생명은 끊김없는 연속적 전체이기 때문이다. 영역들 간 경계는 유동적이며, 신화 세계의 법칙이 있다면 이 ‘탈바꿈(metamorphosis)’의 법칙일 것이다. 우리는 생활을 실천적 활동과 이론적 활동의 두 영역으로 나누는 버릇이 있다. 그런데 이 두 영역 밑에 더 낮은 층이 있음을 잊기 쉽다. 원시인의 자연관은 이론적이거나 실천적이지 않고 ‘공감적’이다. 이는 신화적 사고의 일반 전제인 ‘생명의 연대성’에 대한 깊은 확신을 갖는다는 뜻이다.

신화적, 종교적 감정에서 자연은 거대한 사회, 즉 ‘생명의 사회’가 된다. 이음새가 없는 통일의 원리는 인간 세대도 마찬가지다. 생명의 통일성에 대한 감정은 아주 강렬해서 죽음은 우연적인 것으로 간주된다. 인간이 죽을 수밖에 없는 운명이라는 생각은 신화, 원시 종교에서 매우 생소하다. 영생을 향한 신화의 신념과 후대의 철학적 신념 사이에는 현저한 차이가 있다. 죽은 자에 대한 제식은 가장 일반적인 종교적 동기다. 데 그로트는 중국 종교를 검토하여, 죽은 자와 가족의 유대가 끊어지지 않았다는 점을 강조했다. 조상 제사 행위는 특수한 조건에 달려있지 않다. 로마 종교에도 같은 것이 보인다. 토템 숭배와 조상 숭배를 연결하는 공통 기연을 이해하려면 보다 깊은 근원을 찾아야 할 것이다. 종교가 공포에서 생긴다 이해하면 일부만 아는 것이다. 인간은 공포에 저항하고 공포를 제거하는 새로운 힘을 발견한다. 죽음에 대한 공포는 가장 일반적인 인간 본능이지만, 이는 죽은 사람의 영혼을 다시 부르려는 바람에 의해 대체된다. 우위를 보이는 건 늘 후자다. 종교는 전개 과정에서 신화적 요소로 단단히 연결된다. 신화는 이미 잠재적 종교다.

* 언어

언어와 신화는 한 뿌리에서 나온 두 가지다. 막스 뮐러, “신화는 언어의 부산물” – 언어의 이매성이 신화의 기원. 언어의 추상적 관념은 비유에 의해 표현되고 종교의 용어를 이룬다. 이 둘은 인류의 일반적 초기 경험에 기초한다. 물리적 경험이 아닌 사회적 성질의 경험이다. 원시인은 기본적 사회 경험을 자연 전체에 옮긴다. 마술에 대한 신앙은 삶의 연대성에 대한 확신에서 나온다. [그들에게] 세계는 들을 줄 알고 이해할 줄 아는 대상이다. 이 확신이 헛된 것임을 깨닫자 충격에 빠졌다. 이는 지적, 도덕적 생활의 전환점이다. 인간은 언어와 현실의 관계를 다른 각도에서 보기 시작한다. 로고스(말)는 우주 원리이자 인간 지식의 제1원리가 된다. 이러한 이행이 초기 그리스 철학에서 일어난다. 헤라클레이토스는 <현상> 위에 <순수 존재> 세계가 있음을 인정하지 않았다. 그는 변화의 원리를 탐색했는데 이것을 물질 세계가 아닌 인간 세계에서 찾고자 했다. 초기 그리스 사상은 자연 철학에서 언어 철학으로 옮겨갔다.(mythos → logos / physis → nomos) <의미의 의미>를 둘러싼 서로 다른 견해가 생겼다. “인지하는 주체와 인식되는 현실 사이의 일치”(대응설)는 공통 전제로서, 관념론과 실재론의 적용 방법은 달랐으나 이 전제의 진리성에 대해서는 일치했다. 파르메니데스는 존재와 사고를 동일한 것으로 보고 분리하지 않았다. 자연철학자들은 이 동일성을 물질적으로 이해했다.

<의미의 의미>는 존재로 설명하지 않으면 안 된다. 존재가 진리와 현실을 종합하는 가장 보편적인 범주이기 때문이다. 상징과 대상의 연결은 자연스러운 것이어야 한다. 이 전제에 따르면 우리는 의성설(언어=자연적 음성의 모방)에 직면한다. 그러나 우리가 쓰는 낱말을 분석하면 음성과 대상의 유사성을 찾기 어렵다. 이름과 물건 사이의 자연적 관계에 대한 반대는 소피스트들에게 두드러진다. 소피스트는 만물의 기원이자 제1원리인 로고스를 인정하지 않았다. 형이상학 대신 인간학적 언어학설이 주도하게 된다. 5세기 아테네에서 언어는 실제적 목적을 위한 도구로, 수사학이 주요 관심사였다. 언어의 임무는 사물을 기술하는 것이 아니라 인간의 정동을 일으키는 일이 되었다. 이제 언어의 기능과 가치에 대한 세 개념에 도달했다. 1) 신화적 2) 형이상학적 3) 실용적 개념.

이 모든 설명이 꿰뚫지 못하는 핵심을 다룬 것이 표출설인데, 데모크리토스는 인간의 말이 정동적 성격을 지닌 어떤 음성에서 시작됐다는 설을 최초로 주장했다. 18세기에 이르러 비코, 루소에게도 영향을 끼쳤다. 인간의 말은 자연이 모든 생물에게 준 근본 본는에 환원될 수 있다. 다윈에 이르러 인간 언어는 하나의 일반적인 자연적 소질이 된다. 그러나 이런 이론은 사실을 설명할 순 있어도 언어의 구조는 설명할 수 없다. 정동적 언어와 명제적 언어 사이에는 근본적 차이가 있다. 이 논리적, 구조적 구별을 없앤 생물학설은 없다. 오토 예스페르센은 “비유적 전용”을 말한다. 언어는 <전달성이 감정적 표출성에 대해 우위를 갖게 되었을 때> 생긴다는 것이다. 그라스 드 라규나는 “소리지름에서 말로의 이행은 점진적 객관화의 과정”이라 기술했다. [그러나] 이러한 학설들은 결국 ‘감정 표출’과 ‘이름’ 사이의 차이만 인정하는 것이다. 인간 언어와 동물 언어의 <본질적 동일성>에서 출발한 알램 가디너 역시 현저한 차이를 인정하지 않을 수 없었다.

인식론은 발생적 문제와 체계의 문제 사이에 확연한 경계를 그을 것을 가르친다. 그러나 언어 문제들을 다룰 때는 망각한다. 한갓 사건의 연대기로 이 문제를 풀지는 못한다. 플라톤이 정의하듯, “철학적 인식은 <존재> 인식이지 <생성>의 인식은 아니기” 때문이다. 19세기에는 역사학과 심리학이 언어 연구의 두 초석이었다. 레오나르드 블룸필드는 “역사적-비교적 연구”와 “철학적-기술적 연구”의 합류, 즉 편견없는 건전한 기초를 강조했다. 훔볼트는 세계 언어들을 분류하여 몇 가지 유형으로 환원하고자 했다. 엄밀히 경험적 방법을 채택하였고, 사실들에서 원대한 일반론을 끌어냈다. “언어들 사이의 진정한 차이는 음성이나 기호의 차이가 아니라, <세계를 보는 태도>의 차이다.” (인간은 언어가 제공하는 세계에 산다) “일상적 생각에 따라 언어를 구성하는 것처럼 보이는 낱말들과 규칙들은 오직 연결될 말의 활동 속에서만 진정으로 존재한다”고 단정한다. 언어는 <에르곤>(이미 만들어진 것)으로서가 아니라 <에네르게이아>(활동)로 여겨져야 한다. 언어는 사상을 표현하려고 분절된 음성을 활용하려는 인간 정신의 끊임없는 노력이다. 훔볼트의 저서 전면에 나타난 것은 언어의 구조 문제다. 실증주의는 구조주의라는 새 원리에 의해 대체되었다. 고전 물리학과 생물학에도 “전체가 부분에 앞선다”는 구조주의 원리가 유력해졌고, 새로운 구조적 심리학인 게슈탈트 심리학이 등장했다.

언어 연구는 연대적 순서만이 아닌 다른 초점을 지닌 타원형처럼 진행된다. 소쉬르에 따르면, 언어 연구는 <동시성>과 <계기성>이라는 다른 축으로 진행된다. 랑그(언어체계)와 빠롤(언어행위) 사이에 확연한 선을 긋는다. <공시적 언어학>은 한결같은 구조적 관계를 취급하고, <통시적 언어학>은 시간 속에서 변하는 현상을 취급한다. 말의 형식들에 통일성이 있다는 것은 매우 이른 시기에 정립되었다. 그러나 19세기 초까지 내용적 측면의 중요성은 인정되지 않았다. 19세기 이후에야 음성 변화를 과학적으로 다루려는 시도가 생겼다. 현대의 역사적 언어학은 제일적인 음성상 연구에서 시작됐으며 이는 비교 문법의 기초였다. 19세기 후반에 언어학에서 자연적 일반 법칙을 발견하려는 시도가 생겼다. <소장 문법학파>, “모든 음성 변화는 어길 수 없는 규칙을 따른다.” 트루베츠코이의 저서 «프라하 언어학단 업적집»에서 발전된 현대 구조주의는 다른 각도에서 접근했다. 인과적 의미가 아닌 목적론적 의미에서 ‘필연성’ 개념을 재정의했다. 여러 언어의 음운은 독특한 특징을 지니지만 음운들 간에는 엄격한 연결이 있다는 것이다. 이 연결은 상대적, 가설적이므로 경험 자료에 의존해야 한다. 음운론에서 우리가 연구하는 것은 물리적 음성이 아니라 의미를 지닌 음성이다. 언어학은 어의적 기능에 관심을 둔다. 모든 언어는 각기 다른 음운 조직을 갖고 있으며 음운은 통일된 전체를 이룬다. 그리고 몇 개의 일반 유형(음성형)으로 환원 가능하다. 사피어는 “언어마다 음성형을 지키려는 강한 성향이 있다”고 강조한다.

그리스 철학에서 언어행위와 사고행위는 근본적 동일성을 지닌다. 밀과 같은 논리학자 역시 문법은 사고의 보편 형식과 일치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것이 현대언어학에서는 부정되었다. 우리는 이것을 새로운 의미에서 정식화해야 한다. <일반문법>이라는 말 자체가 비과학적 우상이라는 태도가 있는 반면, 예스페르센은 현실적 언어 범주의 배후에 있는 필연적 범주(상념적 범주)를 제안했다. 사피어에 따르면 모든 언어는 이런 필연적 범주를 내포한다. 인간 언어는 보편적, 논리적 임무와 특수한 조건에 의존하는 사회적 임무를 수행해야 한다.

언어의 본질을 밝히기 위해 1) 논리적, 체계적 질서 2) 연대기적, 발생적 질서를 찾을 수 있다. 슐레겔은 언어가 형태가 없는 상태에서 고립적, 교차적, 굴절적 언어로 진보한다고 보았다.(중국어, 해당 안 됨) 현대 언어학자 메이예는 원시어와 현대어의 구분이 무의미하다 보았다. 감정과 사상을 명백히 표현하면 완전한 언어라는 것이다. 특유한 개별 언어의 다양성과 언어형의 이질성은, 모든 상징 형식을 연구할 때마다 나타나는 딜레마와 같은 걸 겪는다. 모든 형식에서 유일한 임무는 사람들을 결합시키는 것이지만, 사람들을 분리하지 않으면 이 결합을 찾을 수 없는 이율배반이 언어에도 동일하게 나타난다.

언어의 참된 통일이 있다면 그것은 실체적 통일이 아니라 기능적 통일이다. 두 언어의 품사 체계가 다를지라도 공동체의 동일한 임무를 수행할 수 있다. 중요한 것은 언어가 만든 <작품>이 아니라 그 <에너지>다. 언어적 과정 자체를 연구해야 한다. 헬렌 켈러와 로라 브리지만 사례에서 말의 상징성을 이해할 때 지적 혁명이 일어남을 밝혔다. 이는 23개월 아이의 특징이기도 하다. 사물에 이름 붙이는 것을 배움으로써 아동은 기존 지식에 인위적인 기호 하나를 첨가하는 것이 아니라, 대상들의 개념을 형성하여 객관적 세계와 절충하는 것을 배운다. 말하고자 하는 열망은 객관적 세계를 탐구하고 정복하려는 욕망의 표시다. 성인이 새로운 언어를 배우고자 하면 단어와 사물 간의 유대를 분리해야 한다. 이는 외국어를 배우면서 각 언어가 동일한 대상을 지시하는 경우가 거의 없음을 알게되는 것과 유사하다.

분류는 언어의 근본 특성 중 하나다. 명명이라는 행위는 분류 과정에 의존한다. 이름은 인간의 관심과 목적에 따라 결정되는 것으로 고정불변하지 않다. 분류는 감각 경험의 반복과 준거의 자유로운 선택에서 비롯한다. 구분/소구분의 정해진 도식은 없다. 이름의 가치는 ‘한정과 제한’으로 사물의 특수한 일면만 강조한다. 이는 논리적 사고가 아니지만 이러한 일상어는 과학 세계로 나아가는 이정표다. 인간 언어는 구체 상태에서 추상 상태로 발전한다. 그러나 공동 유에 속하지 않는다. 특유어의 풍부성 또는 빈곤성에 대한 한결같은 척도는 없으며, 사회 문화 조건에 따라 다르다. 아라비아 지역에 낙타에 관한 용어가 5-6천개나 되는 것처럼 말이다. 보편적 개념 범주로 상승하는 것은 언어 발달에 있어 매우 느리다. 새로운 진전이 있을 때마다 지작 세계를 더욱 포괄적으로 전망할 수 있을 것이다.

* 예술

칸트 시대에 이르기까지 미의 철학은 언제나 우리의 미적 경험을 다른 분야의 원리에 환원시키고, 예술을 다른 분야의 관할 아래 예속시키려는 시도를 의미했다. 칸트는 예술의 자율성에 대해 명백히 보여주었다. “상상의 논리”는 합리적, 과학적 사고와 구별되어야 한다. 언어와 예술은 객관적인 극과 주관적인 극 사이를 쉴 새 없이 왔다 갔다 한다. 언어와 예술은 모방의 범주에 공통으로 포섭된다. 모방설을 주장한 아리스토텔레스는 이를 미적 경험이 아니라 이론적인 경험으로 서술한다. <예술은 자연의 모방>이라는 원리는 신고전파에 이르러 <아름다운 자연>을 재현하는 것으로 계승되었다. 루소는 사상사뿐 아니라 미학에 있어서도 결정적 전환점이 되었다. 그에게 예술은 경험 세계의 기술이나 재현이 아니라 정동과 정열의 분출이다. 헤르더와 괴테는 루소의 전례를 따랐고 이른바 ‘성격 예술’이 모방설을 밀어냈다. 다른 모든 상징 형식처럼 예술도 주어진 현실의 단순한 재생이 아니다. 그것은 사물과 인간 생활에 대한 객관적 견해에 이르게 하는 여러 방법 중 하나다. 이 점에서 미도 진리와 마찬가지로 동일한 고전적 공식으로 기술될 수 있다. <일과 다의 통일>이다. 언어와 과학은 하나의 동일한 추상 과정에 의존하나, 예술은 계속적인 구체화의 과정에 의존한다.

예술은 직관에 의한 해석을 감각적으로 드러낸 것이다. 예술이란 독립적인 <논의의 세계>이며 예술적 상상의 힘이 있다는 주장은 이성의 법칙을 존중하는 고전파의 생각과 대립했다. 비코는 <상상의 논리>를 만들려는 시도를 신화의 세계에서 찾았다. “신들의 시대”, “영웅들의 시대”, “인간들의 시대”가 있는데 시의 참된 기원은 추상적 사상이나 합리적 언어가 아니라 상징적 언어의 시대인 ‘신들의 시대’와 ‘영웅들의 시대’에서 찾아야 한다는 것이다. 실러의 시는 이러한 시의 황금 시대를 동경한다. 예술가들은 사물의 정신적 생명을 느낄 뿐 아니라 자신의 감정을 외화하여 그것에 형체를 부여한다. 예술이 감동을 주는 것은 이 형태들의 구조, 균형 및 질서 때문이다. 예술마다 특유어가 있다. 아돌프 힐레브란트는 ‘구축적 발전’이라는 용어를 사용하는데 이는 자연에서 얻은 재료를 예술적 통일로 변형한다는 말이다. 아리스토텔레스는 비극의 구성을 강조하는데, 비극은 인물의 모방이 아니라 행동과 생활의 모방이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꼬르네이유는 “이 구성을 풀어헤치는 노력과 지적 쾌락이 예술의 필수 요소”라고 주장했다.

낭만주의 사상에서 시적 상상은 보편적 형이상학적 가치를 지닌다. 시적 상상은 현실에 대한 유일한 열쇠다. 셸링, “예술은 철학의 완성이다.” 철학을 시화하고 시를 철학화하는 것은 모든 낭만주의 사상가들의 최고 목표였다. 참된 시란 예술가 개인의 작품이 아니라 우주 자체요, 영원히 자신을 완성시키는 [신적 계시인] 예술 작품이다. 그러나 이러한 주장은 ‘중대한 희생’을 필요로 한다. 유한한 현실과 감각 경험 세계를 취급하지 않기 때문에 이원론에 빠진다. 19세기에 등장한 사실주의는 [이를 극복하려고] 평범한 사물에서 진정한 형상을 발견하고자 한다. (발자크, 플로베르, 졸라) 사실주의는 ‘예술이 자연의 모방’이라는 낡은 정의로 되돌아갔다. 이들은 예술의 상징적 성격을 깨닫지 못했다. 예술은 상징이다. 그러나 이 상징은 내재적 의미에서 이해돼야지 초월적 의미에서 이해돼서는 안 된다. 예술의 진정한 주제는 셸링의 형이상학적 무한이나 헤겔의 절대자가 아니라, 감각 경험 자체의 근본 구조에서 구해져야 한다. 예술은 인간 경험의 전 영역을 포용한다. 베이컨이 한 말, “본질이 될 만한 것은, 그 어떤 것이나 과학이 될 만하다.”는 예술에도 적용 가능하다.

심리학적 예술 이론은 형이상학적 이론보다 뚜렷한 장점을 지니고 있다. 미의 사실에 관한 기술적 분석에 관심을 두며 미에 관한 경험이 어떤 현상에 속하는지 결정한다. 그러나 쾌락이 경험의 직접적 소여이긴 하지만 모호하고 광범하기 때문에, 중대한 차이를 보지 못할 위험에 처한다. 윤리적 쾌락주의(쾌락=선)나 미학적 쾌락주의(쾌락=미)는 이 차이를 망각하는 과오를 범한다. 칸트는 «실천 이성 비판»에서 이점을 강조했다. “의지의 결정이 쾌/불쾌에 좌우되면 ‘얼마나 많이’, ‘얼마나 큰’ 쾌락인지만 문제 삼을 것이다.” 현대 사상에서 미학적 쾌락주의 이론은 산타야나 철학에서 명백히 표현되었다. “미란 사물의 성질로 생각되는 쾌락이다.”(객관화된 쾌락) 미학적 쾌락주의 체계의 공통 약점은 미적 창조성의 근본 사실을 설명하지 못한다는 점이다.

심미적 생활에서 미적 쾌락은 한갓 감동에 그치지 않고 기능이 된다. 예술은 보다 깊은 다른 여러 원천에서 솟아난다. 미를 느끼려면 예술가의 창조적 활동 속에 들어가야 한다. 사프츠베리, “미의 경험은 인간성의 특전이다.” 형상을 관조하는 것은 동물적 감각과는 다른 고상한 활동이다. 니체는 18세기 고전주의자들에 도전했다. 그에 따르면 그리스 비극의 위대성은 <숭고한 순박성, 정온한 위대성>이 아니라 격렬한 정동의 깊이와 극도의 긴장에서 나온다. 예술적 영감이나 상상은 도취나 꿈이다. 따라서 구조적인 통합은 불가능하다.

예술의 힘은 1) 발명의 힘 2)인격화의 힘 3)순수한 감각적 형상을 산출하는 힘이다. 예술가는 딱딱한 소재인 물건을 상상의 도가니 속에서 용해시키고 새로운 세계를 발견한다. 유희가 휴양과 휴식 목적이라면 미술은 집중을 요한다. 유쾌한 감정과 유희에 굴복하면 예술 작품을 감상할 수 없다. 이것이 유희와 예술의 차이다. 실러는 선험적, 관념론적 유희설을 주장했다. 유희와 미는 자유의 세계와 연결되는데, 자유와 미는 지성을 가지고 알 수 있는 예지적 세계에 속하지 현상 세계에 속하는 게 아니다. 반면, 다윈과 스펜서는 생물학적 유희설을 주장했다. 유희나 미는 모두 자연현상의 일부다. 그러나 이를 모두 인정하더라도 유희의 <의미>와 미의 <의미>는 분명 다르다.

예술을 논할 때 <인간 이외의 것>이라든가 <초인간적인 것>이라 말한다면 예술의 구성적 힘을 간과한 셈이다. 과학은 사고의 질서를 주고, 도덕은 행위의 질서를 주며, 예술은 현상들을 파악하는 질서를 준다. 예술은 하나의 상징적 언어로 정의될 수 있지만 공통 유만 제공하지 종차를 주지는 않는다. 예술의 왕국에 들어서면 <그것이 무슨 소용인가?> 같은 물음은 잊어야 한다. 경험적 속성의 배후에서 형상(들이 나타내는 동적 질서)을 발견해야 한다. 거기에서 자연의 새로운 지평이 열린다. 미의 진리는 사물들의 이론적 기술에 의해 형성되지 않고, 사물들의 <공감적 투시>에 의해 성립된다. 이는 대조적이지만 모순은 아니다. <사물의 형상을 보는 것>과 <사물의 원인을 아는 것>은 모두 중요하다. 현실에 접근하는 유일한 방법에 국한되지 않는 것이야말로 인간 본성의 특징이다.

* 역사

철학사에서 정의한 인간 본성, 인간 이론은 현대에 와서 붕괴를 경험중이다. 오르테가 이 가세트는 ‘인간을 물성이 아닌 다른 것으로 파악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헤라클레이토스는 인간 생활의 극단적 지성화인 엘리아주의(파르메니데스)에서 벗어나야 한다고 주장했는데 이는 바로 ‘역사 의식’을 가리킨다. 그렇지만 철학의 근본문제인 존재와 생성 사이의 투쟁은 여전히 해결되지 않았다. 칸트 이후 이 문제는 형이상학이 아닌 논리적 문제로 이해되었다. 실체와 변화를 다른 존재의 왕국이 아니라, 경험적 인식의 조건(범주)으로 파악했다. 역사 세계에도 역시 존재의 요소는 존재한다. 인간 생활의 다양성의 배후에서 불변하는 인간성을 찾는 것, 이것이 역사가들의 과제다. 야콥 부르크하르트는 «세계사적 고찰»에서 역사가의 임무란, 항존적이며 반복하는 전형적 요소를 확인하는 것이라 말했다. 역사 개념은 비코와 헤르더의 저작에서 처음으로 성숙했다. 인간이 시간 문제를 깨닫게 되자, 사회적/물리적 세계를 신화적 과거에 투영했다. 인간은 진리에 대한 새로운 개념을 형성하기 시작했다. 투키디데스는 비판적 정신으로 시대와 과거를 돌이켜 본 최초의 사상가다. 신화적 사고와 역사적 사고를 분명히 구별한다.

랑케는 역사적 사실 확정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그럼 ‘역사적 사실’이란 무엇인지 확정해야 할 것이다. 물리적 사실은 관찰, 실험에 의해 결정되며 측정 가능하다. 그러나 역사적 사실은 다르다. 영원히 지나가버린 것이기 때문이다. 경험적 관찰이 아니라 관념적 재구성이 역사 인식의 첫걸음이다. 역사가에게 자기 탐구의 출발점은 물리적 세계가 아니라 상징들의 세계다. 역사 인식의 최초의 직접 대상은 문서나 기념물인데, 이 상징적 자료를 매개로 역사적 자료의 파악이 가능하다. 대부분 저술가들은 역사와 과학의 차이를 역사의 논리에서 찾지 대상에서 찾지는 않는다. 그러나 인식의 대상들이 아무리 이질적이어도 그 형식은 논리적 동일성을 보인다. 역사적 사고와 과학적 사고는 논리적 형식이 아니라 목표와 주제에 의해 구별된다. 역사가는 과학자들이 경험적으로 재구성한 것을 상징적으로 재구성한다. 역사는 과거의 <흩어진 지절>을 융합하고 종합하여 새로운 형상을 갖게 하려는 시도다.

[역사를 진리의 자리에 올리고자 한] 헤르더는 역사적 과정의 이 측면에 명료한 통찰을 보인 사람이다. 그의 저작은 과거 상기에 그치지 않고 과거를 부활시킨다. 그는 역사적 진리라는 새로운 이상의 개척자였다. 프리드리히 슐레겔, “역사가는 뒤를 돌이켜 보는 예언자다.” 과거를 회고하는 것은 동시에 미래를 전망케 한다. 출발점은 자기 자신의 시대뿐이다. 크로체는 가장 극단적인 <역사주의>의 투사다. 그에게 역사는 현실 전체다. 니체는 이와 반대 결론에 이르렀다. ‘당대의 역사의식은 병’이며 맹목성이야말로 생명의 참된 조건이다. 그러나 과거에 대한 의식을 올바로 사용하면 현재를 자유롭게 꿰뚫게 될 것이다. 철학상 과거의 사실들, 위대한 사상가들의 체계는 해석이 없으면 무의미하다. 소크라테스를 두고, 플라톤은 ‘위대한 변증가이자 윤리적 교사’로, 몽테뉴는 ‘무지를 고백하는 반독단적 철학자’로, 슐레겔은 ‘반어법을 강조한 학자’로 해석한다. 플라톤 역시 다양한 학자들에 의해 다양하게 해석된다. 이들 모두 플라톤을 이해하고 체계적으로 평가하는 데 기여한다.

해석과 재해석의 연속적 과정은 사상의 역사에서는 필연적이지만 <현실의> 역사에서는 소용없다는 반박이 있을 수 있다. 그렇지만 정치사에서도 일반적 방법론은 그대로 적용된다. 프리드리히 군돌프는 카이사르의 책을 저술한 게 아니라, 그의 정치적 사명에 대한 다양한 해석의 역사에 관한 전체적 책을 저술했다. 정치사에서 흥미를 끄는 것은 사실이 아니다. 우리는 행동과 행동하는 자들을 이해하고자 한다. 역사적 인물의 인격을 이해하려면 상징적 해석이 필요하다. 모든 주위 환경의 증거를 보아야 카이사르의 참된 모습과 로마 정치에서 그의 역할을 알 수 있다. 로마의 운명을 결정한 악티움 해전을 예로 들면, 안토니우스가 클레오파트라 때문에 패했다는 것이 흔한 해석이지만, 페레로의 해석에 따르면, 둘 간의 연애는 전설일 뿐이며 그저 정치적 조약에 불과했다는 것이다. 역사적 사실의 객관성은 공간, 시간, 인과의 질서보다 높은 질서에 속한다.

역사적 사상은 현실에 대한 역사적 과정을 재현하기보다 오히려 전도한다. 인간의 모든 표현 양식은 전적으로 동일한 근본 경향이 여러 가지로 나타난 것이다. 플라톤은, 사랑이 영생에 대한 욕망이라 했다. 문화는 이 플라톤적 사랑의 소산이다. 인간은 이 속에서 시간의 힘에 도전할 힘을 찾아내기 시작한다. 영원한 기념비를 세우려 분투한다. 역사적 대상들은 회상되는 한에서 참된 존재를 가진다. 회상은 지적 종합이며 구성적 행위다. 이 재구성에서 인간 정신은 본래 과정과 반대로 움직인다. (문화는 확정, 안정화를 지향) 역사는 동적인 충동을 찾아내며, 모든 정적 사물은 창조적 에너지로 환원된다.

현대 철학자들은 역사에만 적용되는 특별한 논리학을 건설하려 시도한다. 자연과학이 보편 개념의 논리에 입각하는 반면, 역사는 개별 개념의 논리에 입각한다. (빈델반트, 리케르트) 그러나 보편성과 개별성을 인위로 나눌 수 없다. 두 요소는 상호침투한다. 개별적인 <여기>와 <지금>은 역사에만 한정되지 않는다. 위대한 역사가의 특성은 개인적 경험의 풍부함과 다양성, 그리고 깊이와 강도다. 역사적 진리의 객관성과 역사가의 주관성이 대립할 때 이를 극복하는 방법을 랑케의 저작에서 찾을 수 있다. 그렇지만 랑케의 이러한 냉담한 객관성을 동시대인들은 받아들이지 않았다. 역사가는 판단내릴 자유를 갖고 있으나, 판단하기에 앞서 이해하고 해석할 것을 원한다.

실러는 ‘세계사는 세계 심판’이라고 말했는데, 이는 헤겔 역사 철학의 초석이 되었다. 헤겔에 반대한 랑케 역시 이러한 견해엔 찬성했다. 비유하자면, 역사가는 검사나 변호사가 아니라 예심 판사로, 사건의 자료를 최고 재판소인 세계 역사에 제출하는 사람이다. 시대와 국가를 포용하는 보편적 동정(교양, Bildung)에서 자유로운 전망이 생긴다. 야콥 부르크하르트는 사상 영역에서 모든 국경을 없애야 한다고 주장했다. ‘열정에 관한 예술은 있으나 <열정적 예술>은 있을 수 없다’는 실러의 견해는 역사에도 적용된다. 역사는 열정의 역사이기지만 역사가는 열정의 세계에 머물러선 안 된다. 역사적 객관성과 자연과학의 객관성을 구별하기는 쉽다. 자연과학은 인간학적 요소를 제거하고자 하지만 역사는 부단히 자신으로 되돌아온다. 역사는 <객관적 의인성>(자아의 확장)을 추구한다.

18세기 사상가들은 역사적 사상의 선구자들이다. (볼테르) 뗀느는 ‘역사가는 박물학자처럼 행동해야’ 하며 인습적 편견이나 개인적 편애에서 벗어날 것을 주장했다. 과학자와 마찬가지로 역사가는 사물의 가치를 판단하기보다 원인을 탐구해야 한다. 사물들의 일반 구조, 사건들의 큰 특성들은 보편적이며 영구적인 원인들의 소산이다. 이를 반대하지 않는다. 인과성은 인간 인식의 전 영역에 걸친 일반 범주이기 때문이다. 다만, 역사적 방법이 얼마나 큰 반향을 일으킬 수 있냐에 초점을 두면 뗀느의 방법은 반향이 매우 적다. 극단적 차이를 보이는 딜타이는 역사의 자율성, 자연 과학에 환원될 수 없는 특성, 정신 과학으로서의 성격을 강조했다. 과학적 사고를 고수한 뗀느의 주장도 역사적 현상에 대한 자신의 탐구와 기술을 시작할 때는 수정된다. “자료, 사물 뒤에 있는 살아있는 인간을 재구성해야 한다”는 말은 내가 옹호하려 한 견해다. 그렇다면 역사적 사고를 과학적 사고에 환원하는 건 불가능하다. 우리는 물리적 세계가 아닌 상징적 세계에서 움직이기 때문이다.

상징들을 이해하고 해석하려면 원인 탐구 이외의 방법이 필요하다. 의미의 범주는 존재 범주에 환원될 수 없다. 역사적 인식을 포섭하려면 ‘의미론’으로 기술 가능하다. 역사는 해석학의 영역에 포함되지 자연과학 영역에 포함되지 않는다. 뗀느가 간과한 것은 사실들 자체가 직접적으로 역사가에게 주어지는 것이 아니라는 점이다. 재구성돼야 하기 때문이다. 역사에 있어서는 상징들의 해석이 사실들 수집에 앞선다. 역사가는 회상할 만한 가치가 있는 사실만 다루기 때문이다.

역사적 사실과 비역사적 사실의 차이는 어디에 있는가? 리케르트는 기준이 될 만한 형식적 체계를 증명하고자 했다. 그러나 참된 기준은 사실들의 가치에 있는 게 아니라지, 사실들의 실제적 결과에 있다고 보는 것이 자연스러울 것이다. 마이어에 따르면, 한 사실이 여러 결과를 머금고 있을 때 의미있는 역사가 된다. 그렇지만 이 차이점도 충분치 않다. 괴테의 편지 한 장은 결과에서는 중요하지 않지만 특징적인 자료이기 때문이다. 물리적 중요성이 없더라도 매우 큰 의미론적 가치를 지닐 수 있다. 뗀느가 ‘의미 있는 아주 작은 사실들’이라 부른 것이 바로 이것이다. 그것은 개인의 성격, 시대의 성격을 읽고 이해할 수 있는 상징이 된다.

19세기 후반 통계적 방법이 역사에 도입되었다. 버클은 «영국 문명사» 서론에서 <자유 의지>라는 우상을 부정할 수 있는 통계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그러나 통계적 방법은 집단적 현상에 국한된다. 또한 ”…이어야 한다”, ”…하지 않으면 안 된다” 식의 형이상학적 오류에 빠지기 쉽다. (강요하는 원인들) 카토의 자살을 두고 통계로 얻을 수 있는 것은 전혀 없다. 중요한 것은 죽음의 <의미>를 밝히는 일인데, 루카누스의 시에 나타난 상징을 통해, ‘공화주의 정신의 최후 항변으로서 위대한 성격의 표현’이라는 점이 드러난다.

역사 인식을 심리학적 유형 연구에 환원하려는 모든 시도에도 똑같은 비판이 가능하다. 칼 람프레히트는 내적 경험에 속하는 사고와 감정의 규칙성을 발견했다고 확신했다. «독일사»에서 그는 일반 이론을 구체적인 예를 가지고 증명하고자 했다. 그에 따르면 인간 정신의 상태가 서로 계기하는 데 변함없는 순서가 있다. 우리는 상징주의 – 유형주의 – 관습주의 – 개인주의/주관주의 시대로 옮아간다. 이 도식을 독일 역사의 사실들에서 추상하고자 했다. (“과학적 세계사”) 람프레히트와 버클은 각기 다르지만 예언적 용어(<않으면 안 된다>)를 사용한다는 점에서는 같다.

역사의 현실은 사건의 한결같은 계기가 아니라 인간의 내면적 생활이다. (여기서는) 람프레히트의 방법론적 문제만 제기하려 한다. 그의 중요한 논술은 대개 종교 생활, 음악, 문학 작품 분석, 미술사 연구에 기초를 둔다. 이 자료를 해석하기 위해 그는 먼저 이것들을 다른 언어로 옮겨야 했다. 뗀느의 말을 빌면, <화석화된 조개> 뒤에서 동물을, 자료 뒤에서 인간을 찾아내야 했다. <자연주의적> 역사가들의 연구는 [역설적으로] 역사 세계가 물리 세계가 아닌 상징 세계임을 확증했다.

한편, 상징은 하나하나 물질적 측면을 지니고 있다. <상징적 우주>를 이해하려면 이 영향을 염두에 두어야 한다. 몽떼스끼외는 <법의 정신>이 물질적 조건들에 상징이 결부한 것임을 발견했다. 역사적 공간과 역사적 시간은 다 같이 보다 큰 전체 속에 포함돼 있다. 역사적 시간은 보편적 우주의 시간의 작은 단편일 따름이다. 어떤 대상을 과학적으로 분석하는 것과 개념상, 논리상 다른 방법으로 분석한다 하여 역사적 사고의 통일성을 파괴하는 건 아니다. 역사에서 우리가 찾는 것은 외부 사물에 관한 지식이 아니라 우리들 자신에 관한 지식이다.

부르크하르트 같은 위대한 역사가는, “역사란 모든 과학 가운데 가장 비과학적”이라는 역설을 내걸었다. 몸젠도 같은 견해를 갖고 있다. 과학 천재인 그가 베를린 대학 총장에 취임하면서 역사적 방법에 관한 이상을 밝혔다. “역사가란 학자에 속하기보다는 예술가에 속할 것이다.” 위대한 역사 저작이 예술적 요소를 포함한다 하여 그것이 허구의 작품은 아니다. 진리 탐구에서 역사가는 과학자처럼 엄밀한 규칙에 매여 있다. 그리고 모든 경험적 탐구 방법을 이용한다. 그렇지만 최후의 결정적 행위는 언제나 생산적인 상상의 행위다. 그들은 경험주의자로서 사실에 대한 세심한 관찰자인데 이들에게는 <시적 정신>이 있다. 투키디에스의 저작은 현실 사건을 재현하므로 역사적인 것이 아니라, 그의 저작에서 중요한 역사적 기능을 수행하기에 역사적이다. 페리클레스 추도 연설의 문체는 투키디데스의 것인데 경험적 진리가 아닌 그의 시적 정신이 발휘돼 있다. (이상적 진리)

역사의 이상은 예술의 이상과 동일하지 않다. 예술은 경험 생활을 순수한 형상들의 동적 체계로 전환시킨다. 역사는 경험 생활을 넘어서 나아가지 않는다. 도리어 이 현실을 회상에 의해 이상화하고 새로운 형상을 만들어 낸다. 정열과 열정의 경험 세계에 살면서도 이 광경을 역사라는 거울로 봄으로써 관조하고 직관하는 것이 역사가의 역할이다. 올바로 쓰이고 올바로 읽힐 때 역사는 필연적 조건 속에서 우리를 자유롭게 할 것이다. 이 장에서 최급하려 한 것은 역사 철학의 문제가 아니다. 전통적 의미에서 역사 철학은 역사 과정 자체에 관한 사변적, 구성적 이론이다. 인간 문화를 분석하기 위해 이 사변적 문제에 들어갈 필요는 없다. 예술과 역사는 인간성을 추구하는 데 가장 유력한 도구다. <평균적> 인간 뒤에 있는 개성을 지닌 참된 인간을 보려면 우리는 위대한 역사가, 위대한 시인에게로 나아가야 한다.

* 과학

과학은 인간 정신 발달에 있어 최후 단계요, 특별한 조건에서 발달하는 늦고 세련된 소산이다. 과학이라는 개념은 그리스 사상가들 시대 이전에는 존재하지 않았고, 잊혀졌다가 르네상스 시대에 재발견되었다. 과학적 안정은 지각과 사고 세계의 안정화와 확정화에 이르게 한다. 칸트에 의하면 경험은 오성의 최초의 소산으로 질료와 형식의 복합체다. 질료의 인자는 감각 지각에 주어지고 형식의 인자는 과학적 개념들 속에서 표상된다. 순수 오성의 개념들은 현상에 그 종합적 통일을 준다. 칸트의 선험적 분석론에는 인간 인식의 객관성 문제 전체가 과학과 불가피하게 결부돼 있다.

그러나 인간은 과학 세계에 살기 이전에 객관적 세계에 살았다. 신화적 혹은 언어적 개념들이 이 세계에 종합적 통일을 주었다. 거의 모든 자연 과학은 신화적 단계를 통과해야 했다. 연금술은 화학에 앞서고 점성술은 천문학에 앞선다. 언어는 인간이 감각 지각 세계를 분절하여 뚜렷이 하려는 최초의 시도다. 과학이 현상들 속에서 추구하는 것은 질서다. 사물의 명칭들에는 목적론적 기능이 담겨 있는데 이 기능은 발전하여 보다 객관적인 <표상적> 기능이 된다. 어떤 언어에서는 나비가 새로, 혹은 고래가 물고기로 기술돼 있다. 분류 체계는 모두 인위적인데 각각 체계는 모두 의식적 창조 활동의 결과다. 다윈의 이론은 더 넓은 지평을 열었다. 유기적 생명 현상에 대한 보다 완전하고 정합적인 개관을 제공했다. 언어와 과학 사이의 연속에는 아무런 단절도 없어 보인다.

피타고라스는 더 대담한 일반화를 시도했다. 수로 존재의 영역 전체를 설명했다. 피타고라스설이 현대에 인정받지 못하더라도, 수는 인간 인식의 근본 기능의 하나이며 위대한 객관화 과정에서 필요한 일보라는 점은 분명하다. 수의 본질은 언제나 상대적이며 상징적이다. 새로운 수를 도입하는 것은 새로운 상징 세계를 창조하는 일이다. 만일 수가 실체라면 발전은 없었을 것이다. 수는 성질 및 본질에서 변하지 않는 반면, 오직 의미가 변한다. 수학적 물리학을 정립하려는 데카르트의 시도는 보편적이었으나 충분치 못했다. 양자 역학은 과학의 추상성을 재확인시켰다. 과학은 일상적 감각과 경험의 언어를 말하지 않고, 오히려 피타고라스적(추상적) 언어를 말한다. 거시적 대우주(뉴턴)뿐 아니라 미시적 소우주(하이젠베르크)로 이제 이 언어로 기술될 수 있었다. 화학의 역사는 과학적 언어의 느린 변형의 현저한 사례다. 라브아지에 시대에 와서야 화학은 양적 언어를 말할 수 있게 되었다. 원소 주기율표 발견 이후 화학은 새로운 수학적이고 연역적인 구조를 획득하였다.

수학이 보편적인 상징적 언어라는 것은 철학의 역사에서 한참 후에 나온 생각이다. 라이프니츠는 수학의 상징성의 참된 성격을 명확히 통찰하였다. 우리가 표명하고자 하는 것은 수가 자연과 실재를 발견하기 위한 도구라는 것이다. 구체적 응용보다 앞서 사고의 일반적 도식으로 착상된다. 우리는 사실을 예측할 수 없으나 상징적 사고의 힘을 통해 사실들의 지적 해석에 대한 준비를 할 수 있다. 과학자는 자신의 관찰을 보편적인 언어로 기술할 수 있게 할 적절한 상징을 찾는 데 성공하리라는 원칙 위에서 행동한다. 이론적 활동은 수동적인 것이 아니라 구성적이다. 이 자발성과 생산성이야말로 모든 인간 활동의 핵심이다.

언어에서, 종교에서, 예술에서, 과학에서, 인간은 그 자신의 우주를 세우는 것 이상의 일을 할 수 없다. 이 우주는 인간으로 하여금 그의 인간적 경험을 이해하고 해석하며, 분절하고 조직하며, 종합하고 또 보편화할 수 있게 하는 상징적 우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