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마미치 도모노부(今道友信), 정명환 옮김, «에코에티카», 기파랑, 2013.
원제: Eco-Ethica
문화재에 대해서도 생각해 봅시다. 우리는 각각의 시대의 천재들이 여러 가지 방법으로 인류의 가능성을 극한까지 드높인 작품들을 다음 시대로 전하고, 그런 작품들을 통해서 우리가 누린 크나큰 감동을 다음 세대에도 가능케 해줄 의무가 있습니다. – p. 51
정말로 단지 사는 것만이 목적이며 생명은 가장 존중되어야 할 가치인가, 혹은 ‘잘’ 사는 것이 목적인가 [···] 생명은 분명히 다른 것을 목적으로 삼고 그것을 실현하기 위한 에너지로서 생각되는 것이 아닐까요? 이렇듯 생명은 그보다 높은 가치를 위해서 조금씩 희생된다는 것을 이해하지 않는다면, 이상과 같은 것은 없어지고 말 것입니다. – p. 59
나는 도덕에 관해서 쓰고 있지만 나 자신이 도덕이나 윤리로서 남에게 자랑할 만한 것은 하나도 없습니다. 구태여 말하자면 내 속에는 악이 산더미처럼 있습니다. 그러나 꼬집어 말하지 않아도 서로 알고 있는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서로가 용서해 주기 위해서 말입니다. 그러나 서로 용서하는 것이 서로 더럽히는 것이 되어서는 절대로 안 됩니다. – p. 85
용기라는 말은 이렇듯 내면화되어서 남녀는 불문하고 적용되기 때문에 오늘날 virtue를 사나이다움이라고 번역하는 사람은 없습니다. 모두 덕이라고 번역합니다. [···] 새로운 말이 생긴 것은 아니지만, 지금까지 사용된 말의 의미가 달라지고 심화하여서, 말하자면 의미론적 변용이 이루어진 것입니다. 그것은 인간의 윤리 도덕면에서의 진보라 해야 할 것입니다. – p. 102
그러한 그리스도의 가르침은 <<성서>>에 있는 ‘마음이 가난한 자는 행복하다’는 말, 즉 <산상수훈>에 나오는 말에 나타나 있습니다. [···] 구걸하는 거지는 누가 십 원을 줄 때는 내밀었던 손을 움츠리고 백 원을 줄 때야 받아 갖는 태도를 보이는 것은 아닙니다. [···] 거지처럼 손을 내밀고 신이 주는 것은 모두가 시혜라고 여기면서 받는 마음, 그것이 “마음이 가난한 자는 행복하다”는 말의 진정한 의미입니다. – p. 11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