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터 볼(Peter K. Bol), 심의용 옮김, «중국 지식인들과 정체성», 북스토리, 2008.
사대부는 본래 도덕에 대한 배움을 추구하는 도학자인 동시에 문에 대한 배움을 추구하는 문사(文士)이기도 했다. 이때 문사는 문학적 기교에 능숙한 예술가를 뜻하기보다는 문장으로써 정치에 참여하고 사회를 변화시키고 다른 사람들을 교육하고자 한 실천가를 뜻한다. 소동파는 이런 문인 전통을 이은 마지막 거인이었다. – p. 9
구양수 이후의 다음 두 세대를 이분법적으로 구분하는 것은 지나치게 단순화하는 것일지언정 잘못된 것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즉 첫 번째 세대로 왕안석과 사마광은 당시 지도적인 정치 사상가이며 정치가로서 모두 사회, 정치적 문제에 힘을 쏟으면서도 매우 다른 결론에 이르렀다. 그리고 다음 세대의 두 위대한 사상가로서 소식과 정이는 개인적 수양과 창조성의 문제로 관심을 돌려 상반되는 결론에 이르렀다. [···] 지성적 전환은 결국 어떤 사람이 다른 사람들에게 여러 가지 유용한 선택지들 가운데 하나의 가능성이 다른 것보다 더 좋다는 점을 설득함으로써 일어난다. 한 시기 동안 선택되지 않고 무시된 다른 선택지들은 주변부에서 지속되다가 결국 중심으로 흡수된다. – p. 28
1030년대에 구양수는 도덕을 추구하는 것과 정치에 참여하는 것 사이의 어떤 모순을 해결하기 위해 노력했다. [···] 구양수는 역사적인 자기의식을 포기하지 않고서 혹은 현재의 상태를 이룬 제도적 변화를 부정하지 않고서, 정치와 도덕을 통일시키는 목적을 위한 방법을 드러낸다. 한 측면은 고대로부터 시작해서 시간에 따라 변화한 제도적인 관심들에 대한 탐구이고, 또 한 측면은 그러한 관심과 그것의 변형들, 그리고 시대에 따라 그러한 의도들의 실현 이면에 담긴 의도에 대한 탐구인데 구양수는 이 둘 사이의 변증법을 창안한다. [···] 시인들은 도덕적인 덕목들을 가르치기 위해서 시를 쓰지 않는다. 그들은 개성적인 호오(好惡)에 따라 반응하는 것이다. [···] 우리가 알 수 있는 것은 시인들이 사건들과 그것에 대한 시인의 반응을 연결하는 근본적이고 본래적인 지점이다. [···] <<시경>>은 고대의 질서를 통합했다고 공자가 믿었던 도덕적 가치들의 특수한 사례들을 볼 수 있게 한다. [···] 구양수는 <<시경>>의 시인들을 사건들에 감정적으로 반응하고 그래서 항상 어떤 판단을 내리는 자신과 같은 사람들로 보았다. 시들은 맥락 속의 사건이다. 그것은 사람이 주어진 상황에 어떻게 반응했는가와 관련지어 이해될 수 있는 본질적으로 앞뒤 조리가 맞는 표현이다. 시들은 인정(人情), 즉 인간 삶의 실정에 대한 감정적인 반응들을 기록하고 있다. 이 경전은 성인의 도를 일련의 우주적 원리들로서가 아니라, 전형적인 감정적 반응들로 구성되어 있다는 성인들의 이해들을 드러내준다. [···] 사람들이 고대인들처럼 어떤 사건에 대해서 도덕적으로 반응하는 사회를 건설하는 데에는 도덕과 정치가 하나인 세계로 향하기 위해 무엇을 해야 할 것인지를 생각하는 정치적 책임감을 가진 사람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 문장을 창작하는 사람의 과제는 고대와 이후 역사에 대한 연구를 통하여 수양된 감수성을 가지고 스스로 사건들에 반응하는 것이다. [···] 보편적인 것은 특수한 맥락에 상응하는 속에서만 존재할 수 있다. – pp. 450~461
소식의 도는 공통적인 관심들을 실현하기 위하여 개인성과 다양성을 요구한다. [···] 더 나아가, 소식의 도는 결국 사람이 창조한 문이 어떻게 모든 것에 동일한 형식을 가지거나 동일한 결론에 이르러야 한다고 요구하지 않으면서도, 진정한 가치를 가질 수 있는가를 설명한다. 확실성 대신에, 소식은 끊임없이 축적적이고 변화하며 다양한 관심들에 적응하는 문화에 대한 전망을 제시했다. – p. 595
남쪽에는 많은 잠수부들이 있다. 그들은 하루 종일 물 속에서 산다. 7세에 그들은 헤엄칠 줄알고 10세면 물에 오래 떠 있을 수 있고, 15세에는 물속 깊이 잠수할 수 있다. 이제 잠수는 조심스럽게 해야할 것이 아니다. 그들은 물의 도와 같은 것을 얻었다. 그래서 북쪽의 용맹스러운 사람이 잠수부에게 물어서 잠수하는 방법을 구하여 황하에서 그들이 말해준 것에 따라서 시험을 해보았다. 그런데 그들은 항상 물에 빠지기만 했다. 그래서 학문을 하지 않고서 스스로 도를 구하려는 사람들은 바로 북쪽 사람들이 잠수를 배우는 것과 같다. [···] 소식은 구체적인 실천의 맥락 속에 매우 큰 문제를 놓는 데 뛰어난 재주를 가지고 있었다. 그리고 추상적인 관념은 개별 속에서 의미 있게 경험된다는 그의 선천적인 믿음에서 이러한 재주가 나왔다. – p. 63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