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버트 솔로몬(Robert C. Solomon)·캐슬린 히긴스(Kathleen M. Higgins), 박창호(옮김), «세상의 모든 철학», 이론과실천, 2007.
소크라테스는 무엇보다도 덕이야말로 모든 것 중에서도 가장 가치 있는 것이고, 진리는 우리의 일상적 경험의 ‘그림자들’ 너머에 놓여 있으며, 철학의 고유한 임무는 우리가 아는 것이 얼마나 적은가를 보여주는 일이라고 가르쳤다. – p. 95.
소크라테스는 소피스트를 반대하지 않았다. 그보다는 그들 자신의 수사학적 논증으로써 그들을 이겼다. ··· 그들이 그의 엄격한 변증법의 시험에 통과하지 못하면 선생으로서 그들을 질타했다. 소크라테스는 지식의 수준을 높이(아마도 도달하기에 불가능할 정도로 높이) 잡았다. 따라서 그는 항상 자신의 무지를 인정하였으며, 무엇보다도 다른 사람들의 무지를 드러냄으로써 그들을 능가하였다. 그는 최고의 소피스트였다. ··· 소크라테스의 대화들은 단 한 줄의 사유도 보여주지 않으며, 철학 이론들에 관해서도 마찬가지이다. 거기에는 단지 모방할 수 없는 소크라테스의 스타일과 인격만이 드러날 뿐이다. – p. 98.
아리스토텔레스가 권장하는 가장 중요한 활동은 덕을 표현하는 행위이다. 덕을 가리키는 그리스어 아레테(arete)는 ‘탁월함’으로도 번역될 수 있다. 덕이란 출중한 인물의 성격을 이루는 특징들 중의 하나이다. 물론 이런 의미에서 덕의 종류에는 많은 것들이 있을 것이다. 씨름에서의 강인함, 경주에서의 스피드, 토론에서의 명민함, 노래에서의 훌륭한 목소리 등. 그러나 아리스토텔레스의 관심을 끄는 덕은 더 일반적인 덕이다. 즉, 한 사람을 빼어난 운동가, 예술가, 의사가 아니라 하나의 훌륭한 인간으로 만드는 덕이다. 그러한 일반적인 덕이란 용기, 절제, 정의감, 유머 감각, 진실성, 우정 어린 태도, 그리고 일반적으로 말해서 그냥 같이 살기에 편안하고 흥미로운 사람이 됨을 말한다. 그런데 그런 덕들의 목록에서 특별히 ‘도덕적’인 것은 없다는 사실을 주목하자. 그리고 아리스토텔레스나 다른 어떤 그리스인들도 오늘날 윤리학의 핵심주제와 같은 특정한 의미의 ‘도덕성’을 갖고 있지 않았다는 점은 특기할 만하다. – p. 131.
에피쿠로스(기원전 341~270년)는 데모크리토스의 추종자로서 별로 신통치 않은 원자론자이자 에피쿠로스주의의 창시자였다. … 그들이 진정으로 믿었던 것은 마음의 평화였다. 에피쿠로스는 쾌락의 추구와 감각의 기쁨은 완전히 ‘자연스러운 것’이라고 생각하였다. … 그의 주된 관심사는 불안으로부터의 자유, 즉 아타락시아였다. … 죽음이란 전적으로 아무것도 아니며, 단지 신체와 영혼을 구성하고 있던 원자들의 분해일 뿐이다. 죽음이 그런 것이라면, 그것을 두려워할 아무런 이유도 없다. – p. 139
아우구스티누스가 서구철학에 한 하나의 위대한 공헌은 한 사람의 내면적 삶을 강조한 점이었다. ··· 시간에 관한 ‘내적인’ 혹은 ‘주관적인’ 경험을 치밀하게 기술하고 소개한 사람은, 그 어떤 다른 철학자보다도 바로 아우구스티누스였다. ··· 아우구스티누스는 신과 인간 영혼의 관계를 종교의 중심적인 관심사로 보았다. 영혼은 ‘신의 형상대로’ 창조되었기 때문에, 자기인식은 신을 알 수 있는 수단이 된다. 이렇게 하여 우리는 아우구스티누스와 더불어 철학에서 가장 극적인 전환의 하나인 ‘내면으로의’ 전환을 이루게 된다. – p. 227.
결코 신이 인간으로 하여금 죄를 짓게끔 야기하지 않았으며, 오히려 신은 인간에게 인간의 추락된 지위 속에서도 악을 극복할 능력을 주었다. – p. 231.
안셀무스의 증명은 전통적으로 신의 존재를 증명하는 한 ‘방식’으로 간주되었지만, 그는 한동안 자신의 증명을 비신앙자들을 설득하는 수단으로 이용하려 하지 않았다. 그는 자신의 증명이 이미 신앙을 가진 사람들에게 신의 본성을 분명하게 드러내줄 뿐이라고 주장하였다. 안셀무스는 자신의 존재론적 증명에서 신의 정의 자체가 신의 존재를 포함하고 있다고 하였다. 안셀무스에 따르면, 신은 ‘그보다 더 위대한 어떤 것도 생각할 수 없는 것’이라고 하였다. ··· 신은 정의상 생각할 수 있는 가장 완벽한 존재이다. ··· 그러한 존재는 그 관념을 완벽하게 공유하면서 또한 존재하기도 할 것이다. 일단 우리가 신의 개념을 생각할 수 있는 가장 완벽한 존재로 받아들이게 되면, 우리는 논리적으로도 신의 존재를 수용하게 된다. – p. 259.
··· 아벨라르두스는 주로 논리학에, 혹은 더 정확히 말하자면 오늘날 우리가 언어철학이라고 부르는 분야에 관심을 가졌다. 오늘날의 많은 철학자들이 그러는 것처럼, 대부분의 신학적 철학적 혼동은 언어에 관한 혼동, 즉 단어들의 의미들에 관한 혼동의 결과라고 그는 믿었다. ··· 모든 단어들이 다 어떤 존재를 지칭하는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 말은 우리를 속여 우리로 하여금 보편자의 용어로 생각하게 만들지만, 보편자는 실재적이지 않다. 그것은 단지 우리가 언어를 사용할 때 우리가 가정하는 구성적 개념일 뿐이다. – p. 260.
자연 세계를 통하여 신의 법이 작용하는 것을 보면서, 토마스는 형이상학 전체가 신을 알기를 지향한다고 주장하였다. – p. 264.
스코투스에 따르면, 어떤 사물의 개별 정체성은 그 사물의 형상의 한 부분이기도 하다. 스코투스는 어떤 사물의 ‘공통적인 본성’과 그 사물의 ‘개념적인 차이’를 서로 구별하였다. 일자와 다자에 대한 고대의 문제에 더하여, 정체성[동일성]과 차이에 관한 더욱 근대적인 질문들이 스코투스의 복잡한 논의 속에서 처음으로 그 모습을 드러내게 되었다. 그와 유사한 페르시아의 철학자들처럼, 그도 본질과 실존의 구별을 이용하여 신과 인간 정신 사이의 관계에 대한 설명을 체계적으로 발전시켰다. – p. 267.
흄은 이성이 할 수 없는 많은 것들, 곧 이성이 제공해줄 수 없는 확실성, 이성이 증명할 수 없는 것이 있음을 보았다. 역설적으로 흄의 회의론은 믿을 수 있는 자기반성적인 계몽주의 사상의 가장 분명한 예였다. ··· 이성은 우리에게 지식을 보장해줄 수 없지만 자연은 우리에게 이 세상을 살아갈 수 있는 좋은 감각능력을 제공한다. 이성이 도덕을 보장해줄 수 없지만, 우리 인간의 천성은 서로에 대하여 이성적으로 행동할 수 있는 적절한 감정을 우리에게 부여한다. ··· 흄은 개인적 성격, 즉 좋은 교육, 덕의 수양, 전통에 대한 존중의 중요성을 옹호하였다. 이성은 한계를 지닐지 모르지만 우리의 감정과 자연적인 상식은 사회의 전통을 통하여 양성되는 것으로서, 전적으로 과학적인 근대 철학의 분위기 속에서 너무 오랫동안 무시되어온 힘과 덕을 지녔다. – p. 348.
경험론자든 합리론자든, 그들은 수백만의 사람들을 죽이고 유럽 및 유럽인들을 갈라놓는 지역적 편견과 상호 적대감으로 싸우는 인간의 보편적 이성 능력에 대해 논의하였다. 근대 철학의 존재론, 인식론, 형이상학의 확장된 논의가 아니라 지독한 학살 대신 활발한 대화를 요청하는 것이었다. 그들의 진정한 공격 대상은 비합리성이었다. 계몽주의는 지식의 본성에 관한 것이 아니라 지식과 탐구를 옹호하는 것이었다. ··· 이성과 경험 사이의 논쟁은 이러한 세계주의적인 움직임의 범위 내에서 행해진 전략적이고 기술적인 불화였다. – p. 350.
흄의 회의론은 칸트를 ‘독단의 잠’, 즉 라이프니츠 형이상학의 무비판적인 수용에서 깨어나게 했다. – p. 363.
헤겔 철학의 결론은 비록 때로 ‘절대’라는 오만한 언어로 표현되기는 하였으나, 일종의 커다란 철학적 겸손과 우리는 모두 우리 자신보다 더 큰 어떤 것의 부분이라는 자각을 동시에 제시하는 것이었다. 지식과 진리에 대한 우리의 개인적인 기여는 결코 최종적일 수 없으며 오히려 언제나 불완전하고 ‘간접적이며’ 부분적이다. – p. 376.
독일어에서 ‘시인’이란 문장가, 현대의 음유시인, 시를 짓는 사람 이상의 인물을 가리킨다. … 시인들은 ‘현대적이고’ 공격적이었으며, 진리는 이성의 연역적 추론이나 과학의 탐구가 아니라 개인의 천부적 재능에 도움을 받은 순수한 영감을 통해서 발견된다고 주장하였다. / 이렇게 이성의 객관성을 위한 힘든 투쟁은 정열과 천부적 재능에 대한 근대의 숭배에 사실상 자리를 내주었다. 이 기형적이지만 열광적인 움직임이 우리가 일반적으로 낭만주의라고 알고 있는 것이다. … 새로이 등장한 독일 정신의 옹호자는 칸트가 아니라 요한 헤르더라는 시인이었다. 그는 철학자이기도 하였다. … 칸트와 계몽사상은 ‘세계주의’와 보편성을 주장하였다. 헤르더…에게는 독일 문화와 특히 독일 사상이 세계 무대에서 특별한 위치를 차지할 권리를 가지고 있는 것이었다. … 반성적인 삶은 한정된 삶이다. 감정에 따른 삶, 즉 시에 의해 포착된 질풍노도(Strum und Drang)는 전인적 인간이 되고 세계와 하나가 되는 데 필요불가결한 것들이다. – pp. 386~387.
20세기는 그 자체로 볼 때, 전통적 진리의 붕괴와 극단적인 공포의 시대로 정의되어야 할 것이다. ··· 제1차 세계대전에는 탱크, 비행기, 독가스, 잠수함 등이 동원되었으며, 전쟁 무대는 유럽에서 시작하여 아프리카를 거쳐 동아시아에 이르기까지 펼쳐졌다. 더군다나 어떤 위대한 승리나 결정적인 전투도 없었다는 사실을 통해 이것이 증오스럽고 환멸스러우며 쓸데없는 전쟁이라는 점이 드러났다. 이 전쟁에서는 불과 몇 야드의 진흙 지대에서 수만 명의 생명이 희생되었다. 그것은 소모전이었으며 그저 파괴를 위한 전쟁이었을 뿐이다. – p. 42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