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영림·주경철·최갑수, «근대 유럽의 형성», 까치, 2011.
유럽에서 근대 학문의 건설자들은 유럽만이 근대 세계를, 곧 ‘근대성(modernity)’을 이룩했다고 확신했다. 유럽만이 전통사회를 뛰어넘는 ‘진정한 변화’를 경험했다. 흥미롭게도 사회과학의 아버지들은 이구동성으로 그 변화의 핵심을 자본주의의 창출로 파악했다. 자본주의의 요체에 대해서는 견해가 달라 예컨대 애덤 스미스는 시장관계로, 카를 마르크스는 소유의 사회적 관계로, 막스 베버는 삶을 조직하는 능력으로 보았지만, 이들 모두는 16세기에 변화의 계기가 일어났음을 발견했다. 그것은 스미스에게 유럽의 해외 진출로 말미암은 분업과 전문화의 확대 및 심화였고, 마르크스에게 16세기 영국의 농촌에서 일어난 ‘자본의 시원적 축적’이자 이로 말미암은 산업자본 및 임금노동자층의 형성이었고, 베버에게 종교개혁의 와중에서 개신교, 특히 장 칼뱅의 가르침 속에서 탄생한 합리적인 ‘자본주의 정신’이었다.- p. 9
1472년에 비잔틴 제국의 마지막 황제의 질녀와 결혼한 이후 이반 3세는 비잔틴 황제의 계승자이자 동방정교회 기독교 세계의 수호자를 자처하게 되었다. – p. 31
양모의 수요가 늘어나자 대지주들은 이전의 곡물 경작 양식을 포기하고 경작민들을 내쫓고 그 땅에 울타리를 쳐서 대토지를 이룬 다음 이곳에서 양을 치려고 했다. 이 과정에서 수많은 사람들을 먹여 살리는 터전이었던 토지에는 이제 양과 단 몇 명의 양치기만 남게 되었다. 토마스 모어가 당시 사회를 예리하게 비판하는 그의 저서 <<유토피아>>(1516)에서 ‘영국에서는 그 순하던 양이 사람을 잡아먹는다’고 표현한 것이 이를 가리키는 말이다. – p. 56
중세인들의 삶을 지배한 구원의 개념이 내세에서의 삶을 지향한 것인데 비해, ‘재생’을 뜻하는 르네상스는 현생을 중시하는 개념임에 틀림없다. 하지만 재생이라는 단어에는 본질적으로 예수의 부활, 고해와 보속(補贖)에 의한 개심, 고행을 통한 갱생 등 중세 기독교적인 의미가 담겨 있다. 이처럼 르네상스에 내포된 이중 개념은 르네상스가 중세적 요소와 근대적 요소가 중첩된 과도기적 현상이었음을 말해준다. – p. 90
베스트팔렌 평화조약은 종합적으로 하나가 있는 것이 아니라 여러 당사국들 간에 개별 조약들이 맺어져서 이를 통해서 유럽의 국제관계가 재정리되었다. [···] 베스트팔렌 조약 체제는 곧 유럽 각국이 서로 상대방을 견제함으로써 어느 한 나라가 지배권을 차지하지 못하도록 막는 국제관계의 형성을 의미했다. [···] 베스트팔렌 조약은 독일 지역의 정치적, 종교적 분열을 고착시키고 이 상태를 주변 강대국들이 유지하기로 작정한 것에 다름 아니었다. – p. 269, p. 272, p. 28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