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한 하위징아((Johan Huizinga), 최홍숙 옮김, «중세의 가을», 문학과지성사, 2010.

원제: Herfsttij der Middeleeuwen (1919년)

세계가 지금보다 5세기 가량 젊었을 때, 삶에 일어난 많은 일들은 지금과 현저히 다른 모습과 윤곽을 띠고 있었다. 불행에서 행복까지의 거리도 훨씬 멀게 여겨졌고, 모든 경험은 기쁨과 고통이 어린 아이의 정신 속에서 갖는 것 같은 그런 즉각적이고 절대적인 강도를 띠었다. 매 행동과 매 사건들은 언제나 일정한 의미를 갖는 형식에 둘러싸여졌고, 또 그 형식들은 거의 의식(儀式)의 높이에까지 올려졌다. [···] 질병과 건강은 훨씬 더 뚜렷한 대조를 보였고, 겨우내 추위와 어두움도 훨씬 더 쓰라리게 느끼는 고통이었다. – p. 11.

[···] 상징적 형태들과 영속적인 대조들이 일상 생활에 감동성을 부여하였던 것이다. 그 감동성은 절망 아니면 희열, 잔혹함 아니면 애정 등의 극단으로 나타났고, 중세의 삶은 그 두 극단을 왔다갔다 한다. [···] 교수대의 광경이 주는 잔인한 흥분과 거친 연민은 민중의 정신 생활에 중대한 영향을 미쳤다. [···] 희생자가 대영주일 경우 백성들은 이중의 만족감을 얻었다. – p. 1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