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구용 역주, «노자», 정음사, 1979.

김구용(역주), «노자», 정음사, 1979.

30개의 바퀴살이 한 바퀴 구멍을 함께하나니, 그 무(無)를 당하여 차(車)의 용(用)이 있음이라. 진흙을 이기어 써 그릇이 되나니, 그 무를 당하여 그릇의 용이 있음이라. 외짝문과 창을 파서 써 실(室)이 되나니, 그 무를 당하여 실의 용이 있음이라. 그러므로 유(有)가 이(利)되는 까닭은 무(無)가 용(用)이 되기 때문이다. – 제9장, p. 37.

옛날에 선비 노릇을 잘 한 사람은 미묘현통(微妙玄通)하여 깊이를 가히 알 수 없었다. 대저 다만 가히 알 수 없었으니, 그러므로 굳이 이를 형용한다면 머뭇거리는 모습은 겨울에 냇물을 건너는 듯하고, 엄연(儼然)한 모습은 그 손님 같고, 부드러움(渙)은 얼음이 장차 풀리는 듯하고(…) – 제15장, p. 47.

무거움은 가벼움의 뿌리가 되고, 정(靜)은 시끄러움의 임금이 된다. 이로써 성인은 종일 행하나 정(靜), 중(重)을 떠나지 않고, 비록 영관(榮觀)이 있을지라도 편안히 처하여 초연함이라. – 제26장, p. 80.

남을 아는 자는 지(智)하고, 스스로 아는 자는 밝으며, 남을 이기는 자는 힘이 있고, 스스로 이기는 자는 강하며 (…) – 제33장, p. 98.

알고서 모름은 상(上)이요, 모르고서 앎은 병(病)이다. – 제71장, p. 19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