빌헬름 딜타이(Wilhelm Dilthey), 김창래 옮김, «정신과학에서 역사적 세계의 건립», 아카넷, 2009.
원제: Der Aufbau de geschichtlichen Welt in den Geisteswissenschaften
이해는 ‘너’ 안에서 ‘나’를 재발견하는 일이다. 정신은 항상 연관의 더 높은 단계에서 자신을 재발견한다. – p. 452.
우리는 과거와 미래를 단지 표상으로만 소유할 뿐인데, 이 표상들은 오로지 현재 안에 살고 있는 자에게만 존재한다. (…) 우리 삶의 배는 말하자면 연속적으로 전진하는 흐름에 실려 나아간다. (…) 과거를 되돌아볼 때 우리는 소극적 태도를 취한다. 과거는 변경될 수 없기 때문이다. (…) 그러나 미래에 대해서는 우리는 적극적이고 자유롭다. 바로 여기서 ‘현재 안에서 우리에게 열려 주어지는 현실성의 범주’ 곁에 가능성의 범주가 생겨난다. – p. 457.
체험, 타인에 대한 이해, 역사적 작용의 주체로서의 공통성에 대한 역사적 파악, 끝으로 객관 정신에 대한 이해 – 이 모든 것들의 공동 작업을 통해 정신적 세계에 대한 앎이 생겨난다. – p. 465.
이해의 대상은 항상 개별자[의 삶의 표출]이다. 그리고 그 고차적 형식에 있어서 이해는 하나의 작품, 또는 하나의 삶 속에 함께 주어진 것을 귀납적으로 취합하여 ‘한 작품, 한 개인, 한 삶의 관련의 연관’을 추리해 낸다. (…) 그러므로 우리는 이 개별자를 보편 인간적인 것의 한 경우로서가 아니라, 하나의 개별적인 전체로서 다룬다. – p. 498.
삶이 길어지면 길어질수록, 가능성들의 폭도 점점 넓어진다. 노년에 가능해지는 모든 것에 대한 이해. – p. 526.
삶의 표출이 전적으로 생소하다면, 해석은 불가능할 것이다. 그러나 그 안에 아무런 생소한 것도 들어있지 않다면 해석은 불필요할 것이다. 이 두 극단적인 항의 중간에 해석의 자리가 있다. 무언가 생소하고 그래서 이해의 기술을 필요로 하는 것이 있는 곳이라면 어디서나 해석이 요구된다. – p. 526.
삶은 외적 세계의 제약 아래 존립하는, 개인들 간의 상호작용의 연관이다. – p. 531.
삶은 ‘철학의 출발점을 이루어야만 하는 근본 사실’이다. (…) 시간 안에서의 자신의 전진 중에, 그리고 그렇게 생성된 작용 연관에서 파악될 수 있는 한에서의 삶은 역사적이다. 이것이 가능한 것은 회상이 이러한 [삶의] 흐름을 추형성하기 때문이다. 이때 회상은 개별자를 재생산하는 것이 아니라, 연관 자체를 즉 [그 개별자가 속했던 역사적] 단계를 추형성한다. – p. 602.
종교적 체험 역시 인간학적 자각으로부터 생겨난다. 이렇게 해서 우리는 어떤 뿌리, 그 안에서 시인과 예술가의, 그리고 종교인과 철학자의 체험과 이해가 서로서로 연관을 맺는 뿌리에 도달한다. 이 모든 것에서 [체험과 이해에서]…… 그리고 삶 자체의 경험으로부터, ‘삶을 넘어서는 어떤 것’이 생성되고 형성된다. 삶 자체에는 언제나 삶을 넘어서 그 밖으로 이끌어 가는 계기가 포함되어 있다. – p. 613.
역사 서술은 우리가 현재와 우리 자신의 국가에서 출발해서 거꾸로 거슬러 올라가며 ‘현재의 인류의 회상 안에서 아직도 거의 살아있는 것’을 표현할 때, 그때 시작된다. – p. 64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