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크 헨리(Mark C. Henrie), 강유원 등 옮김, «인문학 스터디», 라티오, 2009.

역사적 사건이 현대의 기준에 부합하지 않는다고 함으로써 그 사건들이 실패했다고 부정적으로 판단(좌파의 특징)하거나, 이러한 사건이 현재 관행과 신념의 발전에 기여한 것을 긍정적으로 판단(우파의 특징)하지 말아야 한다. 다시 말해서 현재 우리가 알고 있는 것을 기준으로 삼지 말아야 하는 것이다. – p. 25

프랑스의 작가 샤를르 페기는 “호메로스는 언제나 새롭다. 조간신문처럼 낡아빠진 것도 없다”고 말한 적이 있다. 까마득한 옛 사람의 작품들을 연구하는 가장 중요한 이유는 바로 그 새로움 때문이다. 더구나 고대 그리스와 로마의 문학 작품을 읽으면 독자는 인간 역사에서 거의 모든 사람들에게 영향을 주었던 바로 그 텍스트를 접하게 된다. 따라서 데카르트나 에이브러험 링컨 또는 윌리엄 포크너, 혹은 심지어 클린트 이스트우드의 정신세계를 이해하고 싶다면, 또한 자신을 이해하고 싶다면 고전을 이해해야 한다. – p. 35

<<일리아스>>는 아킬레우스의 분노에 관한 이야기이다. (…) 위대한 전사의 용기이자 그의 영웅적 행동의 뿌리인 이 분노는 결국 영웅이 파멸하는 원인임이 밝혀진다. 이는 인간의 비극적 상황이다. 아무리 뛰어나다 해도 인간은 자신의 실존적 한계를 벗어날 수 없다. (…) [오뒷세이아는] (…) 영웅 오뒷세우스가 트로이 전쟁이 끝난 후 자신의 집으로 돌아가는 고된 여정에 관한 이야기다. (…) 인생에서 가장 좋은 선택은 무엇인가? 영광스런 군사적 승리, 평온한 가족의 행복, 또는 다른 어떤 것인가? – p. 37

위대한 문학작품이라면 어느 것이라도 ‘세계’ 전체를 담고 있다. 그러한 세계를 성과 젠더처럼 좁은 렌즈를 통해 보는 것은 심각한 왜곡이다. – p. 41

셰익스피어는 시적 상상이라는 거울을 모든 자연과 역사에 비춘다. (…) 그는 ‘실재한 인생’의 이야기, 즉 역사적 인간의 생애가 신화적 이야기만큼이나 많은 의미를 담을 수 있다는 것을 보여준다. (…) 그가 줄거리를 허구적으로 만들어낸 게 아니라는 점이 셰익스피어 작품의 놀랍고도 뛰어난 점이다. (…) 우리는 셰익스피어의 희곡의 인물들에 가장 깊이 끌린다. 그들은 900여 명이나 되지만 각각 다른 인물로 환원될 수 없는 개인이며, 각자 자신의 삶을 가지고 있다. (…) 맥베스에게 “인간적 면모가 가득”하다면, 리처드 3세는 무자비하게 사악하다. 맥베스의 야망이 명예를 중심으로 한 허영의 문제라면 리처드 3세의 야망은 권력지향적이고 자만심에 의해 생긴 것이다. 맥베스가 약한 곳에서 리처드 3세는 강하다. (…) 사랑은 저급한 어떤 것에서 시작하거나 우리를 타락하게 만들지도 모르지만 숭고한 것이 될 수 있다. 그의 희극은 언제나 인간 사랑의 신성한 완성인 결혼으로 끝난다. 셰익스피어는 우리에게 사랑하는 법을 가르친다. – p. 46

소크라테스 이전의 철학자들은 생물학, 자연학, 천체의 운행 같은 자연(physis)의 움직임을 알고자 했다. 반면 소크라테스는 인간을 알고자 했다. 그래서 그는 변하지 않는 인간의 ‘본성’이 무엇인지 밝히고자 했다. (…) 소피스트들은 인간사에 보편적 진리는 없고 모든 것은 상대적이라고 주장했다. 인간사에 대해 알아야 하는 것이 하나 있다면 그것은 오직 그 인간사를 다루는 방법론뿐이다. 결국 그들에게 배움의 핵심은 지혜가 아니라 힘이었다. 소크라테스는 소피스트들을 가장 강하게 비판한 ‘철학자’였고 힘보다는 ‘지혜를 사랑한 자’였다. – p. 63

근대에 관한 지성사적 통찰에서 고려해야만 하는 주요한 계기들은 30년전쟁(1618-1648)과 프랑스혁명(1789)이다. 같은 신을 믿으면서도 가톨릭과 프로테스탄트로 갈라진 두 세력 사이의 쟁투에서 시작된 30년전쟁은, 초인적 신의 지배로써 유지되던 세계가 결정적으로 무너지고 그 자리에 국가의 지배가 자리잡게 된 사건이다. 지배권을 쥐려는 종파들 사이의 싸움이 종교 그 자체를 무너뜨린 것이다. (…) 프랑스혁명 이후 세계는 인간과 신의 싸움이 아니라 인간과 인간, 더 정확하게는 인간 집단과 인간 집단의 싸움이 벌어지는 곳으로 변화하였다. (…) 칸트는 (…) 계몽주의의 이성 중심주의, 프랑스혁명의 인간 해방 등의 한계를 비판적으로 검토하고 하나의 체계로 수렴하려 한다. 그의 중심은 ‘인간’이고, 이는 다시 “인간은 무엇을 알 수 있는가”, “인간은 무엇을 행해야만 하는가”, “인간은 무엇을 바랄 수 있는가”로 나뉘어진다. – p. 75

고전 철학자들이 탐구의 주제로 삼았던 자연은 정의상 존재할 수밖에 없는 것이다. (…) 결과적으로 고전 철학의 관점에서 보면 우주는 ‘영원히 미리 존재하는 것’으로 전제된다. 우주는 시초를 가질 수도 없으며, 그에 따라 끝도 있을 수 없다. 그러므로 그리스의 역사철학은 반드시 역사를 순환의 관점에서 고찰하게 된다. 자연이 순환, 즉 계절을 가지고 있는 것과 마찬가지로 인간사도 순환한다. 원리적으로는 태양 아래 진정으로 새로운 것이란 있을 수 없다. 따라서 고대 철학자들은 계시종교의 출현에 속수무책일 수밖에 없었으며, 특히 인간의 몸으로 태어난 신의 아들 예수를 섬기는 기독교의 계시에 대해 그러했다. (…) 기술적 진보의 가능성에 대한 신념은 시간을 순환적인 것이 아닌 선형적인 것으로 이해할 때 가능한데, 시간에 대한 이러한 생각은 바로 계시종교가 도입한 것이다. – p. 13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