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해영, «전국시대 비판철학», 문사철, 2009.
이해영, «전국시대 비판철학», 문사철, 2009.
대변혁에 동반하여 각 계급 내지 계층을 대표하는 학파들이 나타났다. (…) 시대상황의 특이한 조건 속에서 여러 학파의 서로 다른 관점들은 정치적 영향이나 구속을 덜 받고 비교적 자유롭게 개진될 수 있었으며, 그에 힘입어 수많은 탁월한 사상가가 나타났다. 춘추전국시대는 이른바 백가쟁명의 시대, 제자백가의 시대였다. 제자백가들은 서로 다른 이해관계와 관점에서 당시의 현실을 진단하고 새로운 변화에 대등하는 사상체계를 세웠으며, 그 중에서도 특히 몇몇 크게 세력을 떨치던 학파와 학자들은 각기 나름대로 비판의식에 근거하여 격렬한 사상투쟁을 전개하였다. 그 가운데 유가사상가 맹자는 비판의식의 주안점을 도덕의식에 두었다. 그 이론의 목표는 인간이 자신의 ‘천부적 도덕본질’을 각성하여 도덕적 인간이 되고, 그것을 정치적으로 전개하여 도덕정치인 왕도를 실현하는 것이었다. 이에 비해 묵자는 생산노동과 실용성에 중점을 둔 비판의식을 구축하였다. 그 이론의 목표는 대중의 공동이익을 실현하고 정치적, 경제적 평등을 이루는 것이었다.
유가와 묵가가 ‘꼭 이루어져야 할 세계’나 ‘해야 할 것’, 즉 당위를 추구하였던 데 비해 장자는 인위적인 것을 부정하고 ‘있는 그대로의 모습’, 즉 ‘자연적 본성’만을 참된 것으로 보았다. 그의 이론 속에서는 자연이 변화 그 자체로 인식되었으며, 따라서 인간도 변화의 객관적 필연성에 따라 살아가는 것이 자연스러운 것이었다. 순자는 유가의 예설을 계승하고 스스로 유가임을 표방하였다. 그러나 도가의 자연관을 잇고 법가적 입장을 수용하는 등 종합가적 성격을 지닌다. 그는 천을 도가처럼 자연으로 이해하였으나 인간은 인간만의 고유한 영역, 즉 주체적 능동성의 영역이 있다고 주장하였다. 어떤 사상이든 시대정신이라는 성격을 지닌다. 그러므로 시대를 공유하고 있던 맹자, 묵자, 장자, 순자 등 각 사상가나 학파의 현실관이나 이상적 목표가 뚜렷이 다르게 나타나는 것은 결국 각 계급 내지 계층의 이해관계가 그들의 사상에 적극적으로 반영되었기 때문일 수밖에 없다. 그러나 각 학파의 사상에 그들의 이해관계가 반드시 직접적으로 나타나 있는 것만은 아니다. 그것은 어떤 사상체계이든지 시대, 지역, 계층, 집단 등의 특수성을 기반으로 하면서도 논리를 추상화, 정밀화하여 보편성을 지향하는 성향을 지니기 때문이다. – pp. 14-1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