타밈 안사리(Tamim Ansary), 류한원 옮김, «이슬람의 눈으로 본 세계사», 뿌리와이파리, 2011.

원제: Destiny Disrupted (2009년)

세계사는 언제나 ‘우리’가 어떻게 지금까지 오게 되었는가에 대한 이야기이므로, ‘우리’가 누구를 의미하며, ‘지금 여기’가 무엇을 뜻하는가에 따라 역사를 서술하는 모양새가 달라지기 마련이다. 전통적으로 서구의 세계사는 ‘지금 여기’를 민주주의 산업 문명으로 상정한다. [···] 이것 때문에 우리는 인류 전체가 한 방향으로 향해 간다고 쉽게 간주해버리는데, 늦게 출발했거나 천천히 움직여서 흐름에 뒤처진 나라를 ‘개발도상국’이라 부르는 것도 그 때문이다. – p. 29.

학계에서는 [···] 주로 무슨 일이 ‘실제로 일어났는가’를 파헤치는 데 집중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나의 가장 큰 목표는 무슬림들이 어떤 일이 일어났다고 생각하는지는 전달하는 것이다. 그것이 바로 오랜 세월 무슬림을 움직여온 이야기이며, 그것을 알아야 세계사 안에서 무슬림의 역할을 이해할 수 있기 때문이다. – p. 33.

여러 면에서 페르시아 제국은 독보적이었다. [···] 페르시아인은 아시리아인과 정반대였으니, 광대한 영토를 통치하기 위해 완전히 다른 방법을 고안해냈다. (…) 세금을 내고 황제의 명과 요구 사항 몇 가지에 따른다는 조건만 지키면, 각자 다른 법이 있는 모든 민족이 그들 나름의 민속과 풍습에 맞게 저마다 지도자들의 규칙에 따르며 살아갈 수 있도록 허락하는 방법으로 광대한 영토를 통치했다. – p. 45.

무슬림들이 메카에서 메디나로 이주한 사건을 히즈라라고 한다. [···] 히즈라는 무슬림 역사에 일어난 사건 중 가장 중요한 자리를 차지한다. 그 사건으로 이슬람에서 ‘움마’라고 부르는 무슬림 공동체가 탄생했기 때문이다. 히즈라 이전에 무함마드는 개별 추종자들의 설교자였다. 히즈라 이후에 무함마드는 법 제정을 하고 정치 방향을 제시하며 사회 지도를 담당하는 한 공동체의 지도자가 되었다. [···] 히즈라 이후 메디나에서 확실하게 드러난 그 사회 프로젝트는 이슬람의 핵심 요소다. 분명히 이슬람은 하나의 종교지만 또한 시작부터 정치적이었다. [···] 이슬람은 고립된 개인의 구원에 초점을 맞추기보다는 정의로운 공동체 건설이라는 프로젝트를 제시했다. – pp. 67-68.

이슬람 학자는 쿠란과 하디스, 키야스, 이즈마까지 샅샅이 다룬 뒤에야 윤리와 법에 맞는 사고에서 마지막 단계인 이즈티하드, 즉 ‘이성에 기반한 자유롭고 독립적인 사고’를 할 수 있었다. 학자나 재판관은 무함마드가 전한 계시에서 바로 답이 나오지 않거나 선례에서 근거를 찾을 수 없는 분야에만 이성적인 사고를 적용할 수 있었다. – p. 17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