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른스트 곰브리치(Ernst Hans Josef Gombrich), 백승길 등 옮김, «서양미술사», 예경, 1997.
원제: The Story of Art
대다수의 화가들은 판화 창작 시에 미리 판화의 인쇄 수량을 결정하여 인쇄된 완성작에 번호를 매기고 서명한다. 그 후에는 원판을 없앰으로써 판화의 가치와 희소성을 확보한다. – p. 46.
반에이크는 작은 개의 곱슬곱슬한 털 하나하나를 모사하는 데 온 정성을 쏟고 있는 반면에, 그로부터 이백 년 뒤의 벨라스케스는 개의 특징적인 인상만을 포착하려고 노력했다. 레오나르도처럼, 아니 오히려 그보다 더 한층 꼭 필요한 것만을 묘사하고 보는 사람에게 상상할 여지를 남겨놓고 있다. 비록 그는 털을 하나도 그리지 않았지만 그의 작은 개는 사실상 반 에이크의 개보다 훨씬 더 털이 북실북실하고 자연스럽게 보인다. 19세기의 파리에서 인상주의의 창시자들이 과거의 어느 다른 화가들보다도 벨라스케스를 존경한 것은 바로 이와 같은 효과 때문이었다. 자연을 새로운 눈으로 보고 관찰하며 색채와 빛의 새로운 조화를 끊임없이 발견하고 그것을 누리는 것이 화가의 기본적인 과제가 되었다. 유럽의 가톨릭 진영에 살았던 위대한 미술가들이나 정치적 장벽의 또 다른 쪽인 신교도의 네덜란드에 살던 위대한 미술가들이나 이 점은 모두 같았으며 이러한 새로운 임무에 그들의 열정을 쏟았다. – p. 411
렘브란트는 그의 추한 모습을 결코 감추려고 하지 않았다. 그는 거울에 비친 자신을 아주 성실하게 관찰했다. 우리가 이 작품의 아름다움이나 용모에 대해 이야기하는 것을 잊어버리는 이유는 바로 이러한 성실성 때문이다. 이것은 살아 있는 인간의 실제 얼굴이다. 여기에는 포즈를 취한 흔적도 없고 허영의 그림자도 없으며 다만 자신의 생김새를 샅샅이 훑어보고, 끊임없이 인간의 표정에 내포되어 있는 비밀에 대해 보다 많은 것을 탐구하려는 화가의 꿰뚫어보는 응시가 있을 뿐이다. 이러한 심오한 이해가 없었다면 렘브란트는 그의 후원자이자 친구이며 후에 암스테르담의 시장이 된 얀 지크스의 초상화 같은 위대한 작품들을 그릴 수 없었을 것이다. 이 작품을 프란스 할스의 생생한 초상화와 비교한다는 것은 공정하지 않다. 왜냐하면 할스는 우리에게 실감나는 스냅 사진 같은 느낌을 주는 반면에 렘브란트는 인물의 전생애를 다 보여주는 것 같기 때문이다. – p. 422
그가 그린 해바라기, 빈 의자, 사이프러스 나무, 그리고 몇몇 초상화들은 천연색 복제판으로 널리 보급되어 오늘날 평범한 실내에서도 흔히 볼 수 있다. 그것이야말로 고흐 자신이 원했던 것이다. [···] 그는 돈많은 감식가의 마음만을 만족시키는 세련된 예술이 아니라 모든 평범한 사람들의 마음을 기쁨과 위안으로 채워줄 수 있는 소박한 예술을 갈망했다. – p. 54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