셰일라 커런 버나드(Sheila Curran Bernard), 양기석 옮김, «다큐멘터리 스토리텔링», 커뮤니케이션북스, 2009.

원제: Documentary Storytelling

훌륭한 다큐멘터리는 문학의 걸작이나 혹은 강한 사회적 반향을 몰고 오는 영화와 마찬가지로 관객의 몰입을 유도할 수 있는 구체적 줄거리나 인물의 이야기를 제시하면서 동시에 그 구체성을 초월하는 커다란 주제를 언급한다. 예를 들어 <소리와 분노>는 한 가족이 어린아이에게 청력을 회복할 수 있는 수술을 받게 할 것인가 말 것인가 하는 고통스러운 과정에 관한 이야기이기도 하지만 다른 한 편으로는 자아정체성, 유대감, 가족 등과 같은 보편적 쟁점에 대한 이야기이기도 하다. – p. 28

“조직 세력은 요원의 불길처럼 퍼져 나갔다”라는 식으로 상투적이고 의미 없이 말하는 것보다는 다음과 같이 증거를 제시하며 말하는 것이 더 좋다. “지난 10년간, 파리에서 20명의 회원으로 시작한 조직은 12개국에 지부가 생겼고 회원의 수는 2500명으로 증가하였다.” – p. 33

<다낭의 딸>의 결말 부분에서 미국 입양아와 그녀의 베트남 가족은 서로의 상처를 극복하고 아주 기쁘게 다시 만나게 된다. (…) 이 작품을 보는 관객이 느끼는 긴장감은 서로 다른 입장 중에서 어느 한쪽을 택했기 때문에 생기는 것이 아니라 양쪽 입장을 모두를 이해하기 때문에 생기는 것이다. – p. 38

쉬운 일은 아니지만 인물이 추구하는 목표는 실천할 수 있거나 달성할 수 있는 것이어야 하는데, 아주 구체적으로 표시할 수 있어야 하며 실제적이어야 한다. ‘인종 편견의 타파’나 ‘암 치료’ 혹은 ‘열대우림의 보호’ 등은 모두 가치 있는 목표가 될 수 있지만 구체성이 부족하다. 영화의 소재를 찾을 때는 개인적으로 관심을 갖고 있는 분야를 존중하면서 그런 관심을 밝혀줄 수 있는 어떤 구체적인 이야기를 찾는 것이다. – p. 40

관객은 이야기의 우여곡절을 스스로 적극적으로 경험할 때만이 큰 감동을 느낄 수 있다. 하지만 우리는 고압적인 해설, 화려한 그래픽, 혹은 이중 삼중의 인터뷰 등을 통해 관객에게 무엇을 어떻게 생각할 것인가 선도하며 가르치려는 다큐멘터리를 너무 흔하게 볼 수 있다. – p. 41

캘리포니아 대학교 버클리 캠퍼스에서 영화 제작 지망생을 가르치는 존 엘스 감독은 현장에 촬영을 나가는 사람들은 ‘하늘이 무너져도 반드시 확보해야 할 최소한의 내용’을 사전에 계획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 p. 53

이미 결론이 내려진 주제를 다큐멘터리로 만드는 것과 제작자가 강한 신념을 갖고 있는 가운데 다큐멘터리를 만든다는 것은 차이가 있으며, 또 다큐멘터리의 이야기 맥락 속에서 강한 결론이 내려지는 것과도 차이가 있다. 예를 들어 <우리의 소원이 이루어질 때까지>를 만든 제작진 중에서 시민운동에 반대하는 입장을 가진 사람은 없다. 그렇지만 이들 제작 책임자들은 관전의 다양한 폭을 충분히 대변하는 여러 사람들의 경험을 기꺼이 제시해 다큐멘터리를 보고 관객들이 스스로 판단을 내리게 하는 것이 바람직하다는 입장을 고수했다. – p. 76

… 괄목할만한 작품으로 영국 영화감독 마이클 앱티드Michael Apted의 <업Up> 시리즈를 들 수 있다. 그는 1960년대 <세븐 업>을 만들었는데 이것은 가족의 경제적 환경이 서로 다른 14살짜리 어린이를 몇 명 선정해 그들의 삶과 미래에 대한 희망을 묻는 것으로 시작한다. … 그는 이 어린 아이들을 매 7년마다 다시 찾아, 어렸을 적의 꿈이 어떻게 변화하고 있는지 확인하여 그것을 다큐멘터리로 만들었다. 14세, 21세, 28세, 35세 그리고 최근에는 42세까지의 버전이 나왔다. … 관객은 이들의 성공과 좌절을 통해 평범하게 혹은 비범하게 산다는 것이 무엇인지에 대해 깊은 통찰력을 얻게 된다. – p. 105

역사에 대한 인식을 잘못 심어준 다큐멘터리 작품의 예로서 마이클 무어의 <로저와 나>가 있다. 이 작품은 다큐멘터리 장르가 갖는 강한 사회적 영향을 희석시키는 불행한 결과를 초래했다. (…) 이 점에 대해 무어는 ‘<로저와 나>는 단지 사람들에게 우리 주위에서 일어나는 한 사건에 대해 더 깊게 생각해 보기를 염원하는 오락물에 지나지 않는다’라고 제이콥슨에게 변명했다. – pp. 110-114

결론을 미리 내려놓고 다큐멘터리를 만드는 것과, 다큐멘터리가 강한 주장을 반영하고 있다거나 … 제작자의 신념이 강하다는 것과는 차이가 있다. – p. 121

주제에 대해 가능한 한 완벽한 지식을 얻도록 노력하지만, 단지 며칠, 몇 주, 혹은 몇 달의 노력으로 해당 주제의 전문가가 될 수는 없다. 자문역을 맡은 사람과 전문가들에게 나도 ‘전문적 지식이 많은 사람’처럼 보이기 위해 잘 이해하지 못하는 것이나 헷갈리는 내용을 덮어주는 것은 좋지 않다. 당신의 전공은 복잡한 이야기를 일반인에게 잘 이해할 수 있도록 소통하는 것이다. – p. 174

노트는 남의 말을 베낄 때 인용부호를 꼭 넣는 식으로 필기를 해야 훗날, 예를 들면 6개월 후에, 원전으로 되돌아 와서 확인해야 하는 수고를 피할 수 있다. 나의 글인 줄 알았는데 사실은 다른 사람이 말한 내용일 수 있다. 웹에서 오려붙이기를 한 정보도 마찬가지이다. – p. 188

자신의 말이 아니라 다른 사람이 쓰는 상투적 어휘는 피해야 한다. 예를 들면 낙태 문제와 관련해 ‘생명주의자 입장’ 혹은 ‘선택주의자 입장’ 등과 같은 표현보다는 그냥 낙태를 찬성하는 입장 혹은 반대하는 입장으로 기술하는 것이 좋다. – p. 335

해설에서 그녀는 ‘1934년에 태어나 18세가 되던 해에 마크를 만났다’라고 할 때, 관객은 이들 두 사람이 결혼한 해(1952)가 언제인지 계산을 하게 되며 이 과정에서 이야기의 흐름으로부터 잠시 떨어져 나간다. 수익율, 나이, 시간의 흐름 같은 것을 계산하는 것은 관객이 스스로 그 작업을 하지 않도록 해설을 쓰는 사람이 대신 해줘야 한다. 이것은 관객을 이야기에 몰입시키기 위해 그들의 주의를 산만하게 만들 소지를 제거하는 것이다. – p. 340

- 소재가 선정되면 복잡하고 폭넓은 역사 문제를 어떻게 좁혀서 초점을 잡습니까?
- 릭 번스 : 매 단계마다 제 자신에게 묻습니다. “화제를 풀어가는 데 가장 절실하고 꼭 필요한 것은 무엇인가?” (…) 저는 기본적으로 서사 구조를 잡을 때 원칙을 하나 세워놓고 있습니다. 그것은 한 이야기는 절대로 되풀이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 달리 말하면, 이야기를 펼치면서 그 시점에서 최고의 극적 임팩트를 가져올 수 있는 요소가 무엇인지 찾고 다른 것은 버리는 것입니다. (…) 주어진 자료를 시간적 순서에 따라 나열해 가면서 냉정하게 취사선택을 합니다. (…) “이러한 자료를 전체적으로 묶어줄 수 있는 핵심 테마는 무엇인가? 그리고 그런 테마를 구체화하고 설명해 줄 수 있는 계기는 무엇인가?” – p. 385

릭 번스 : 관객은 비록 지식이 충분하지 않을 수도 있고, 또 어느 부분에서 문제가 있다는 것을 구체적으로 표현하지는 못하지만, 제작자가 자신들에게 거짓을 말하고 있다는 것은 아주 본능적으로 간파합니다. – p. 398

존 엘스 : 조사연구를 하다가 새로운 것을 발견할 수도 있고, 또 문제를 처음과 다른 관점에서 조망하다 보니 새로운 의미를 발견할 수도 있습니다. 이것은 좋을 수도 나쁠 수도 있습니다. 나쁜 결과란 제작자가 이러한 새로운 의미를 띠는 이미지를 원래 생각했던 틀속에 짜 맞추어 넣으려고 억지를 부리는 것입니다. – p. 410

존 엘스 : 예산을 초과 지출하는 상황이 발생하는 것은 음향 기사에게 돈을 너무 많이 지불했거나, 호텔에 하루 더 묵게 되서 생기는 것이 아닙니다. (…) 이야기를 어떻게 만들면 좋을지 두세 달 동안 고민할 때 생깁니다. – p. 41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