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한 볼프강 폰 괴테(Johann Wolfgang von Goethe), 홍성광 옮김, «이탈리아 기행», 펭귄클래식코리아.

원제: Italienische Reise (1829년)

요한 볼프강 폰 괴테(지음), 홍성광(옮김), «이탈리아 기행1», 펭귄클래식코리아, 2013(2008).

1786년 9월 3일

나는 새벽 3시에 카를스바트를 몰래 빠져나왔다. 그렇게 하지 않으면 사람들이 나를 놓아주지 않을지도 모르기 때문이었다. 8월 28일인 내 생일을 극진히 축하해 주고 싶어 한 사람들은 아마 이를 핑계 삼아 나를 붙잡아둘 구실을 마련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더는 여기서 꾸물거릴 수 없었다. 나는 여행 가방과 오소리 가죽 배낭만을 꾸린 채 단신으로 우편 마차에 몸을 실었고, 아침 7시 30분에 자욱하게 안개 낀 아름답고 고요한 츠보다우에 도착했다. 위쪽 구름들은 양털 모양으로 줄무늬를 이루고 있었고, 아래쪽 구름들은 묵직하게 드리워져 있었다. 나는 이를 길조로 생각했다. 나는 견디기 힘들었던 여름을 넘기고 멋지게 가을을 즐길 수 있기를 희망했다. 뜨거운 햇살을 받으며 12시에 에거에 도착했다. 그리고 그제야 이곳이 고향 도시인 프랑크푸르트와 같은 위도에 있음을 상기하고, 맑은 가을날 북위 50도 선상에서 또다시 점심을 먹는 것을 기쁘게 생각했다. (···) 오늘 나는 북위 49도 선상에서 이 글을 쓰고 있다. (···) 품질이 좋은 배를 맛보았지만 포도와 무화과 맛이 그리워진다. – 9~12쪽

1786년 9월 6일, 뮌헨

아침 6시에 뮌헨에 도착해서 열두 시간 동안 이곳저곳을 둘러본 소감을 몇 가지만 언급하고자 한다. 미술관에서는 낯선 느낌을 받았다. 먼저 눈이 다시 그림에 익숙해져야겠다. (···) 룩셈부르크 화랑의 루벤스 스케치들을 보고 나는 말할 수 없이 기뻤다. (···) 무화과를 갖고 있는 아낙네와 마주쳤다. 무화과는 첫물이어서 제법 맛이 좋았다. 하지만 북위 48도에서 나는 과일치고는 특별한 맛은 아니다. (···) 내가 바람과 날씨에 너무 주의를 기울여도 용서해 주길 바란다. 뱃사공은 말할 것도 없겠지만 육상 여행자도 두 가지 요소에 좌우되는 법이다. – 13~14쪽

1786년 9월 7일 저녁, 미텐발트

소녀는 확신하기를, 날씨가 좋을 거라고 했다. 자기들은 기압계를 지니고 다니는데 그게 바로 하프라고 했다. 악기가 최고음으로 올라가면 날씨가 좋아진다며 오늘이 바로 그렇다는 것이다. – 18쪽

1786년 9월 8일 저녁, 브레너

애당초 나의 여행은 북위 51도에서 온갖 언짢은 일들에 시달리다가 이를 피해 도망친 것이었으므로, 북위 48도에 도달함으로써 진정한 고센 땅에 들어서리라는 희망을 품었음을 고백하지 않을 수 없다. 하지만 진작 알아야 할 것을 알지 못한 나는 자신이 잘못 생각했음을 알게 되었다. 위도뿐만 아니라 산맥들도 기후와 기상을 결정하기 때문이다. – 23쪽

1786년 9월 28일, 베네치아

인간은 자기를 아는 사람이 아무도 없는 곳에서 군중 속을 헤집고 나아갈 때 가장 고독을 느끼기 때문이다. – 84쪽

1786년 10월 6일, 베네치아

연극에 대한 이들의 관심은 현실적인 것에 대한 관심의 반영일 뿐이다. 폭군이 아들에게 칼을 건네주면서 마주 서 있는 그의 아내를 찔러 죽이라고 요구하자 관객들은 이 부당한 요구에 불만을 표시하며 큰 소리로 떠들기 시작했다. 그래서 하마터면 공연이 중단될 뻔했다. (···) 곤경에 처한 아들이 각오를 단단히 하고 무대 앞으로 걸어 나와, 조금만 참으면 전적으로 그들의 바람대로 일이 진행될 거라고 공손히 부탁의 말을 했다. – 107쪽

1786년 11월 1일, 로마

내 기억에 떠오르는 최초의 동판화(아버님은 로마 전경도를 현관에 걸어놓으셨다)들을 이제 실제로 보게 된다. 그리고 그림과 스케치, 동판화와 목판화, 석고상과 코르크 세공품으로 익히 알고 있던 모든 것이 지금 내 눈앞에 펼쳐져 있다. 나는 어디를 가나 새로운 세상에서 친숙한 것을 발견한다. 내가 기대했던 것처럼 모든 것이 새롭다. – 170쪽

1786년 11월 3일, 로마

티치아노의 그림 앞에서는 더욱 경탄을 금치 못했다. 지금까지 보았던 모든 것을 능가하는 그림이었다. 나의 안목이 높아졌는지, 아니면 이 그림이 정말 훌륭한 작품인지 실로 분간할 수 없을 지경이다. – 173쪽

1786년 12월 29일, 로마

갑오징어 먹물로 만든 물감인 세피아…

1787년 1월 20일, 로마

철저한 지식 없이는 진정한 즐거움을 누릴 수 없다는 것을 알게 되면 처음에 피상적으로 받아들였을 때 즐거움을 주던 것이 차츰 성가시게 생각된다. – 220쪽

언제나 실제로 행하는 일보다 더 많은 일을 하기를 희망하기 마련이다. – 221쪽

1787년 2월 17일, 로마

무언가를 빨리 파악한다는 것은 정신의 특성이지만 올바로 실행하기 위해서는 평생에 걸친 연습이 필요한 것이다. (···) 대상을 더 정확하고 날카롭게 관찰할 때 비로소 보편성에 도달할 수 있기 때문이다. – 234쪽

1787년 3월 20일, 나폴리

용암이 분출하는 모습은 끝내 볼 수 없었다. 몇 걸음이라도 더 나가보려고 애썼지만 땅바닥이 점점 더 뜨거워지고 자욱한 연기가 소용돌이치면서 태양을 가리고 숨 막히게 했기 때문에 도저히 견딜 수 없었다. (···) 돌아오는 길에 일몰의 장관과 밤하늘이 기분을 상쾌하게 해주었다. 그렇지만 이렇게 엄청난 대조를 보이는 자연 앞에서 내 감각이 혼란에 빠져 있음을 느낄 수 있었다. 아름다운 광경에다 무시무시한 것, 무시무시한 광경에다 아름다운 것, 이 양자가 서로를 지양하며 아무래도 상관없다는 감정을 불러일으킨다. 만일 나폴리인이 신과 악마 사이에 끼어 있다고 느끼지 않는다면 그는 확실히 다른 인간일지도 모른다. – 295쪽

1787년 4월 3일, 팔레르모

무척 아름다운 오후에 팔레르모 방면으로 갔을 때 해안선에서 아롱거리던 증기로 자욱한(했던) 광채는 어떤 말로도 표현할 수가 없다. 윤곽의 순수함, 전체적인 부드러움, 색조의 교차, 하늘의 조화, 바다와 땅, 이런 것의 어울림이 말로는 표현할 수 없을 정도였다. … 이제야 클로드 로랭의 그림이 이해가 된다.

1787년 4월 19일, 알카모

비옥한 들판은 푸르고 조용한 반면 넓은 길의 덤불과 관목 숲에는 엄청난 꽃들이 만발해 있다. 완두콩 밭은 나비 모양의 꽃으로 녹색은 보이지 않고 온통 노란색으로 뒤덮여 있고, 서양 산사나무, 죽 이어진 관목 숲, 언덕으로 나 있는 알로에는 꽃이 필 조짐이다. 짙은 자홍색 양탄자 같은 무성한 클로버, 알프스 들장미, 꽃받침이 닫혀 있는 히아신스, 보리지, 산마늘, 수선화가 이어진다. – 362쪽

1787년 5월 17일, 나폴리

기기묘묘하게 꾸며낸 사건에도 묘사된 대상을 가까이서 접해야만 느낄 수 있는 자연스러운 면이 있습니다. (···) 그토록 다양한 모습으로 변화하는 바다가 마음속에 생생하게 간직되어 있는 지금에야 비로소 <오디세이아>가 나에게 생생하게 살아있는 단어가 됩니다. – 431쪽

요한 볼프강 폰 괴테(지음), 홍성광(옮김), «이탈리아 기행2», 펭귄클래식코리아, 2010(2008).

1787년 6월 말, 로마

나는 금방 졸업하기에는 너무 커다란 학교에 들어갔습니다. – 15쪽

1787년 7월 5일, 로마

온갖 종류의 예술에 대해 생각할 기회가 너무 많다 보니 <<빌헬름 마이스터>>의 분량이 늘어나고 있습니다. 하지만 낡은 것들은 미리 삭제해 버려야 되겠습니다. 이제 나이도 제법 되었으니 또 무언가 하고 싶은 일이 있으면 꾸물거려서는 안 되겠습니다. – 34쪽

1787년 7월 16일, 로마

장구한 세월 동안 불변의 가치를 지닌 것들을 보노라면 기쁘기 한량없습니다. 나의 안목도 많이 높아져서 점차 전문가가 될지도 모르겠습니다.

1787년 7월 31일, 로마

저녁에는 한 동향인과 산책을 하면서 미켈란젤로와 라파엘로 중 누가 더 뛰어난지 논쟁을 벌였습니다. 나는 미켈란젤로는 치켜세웠고, 그는 라파엘로 편이었습니다. 그러다가 우리는 결국 레오나르도 다 빈치를 입을 모아 칭찬하는 것으로 논쟁을 끝냈습니다. – 44쪽

1787년 7월의 보고

사람들은 때로는 라파엘로를, 때로는 미켈란젤로를 우수하다고 했습니다. 이로써 결국 다음과 같은 사실이 드러날 뿐이었습니다. 인간은 너무나 옹색한 존재라서 자신의 정신이 위대한 것에 열려 있다 하더라도, 결코 다양한 종류의 위대성을 균형 있게 평가하고 인정할 수 있는 능력에는 도달하지 못한다는 것입니다. – 56쪽

1787년 8월의 보고

요즘 들어서는 미켈란젤로가 새삼 예술가들의 숭배를 받고 있습니다. … 그래서 그와 라파엘로 중 누가 더 천재성을 지녔는지 논쟁하는 것이 유행처럼 되었습니다. … 한 인간의 위대한 재능을 파악하기도 어려운데, 하물며 두 인간의 재능을 동시에 이해한다는 것은 말할 필요가 없겠습니다. 우리는 이러한 일을 쉽게 하기 위해 편들기를 합니다. … 나는 이런 논쟁일랑 조용히 내버려두고 모든 작품의 가치와 진가를 직접 관찰하는 데 몰두했기 때문에 그것에 현혹되지 않았습니다.

1787년 9월 12일, 로마

예술품들도 질풍과 노도에 휩쓸려가고 있습니다.

1787년 9월 22일, 로마

아, 예술이란 얼마나 광대하고 유구한 것이며, 세상은 얼마나 무한한 것일까요. 그런데도 사람들은 그저 유한한 것에만 신경을 쓰고 있습니다.

1787년 10월 5일, 알바노

플라톤은 자신의 학파에서 ‘기하학을 모르는 자’를 용납하려 들지 않았습니다. 내가 학파를 하나 만들 수 있다면 자연 연구를 진지하게 본격적으로 선택하지 않는 자를 용납하지 않겠습니다.

1787년 11월 10일, 로마

이전과 다른 작품을 써서 독자를 만족시킨다는 것은 어려운 일입니다. 독자는 늘 전과 같은 작품을 쓰라고 요구합니다. – 130쪽

1787년 11월 24일, 로마

맑고 푸른 음영이 모든 녹색, 황색, 붉은색, 갈색의 빛과 매력적인 대조를 이루면서, 푸르스름한 빛을 띤 아득히 먼 곳과 연결됩니다 ··· 북쪽에서는 도저히 생각할 수 없는 광경이지요. 여러분이 있는 독일에선 모든 것이 칙칙하거나 흐릿하며, 알록달록하거나 단조롭습니다 ··· 여기서 눈이 단련되었으니 어쩌면 북쪽에서도 더 많은 아름다움을 발견할지도 모릅니다. – 131쪽

1787년 12월 7일, 로마

글 쓰는 일이 되지 않아서 이번 주는 스케치를 하며 보냈습니다. – 144쪽

1787년 12월의 보고

라파엘로는 건축물이 제공하는 공간 때문에 방해를 받은 적이 한 번도 없었습니다. 오히려 어떤 공간이든 극히 우아하게 채우고 장식할 줄 알았다는 것이 그의 위대한 천재성에 속합니다. – 160쪽

1788년 1월 5일, 로마

지금은 오로지 인체 연구에 매진하고 있습니다. 그 밖의 모든 것은 봄눈 녹듯이 사라져버립니다. 평생토록 관심을 가졌던 일이 지금은 색다른 의미를 갖게 되었습니다. 이에 대해선 뭐라고 할 말이 없습니다. 내가 또 무슨 일을 하게 될는지는 세월이 말해 줄 수밖에 없겠지요. – 185쪽

1788년 1월 10일, 로마

이제 인간의 형상에 대한 관심이 다른 어느 것보다 우선합니다 ··· 로마 이외의 다른 곳에서 이를 연구한다는 것도 부질없는 일입니다. 오직 이곳에서 자아내는 법을 배운 실이 아니고서는 이러한 미궁에서 빠져나갈 도리가 없습니다. 유감스럽게도 아직 나의 실이 그리 길지는 않지만 그래도 첫 번째 통로는 빠져나갈 정도가 됩니다. 이 같은 상황에서 저술 작업을 계속하려면 두 가지 다 별로 내키지는 않지만, <<타소>>를 쓰기 위해서는 올해 중에 공주와 사랑에 빠져야 할 것 같고, <<파우스트>>를 쓰기 위해서는 악마에 영혼을 팔아야 할지도 모르겠습니다. – 186쪽

1788년 2월 1일, 로마

이곳 사람들은 나의 <<베르테르>> 번역본을 가지고 귀찮게 굽니다. 그걸 보여주면서 어떤 부분이 가장 잘됐으며, 모든 내용이 다 진짜인지도 묻습니다! 이들은 내가 인도까지 가더라도 쫓아올지도 모르는 아주 성가신 존재들입니다. – 239쪽

1788년 3월 1일, 로마

먼저 <<파우스트>>에 대한 구상이 섰고, 이러한 작업이 성공적으로 수행되길 고대해 봅니다. 물론 이 작품을 지금 끝내든 십오 년 전에 끝냈든 이는 별개의 문제입니다. 그동안에 아무것도 잃은 게 없다고 생각됩니다. 지금 다시 실마리를 잡았다고 생각하니 특히 그러합니다. 작품의 전체적인 어조에 대해서도 적이 위안이 됩니다. 이미 새로운 장면을 하나 완성해 놓기도 했습니다. – 252쪽

1788년 3월 22일, 로마

가장 머무를 만한 가치가 있을 때 떠나야 한다는 사실이 실로 가슴 아프긴 하지만, 그래도 어떤 목표에 도달할 수 있을 정도로 오랫동안 이곳에 머물 수 있었다는 사실에 적이 안심이 됩니다. – 260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