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한] Francis Bacon, Novum Organum
New Organon
translated by James Spedding, Robert Leslie Ellis, and Douglas Denon Heath on the 1863
프랜시스 베이컨, 신기관(1620)
The Idols of the Tribe have their foundation in human nature itself, and in the tribe or race of men. For it is a false assertion that the sense of man is the measure of things. On the contrary, all perceptions as well of the sense as of the mind are according to the measure of the individual and not according to the measure of the universe. And the human understanding is like a false mirror, which, receiving rays irregularly, distorts and discolors the nature of things by mingling its own nature with it.
종족 우상은 인간 본성 자체에, 즉 인류라는 종족에 기반을 둔다. 그것은 인간의 감각이 사물을 판단하는 기준이라는 잘못된 생각에 기인한다. 한편, 사고뿐 아니라 감각에 관한 모든 지각은 개인의 판단 기준에 기인한 것이지, 보편적 판단 기준에 기인한 것이 아니다. 인간의 이해는 잘못된 거울과 같아서, 광선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지 않고 사물의 본성에 인간 이해의 속성을 뒤섞어 버리기에 사물의 본성을 왜곡하거나 퇴색시킨다.
The Idols of the Cave are the idols of the individual man. For everyone (besides the errors common to human nature in general) has a cave or den of his own, which refracts and discolors the light of nature, owing either to his own proper and peculiar nature; or to his education and conversation with others; or to the reading of books, and the authority of those whom he esteems and admires; or to the differences of impressions, accordingly as they take place in a mind preoccupied and predisposed or in a mind indifferent and settled; or the like.
동굴 우상은 개인의 우상이다. ‘일반적으로 인간 본성에 공통된 오류 말고도’ 모든 이에게는 자기 안에 동굴 같은 것이 있어서 자연의 빛을 굴절시키거나 퇴색시키는데, 그것은 자신의 기질이나 독특한 본성에 기인하거나, 자신의 교양 수준이나 타인과 맺는 교류에 기인하기도 하고, 독서나 자신이 높이 평가하고 존경하는 인물의 권위에 기인하기 때문이기도 하며, 그때그때 달라지는 인상들 때문이기도 한데, 그 인상들은 마음속 선입관이나 편견에서 비롯하기도 하고 무관심이나 마음속에 이미 굳게 자리잡은 것에서 비롯하기도 한다.
There are also Idols formed by the intercourse and association of men with each other, which I call Idols of the Market Place, on account of the commerce and consort of men there. For it is by discourse that men associate, and words are imposed according to the apprehension of the vulgar. And therefore the ill and unfit choice of words wonderfully obstructs the understanding.
타인과 서로 교제하거나 어울리면서 형성되는 우상이 있는데, 거기서 사람들의 상거래와 회합이 이루어지므로 나는 그것을 시장 우상이라 부른다. 사람들이 어울리며 담소를 갖는데, 그 말들은 세속적 대중의 이해 수준에 맞춰진다. 그러므로 말을 그릇되고 부적합하게 선택하다 보면 이해를 끔찍하게 가로막게 된다.
Lastly, there are idols which have immigrated into men’s minds from the various dogmas of philosophies, and also from wrong laws of demonstration. These I call Idols of the Theater; because in my judgment all the received systems are but so many stage plays, representing worlds of their own creation after an unreal and scenic fashion.
끝으로, 다양한 철학의 독단적 이론들과 그릇된 주장으로 인해 사람들 마음속에 자리잡은 우상이 있다. 이것을 극장 우상이라고 부르는데, 내가 보기에는 그렇게 받아들인 모든 체계들이, 비현실적인데도 근사해보이는 세계를 창작하여 보여주는 무수한 무대위 연극들에 불과하기 때문이다.
* 정리:
1. 종족 우상
종족 우상은 생물학적 인류가 빚은 오류로 인간 중심주의에서 빚어진 잘못된 지식도 두루 가리킨다. “인간의 감각이 만물의 척도다”(the sense of man is the measure of things)라는 구절에서 베이컨은 독자로 하여금 고대 그리스의 소피스테스(소피스트, 실용 지식을 가르친 사람들)인 프로타고라스를 떠올리게 한다. 감각이 경험의 주요한 경로인 것은 분명하지만 진짜 앎을 가로막는 걸림돌이 될 수 있다는 점을 상기시키는 것이 베이컨의 의도였다. 베이컨은 종족 우상에 갇힌 인간의 앎이 상을 왜곡하여 비추는 거울 같다고 적었다.
콜라나 사이다 같은 탄산 음료는 눈을 가리고 마셔 보면 언뜻 맛을 구별하기 어려운데 가린 것을 치우고 보면서 다시 마시면 맛이 아주 다르다. 시각이 판단에 영향을 끼치는 것이다. 온도가 같은 물이라도 차가워진 손을 넣을 때와 따뜻하게 데워진 손을 넣을 때의 느낌은 무척 다르다. 우리는 인간의 감각이 믿을 것이 못된다는 점을 인정하면서도 어떤 때는 감각처럼 확실한 지식도 없다고 믿는다. 이런 이중적 태도 사이에서 종족 우상은 생긴다. 옛날 사람들은 누구든 해가 뜨고 지며 별이 뜨고 진다고 생각했다. 하늘이 지구 주위를 돈다고 여겼다. 인간이면 누구든 비슷한 시각이나 청각 등의 능력을 지녔기에 착각하는 것도 비슷하다. 케플러가 1609년에 행성의 타원 궤도를 밝히기 전까지 사람들은 별이 동심원을 그리며 돈다고 여겼다. 이것도 종족 우상이다.
2. 동굴 우상
동굴 우상은 문화적 인류가 빚은 오류다. 베이컨이 밝혔듯 동굴 우상은 플라톤이 <국가>에서 제시한 ‘동굴 비유’를 본딴 것이다. 플라톤은 어두운 동굴 안에 머물러있는 단계인 앎을 ‘의견’(doxa)이라고 불렀고 환한 동굴 밖 세상으로 나온 앎을 ‘지식’(episteme)이라고 불렀다. 온몸이 묶인 사람들 뒤에서 마치 그림자 인형극을 하듯 어떤 이들이 인형이나 사물 형상을 치켜 들고 지나가면 횃불에 비친 그림자가 묶인 사람들 앞의 동굴 벽에 비친다. 묶인 사람들은 그 그림자가 진짜라고 믿으며 살아간다. 베이컨은 플라톤의 동굴 비유를 그대로 본따서 우리 안에 자리잡기 쉬운 편견과 선입관을 설명했다. 인상만 보고 사람을 평가해 버리거나 과거 경험 때문에 비슷한 것들을 획일적인 잣대로 판단하는 사람들의 습관이 동굴 우상이다. 흑인이나 이슬람교도는 폭력적이라고 믿는 유럽인이 있다면 동굴 우상에 사로잡힌 것이다. ‘한 손에는 칼 한 손에는 코란’이란 근거 없는 표현이 떠돈 것도 그런 유럽인 때문이다.
3. 시장 우상
표준어라든지 언어 규범은 대중의 이해 수준에 맞추어 정해지기 때문에 학문의 발전을 더디게 하거나 퇴보시키기도 한다. 가령 ‘비판’이라는 말은 원래 한계를 정한다는 뜻이라서 남을 비난하거나 어떤 일을 탓한다는 뜻이 없는데도 사람들은 아무때나 비판이라는 말을 오남용한다. 시장 우상이라는 이름이 붙은 것은 시장에서 물건 값을 흥정하며 주고받는 말을 관찰하면 대중의 언어 표현 수준이 다 보이기 때문이다. 한국어 표현에도 물론 시장 우상이 무수히 많다. 예컨대 원래 뜻을 잘 표현하는 ‘삭월세’나 ‘희한하다’ 대신 그저 발음하기 좋아서 선택된 ‘사글세’나 ‘희안하다’가 널리 쓰이게 된 것도 시장 우상이다. 크레파스나 물감 표기에서 ‘살색’이 사라지고 ‘살구색’이 등장한 것은 시장 우상을 깬 경우다. ‘아직 전향하지 않는 장기 수감자’란 뜻으로 쓰이던 ‘미전향 장기수’란 표현이 ‘비전향 장기수’로 바뀐 것도 시장 우상 극복 사례다.
4. 극장 우상
극장 우상은 동굴 우상의 일종으로 다양한 학설과 그릇된 증명 방법 때문에 생긴 우상이다. 교양인이 흔히 겪는 오류는 특정 학자나 학설을 맹신하는 일이다. 그것은 무대 위에 펼쳐지는 화려한 공연에 넑을 잃는 관객의 모습 같다. 극장 우상을 깨뜨리지 않으면 학문은 발전하지 않는다. 가령 중세 사람들은 아리스토텔레스를 가리켜 ‘철학자’라고만 불렀다. 철학자는 아리스토텔레스를 가리키는 고유 명사였다. 아리스토텔레스가 구축한 학문 체계에 의심을 품지 않았다. 오랫동안 극장 우상에 갇혀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