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한] John Stuart Mill, Utilitarianism
Anyone who thinks that this preference takes place at a sacrifice of happiness—anyone who denies that the superior being is, other things being anywhere near equal, happier than the inferior one—is confusing two very different ideas, those of happiness and of contentment.
이것[품위]을 더 좋아하는 것이 행복을 희생하고서 생긴다고 여기는 사람, 즉 다른 것이 거의 같은 상태에서는 우월한 존재가 열등한 존재보다 더 행복하다는 점을 부인하는 사람은 행복과 만족이라는 전혀 다른 두 개념을 혼동하는 것이다.
It is indisputable that the being whose capacities of enjoyment are low, has the greatest chance of having them fully satisfied; and a highly endowed being will always feel that any happiness which he can look for, as the world is constituted, is imperfect. But he can learn to bear its imperfections, if they are at all bearable; and they will not make him envy the being who is indeed unconscious of the imperfections, but only because he feels not at all the good which those imperfections qualify.
즐거움을 받아들일 수 있는 능력치가 낮은 존재가, 충분히 충족될 기회를 훨씬 많이 얻는다는 점은 논쟁의 여지가 없다. 그 능력을 높게 부여받은 존재는, 이 세계가 구성되는 것처럼, 자신이 찾는 행복이 어떠하든 늘 불완전하다고 여길 것이다. 그러나 견딜 만한 가치가 있기에 그는 불완전함을 견디는 법을 깨닫는다. 그 불완전함들 때문에 그가 불완전함을 전혀 의식하지 못하는 존재를 부러워할 까닭은 없는 듯하다. 수용 능력이 낮은 이들은 그 불완전함들이 부여하는 좋음을 전혀 느끼지 못하기 때문이다.
It is better to be a human being dissatisfied than a pig satisfied; better to be Socrates dissatisfied than a fool satisfied. And if the fool, or the pig, are a different opinion, it is because they only know their own side of the question. The other party to the comparison knows both sides.
만족한 돼지가 되느니 불만족한 인간이 되는 편이 낫고, 만족한 바보가 되느니 불만족한 소크라테스가 되는 편이 낫다. 바보나 돼지가 서로 다른 견해를 갖는다면 그것은 그 문제에 대한 자기쪽 입장만 알기 때문이다. 다른 편에 있는 이들은 두 측면을 견주어 두루 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