플라톤(Πλάτων), 김태경 옮김, «정치가», 한길사, 2011(2000).
** 요약
정치가와 철학자에게 수학적 비례처럼 동등한 가치를 부여하면 안 된다. 얼굴이 닮거나 이름이 같은 것에 얽매이지 말고 대화를 잘 진행하면서 닮은 것들을 판별해야 한다. 정치가는 지식을 갖춘 사람이므로 정치가를 알려면 지식이 무엇인지 알아야 하는데, 지식을 여러 방식으로 나누어 보자. 지식은 행위 관련 여부에 따라 순수한 이론적 지식과 실천적 지식으로 나뉜다. 지식을 갖춘 이는 공직에 있지 않더라도 지식을 갖춘 이임에는 변함이 없듯, 왕이 아니더라도 왕도 정치의 지식을 갖춘 이가 있을 것이다. 규모가 가장 큰 가정과 규모가 가장 작은 나라는 다스림에서 별 차이가 없다. (259B)
왕도 정치를 행하는 자에게는 몸으로 하는 것보다 지성과 마음으로 기여하는 것이 훨씬 중요하다. 즉, 이론적 지식에 더 가까이 있다. 이론적 지식은 판단이나 지시에 관여하는데, 어떤 결과를 산출해 내기 위해 목공의 도편수처럼 왕도적 치자는 지시에 더 관여한다. 도편수와 달리 왕도적 치자는 생명체에 지시하는 사람이다. 그리고 개별적인 생명체가 아닌 무리 양육에 관여한다. (261E)
철학적 탐구에서 중요한 것은 사물을 형상에 따라 공평하게 나누어야 한다는 점이다. 가령 인류를 헬라스인과 비헬라스인으로 나누면 안 된다. 어떤 것을 정한 다음, 그 나머지 것들을 묶어서 그 둘을 비교하면 안 된다. 짝수와 홀수, 남성과 여성처럼 명확하게 구분하는 것이 필요하다. 즉, 나뉜 것들이 각기 부분이면서 유(類)가 되어야 한다. 유는 항상 어떤 것의 부분이지만 부분이 항상 어떤 유인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생명체를 유에 따라 아주 세밀하게 나눠 보면 정치가의 이론적 지식은, 유순하고 뿔이 없는 비이종교배종의 무리지어 양육되는 이족보행 동물로서, 즉 인간이 된다. (267A)
다시 처음으로 돌아가 정치가가 지닌 기술의 이름에 관한 정의를 끝까지 엮어가 보자. 목축업자와 왕은 양육 대상이 인간이냐 아니냐 하는 점에서 나뉘지만, 농부나 의사는 인간 무리를 양육하고 돌본다는 점에서 비슷하다. 신이 우주를 창조하고 나서 우주는 생명체처럼 스스로 움직였으며 자기 의지대로 신적인 경로를 이탈하며 어긋난 방향으로 운행하기도 했다. 크로노스 시대에 인간은 신이 만든 질서대로 살았기에 정치 체제가 필요없었다. 우리가 사는 제우스 시대가 되자 인간의 자유가 신의 질서를 위배하기도 하여 악도 등장했고 정치 체제도 요구되었다. (275C)
무리 양육 이야기로 돌아가면, 양육이라는 말 대신 ‘돌봄’이라는 더 보편적인 이름으로 부르는 게 나을 것 같다. 그래야 사람을 먹여 키우지도 않는 정치가도 그 범주에 들어갈 수 있고 쓸데없는 비판에서도 벗어날 수 있겠다. (276B)
그러면 신적인 돌봄과 인간적인 돌봄을 나눠 보자. 즉 자발적인 돌봄과 강제적인 돌봄으로 나눠 보자. 강제적인 돌봄은 독재이며 자발적인 돌봄은 왕도적 통치다. 아이가 문자를 새로 배울 때처럼 어떤 새로운 사물(단어)을 익힐 때 기존에 아는 사물(단어)과 견주어 보는 것은 그 둘을 포괄하는 참된 의견(공통 문자)이 거기에 있기 때문이다. 규모가 작더라도 통치술과 같은 원리를 포함하는 예를 하나 드는 게 좋겠다. 바로 직조술이다. (279B)
조금 더 구체적으로 모직 직조술로 예를 들겠다. 우리가 만들거나 얻는 것은 어떤 것을 행하거나 어떤 일이 일어나지 않게 예방하기 위함이다. 예방하려고 만드는 건 해독제이거나 방어물인데, 방어물을 한가운데로 계속 나눠 보면 결국 방어술이란 ‘겉옷 제작술’까지 세분화될 수 있다. 모직 직조술에는 겉옷을 만드는 데 필요한 긴요한 기술들도 있고 직접 관련이 없는 유사 기술도 있다. 바느질하고 꿰매는 기술은 직조술과 관련은 있지만 제화술에 더 많이 관여하므로 겉옷 제작술에는 유사 기술에 해당한다. (280C)
직조는 엮음의 일종이다. 그런데 직조에 필요한 실을 얻으려면 뭉치고 헝클어진 것을 갈라놓아야 하는데 언뜻 보면 엮음과 상반된 기술처럼 보인다. 날실과 씨실을 만드는 기술도 직조에 필요하지만 직조술 자체는 아니다. 모든 활동에는 두 가지 기술이 포함된다. 실제 생산 기술과 부차적 생산 기술. 예비 단계인 털실 제작술은 부차적 기술이고 씨실과 날실을 가지고 천을 짜는 기술은 실제 기술이다. (283A)
정치술에 관해 바로 정의하지 않고 에둘러 살핀 까닭은 지나침과 모자람을 검토하기 위함이다. 그래야 지나침과 모자람을 비판할 수 있기 때문이다. 측정술과 관련을 지어 보자. 측정술은 두 부분으로 나눌 수 있는데, 상대적으로 측정하는 기술과 항상 적절한 정도를 아는 측정술이 있다. 나쁜 이들은 말이나 행동에서 적절한 정도 즉, 적도를 초과하거나 적도에 미치지 못한다. 지나침과 모자람은 상대적으로도 측정 가능하지만 <소피스트>에서 강변했듯 적도 없이는 기술도 없고 기술 없이는 적도도 없다. (284D)
측정술의 한 부분은 수량, 길이, 깊이, 너비, 두께 등을 측정하여 나누는 일이고, 다른 부분은 적합성이나 타당성, 중용에 관련하여 측정하는 것이다. 그 두 기술은 관여하는 대상이 다르므로 같은 것으로 뭉뚱그려서는 안 된다. (285B)
문자를 익히는 학생들이 낱말이 어떤 글자로 이루어졌는지 따지는 것은 문법 지식을 높이기 위함이 아니라 말의 일반 지식을 높이기 위함이다. 정치가를 탐구하는 목적 역시 그러한데, 단지 정치가에 관해 알고자 하거나 통치술에 관한 지식을 얻고자 함이 아니라 변증술에 능해져서 우리 삶의 모든 일반 문제에 잘 대처하기 위함이다. 가장 아름답고 큰 것은 이성에 의해서만 보이는 비물질적인 것이므로 직조술처럼 감각적으로 유사한 것에 머물러서는 안 된다. (286A)
직조술이나 우주의 반전에 관해 길게 논의한 것은, <소피스트>에서 ‘있지 않은 것’의 존재에 관해 길게 논의했던 것과 마찬가지로, 적정함과 관련하여 올바른 판단을 이끌어내기 위함이었다. 모든 것을 적정함과 관련해 판단할 필요는 없지만 가장 크고 소중한 것이라면 이야기가 길어진다 해도 더 몰두해야 할 것이다. (287A)
자, 이제 치자로 돌아가 직조술이라는 예를 적용해 보자. 왕도적 치술을 알려고 나라 안에서 원인이 되는 기술과 보조 원인인 기술을 나누었다. 그런데 딱 둘로 나누기가 어렵다면 제물로 바쳐진 동물을 사지로 나누어 보듯 되도록 가장 가까운 수로 나누어야 할 것이다. 나라 안의 기술이 만들어 낸 것들을 분류해 보자. 도구, 일차 상품(원자재), 운반 수단(그릇), 방어물, 노리개(장식), 영양분 등으로 나눌 수 있다. 동전이나 인장은 도구이기도 하고 장식물이기도 하다. 무리 양육술은 이것들에 모두 걸쳐 있다. (289B)
도시가 산출한 것들 중에 노예들과 종사인들의 부류가 남는다. 그런데 노예들은 왕도적 치술과 무관할 것이며, 상거래 등 각종 기술과 관련된 종사자들 역시 왕도적 치술과는 거리가 멀 것이다. 전령이나 성직자나 예언자 같은 봉사자들은 신들 쪽의 해석자라 자처하고 섬김의 기술에 관여하는 듯 보이고, 추첨으로 왕이 된 자들도 자부심을 지니고 있기에 언뜻 정치가와 비슷해 보이기도 한다. 그렇지만 이들은 반인반수인 켄타우로스나 변신을 잘 하는 사튀로스 같아서 참다운 정치가의 부류에 포함해서는 안 된다. (291C)
우리의 정치 체제는 일인 지배와 소수 지배 다수 지배로 나눌 수 있다. 강제성이나 자발성, 가난이나 부, 준법이나 무법 등을 기준 삼아 다시 나누면 왕정/참주정, 귀족정/과두정, 민주정 등 다섯 가지가 될 것이다. 민주정을 나누지 않은 것은 그것이 좋든 나쁘든 항상 민주정이라고 불리기 때문이다. 위 기준들이 올바른 정체를 잘 알려주기는 어려울 것 같다. 참다운 왕도 정체는 지식과 관련되기 때문이다. 즉 판단술이나 관장술 같은 것과 관련된다. 그러므로 여기에 기인하여 참다운 치자와 치자인 체하는 이들을 가려내야 한다. 참다운 치자는 사람들과 나라를 좋게 만들 목적으로 지식을 쓰는데 지식은 법률을 뛰어 넘는 것이므로 법률 없이 다스리는 일이 어떻게 정당성을 얻을 수 있을지 검토해야 할 것 같다. (294A)
법률을 만드는 기술은 왕도적 치술에 속하지만 법률보다 지혜를 갖춘 왕도적 치자가 더 중요하다. 인간사는 천차만별인데다 늘 유동적인데도 법은 고정돼 있다. 이는 각기 다른 신체적 특징을 지닌 이들에게 획일적인 훈련을 시키는 것과 비슷하다. 그러므로 왕도적 치술을 터득한 이는 성문화된 법률에 얽매이지 않는다. (295B)
의사나 체육 교사가 자신이 돌보던 이들을 떠나 오랫동안 자리를 비워야 할 상황이 생겼다고 가정하자. 그러면 자신들이 돌아오기 전까지 환자나 연습생이 따라야 할 사항을 적어주고 떠날 것이다. 그런데 예정보다 일찍 돌아왔다면 앞서 남긴 지시 사항을 그대로 고수하지는 않을 것이다. 성문법을 따르든 그렇지 않든 중요한 것은 이로운 것을 행하는 지혜롭고 선한 자가 국가 경영의 참다운 기준이 돼야 한다는 점이다. 규칙을 성문화하지 않아도 기술을 판단 기준으로 삼음으로써 배와 선원들을 구하는 조타수처럼, 참다운 치자는 지성을 겸비한 가장 올바른 기술을 나라 안에 있는 이들에게 고루 분배하여 그들을 구제한다. (297B)
다수가 통치술을 모두 습득하는 건 불가능하므로 올바른 정체는 소수나 한 사람에게서 찾아야 한다. 모든 정체는 이 하나뿐인 올바른 정체를 따라야 한다. 그런데 다수가 지배하는 정체에서는 다수가 합의한 사항이 성문화되거나 관례화되어 제비뽑기로 선출된 치자들이 이 법에 따라 통치한다. 성문법에 집착하는 것은 올바르지 않지만 성문법을 어기는 건 더 큰 문제를 유발할 것이다. 규정을 어기지 못하도록 조치하는 건 그런 점에서 차선책이다. 어찌 됐든 참다운 정체를 모방한 것이기 때문이다. (300C)
부자들이 참다운 정체를 모방하면 ‘귀족정’인데, 그들이 법률을 무시하면 ‘과두정’이 된다. 일인 통치자가 법률을 무시하면 참주가 된다. 벌떼들 안에서 저절로 여왕벌이 나오면 좋겠지만 참다운 정치가는 그렇게 생기지 않으므로 사람들은 참다운 정체의 흔적들을 찾아내 따라야만 한다. 바르지 않은 정체들이 모두 견디기 힘든 것들이긴 해도 그 중에 견디기에 가장 수월한 정체가 있을 것이다. 다수가 지배하는 정체는 사람들에게 권력이 세분화되어 있기에 선이든 악이든 크게 저지를 수 없다. 따라서 다른 정체들이 모두 법을 준수한다면 가장 떨어지는 정체이지만 다른 정체들이 모두 법을 어긴다면 가장 나은 것이 된다. (303B)
대중을 설득하는 기술은 수사술이지만 설득을 해야 할지 다른 방법을 취해야 할지 결정하는 건 더 높은 차원의 기술이다. 전쟁을 수행하는 능력은 전쟁술이지만 전쟁을 할지 평화를 추구할지 숙고하는 건 더 높은 차원의 기술이다. 마찬가지로 재판술보다 높은 차원에 있는 기술도 있을 것이다. 앞서 언급한 모든 기술을 다스리고 보살피며 같은 이름 아래 포괄하는 기술이 있다면 마땅히 치술이라고 불러야 한다. (305E)
이제 직조술의 예를 들어 왕도적 엮음에 관해 말해야 할 것 같다. 용기와 절제는 각기 훌륭함의 한 부분인데, 낯설게 들리겠지만 이 둘은 적대적이며 반목 상태에 있다. 민첩하고 용기 있다고 말하거나, 침착하고 점잖다고 말하는 칭찬들은 시의적절치 않을 때 비난 대상이 된다. 우리는 저마다 친근한 것들에 끌리기 때문에 단지 다르다는 이유로 반대되는 속성을 비난한다. 이 불일치가 나라의 몹쓸 우환이 된다. 지나치게 절도만 차리는 사람들은 언제나 평화만 추구하므로 공격적인 자들의 노예가 되기 쉽다. 지나치게 용기로 기운 사람들은 나라를 항상 전쟁 상태로 몰아간다. (308A)
왕도적 치술은 관할하는 기술이므로 서로 대립하는 성향들을 묶고 엮는다. 왕도적 치술은 친근성에 따라 그들 혼의 영원한 부분을 신적인 끈으로 결합하고, 생존에 관련된 사멸하는 부분을 인간적인 끈으로 결합한다. 신적인 연결이란 타고난 본성들을 잘 연결하는 일이고 대립하는 미덕들을 하나로 결합하는 일이다. 인간적인 끈이란 주로 혼인을 일컫는 것으로서 후손의 성향이 한쪽에 쏠리지 않도록 정치가는 여러 세대에 걸쳐 다른 특징을 지닌 이들끼리 결합시켜야 한다. 이 원리는 나라의 관리들을 기용하는 데도 적용돼야 한다. 관리가 한 사람 필요할 때는 두 자질을 겸비한 이를 뽑아야 하고, 여러 명이 필요할 때는 용감한 관리들과 절제 있는 관리들을 골고루 섞어야 한다. 이 두 부류가 상부상조해야 국가가 제구실을 한다. 왕도적 직조공은 용기 있는 사람들과 절제 있는 사람들의 품성을 한데 엮어 천으로 짠다. 그렇게 짠 천으로 노예든 자유민이든 모든 국가의 구성원을 감쌀 때, 국가는 행복해질 수 있는 잠재력을 지니게 된다. (311C)
손님: 큰 집의 형태나 작은 나라의 규모는 통치와 관련해 아무런 차이도 없지 않은가? – 259b
젊은 소크라테스: 논의와 부합되는 것이라면 어떤 것이든 상관없습니다.
손님: 말 잘했네. 만일 자네가 이름에 구애받지 않도록 경계한다면, 노년에 이르러 훨씬 더 많은 지혜를 보여주게 될 걸세. – 261e
손님: … 그들은 ‘헬라스인’을 마치 하나의 종처럼 나머지 모든 종들한테스 분리해내는 한편, 서로 [혈통이] 섞이지도 않고 말이 통하지도 않는 무수히 많은 모든 다른 유들을 하나의 이름에 의해 ‘이방인’이라 부르고, 이 하나의 명칭 때문에 이것이 하나의 종이라고 취급하기도 하네. – 262d
… 이런 식으로 적도를 보존함으로써 온갖 좋은 것들과 아름다운 것들을 완성해내기 때문이네. – 284a