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단이라는 선잠”

데이비드 흄은 존 로크와 조지 버클리의 주장을 끝까지 밀고 나가 ‘세상에 반드시 그러한 것(필연성)은 없으며 그럴 듯함(개연성)만 있다’고 주장했다. 인간이 파악할 수 있는 것은 유사성, 근접성, 반복성 같은 것뿐이다. 이는 앎의 한계와 지성의 교만을 인정한다는 점에서 종래의 형이상학과 합리론을 정면으로 반박하는 일이었다. 칸트는 이러한 흄의 태도에 자극을 받고 ‘독단이라는 선잠’에 빠져있던 자신을 돌아보았으며 새로운 형이상학을 구상한다.

“나는 거리낌 없이 데이비드 흄의 경고가 오랫동안의 독단의 잠에서 나를 깨우고 사변적 철학의 영역 안에서 나의 탐구들에 전혀 다른 방향을 제시해주었다는 점을 인정한다. 그러나 나는 그의 결론들과 관련해서는 멀리 떨어져 있었다. 그의 결론들은 그가 자신의 과제를 전체적으로 조망할 수 있도록 설명한 것이 아니라, 단지 그 과제의 부분에만 몰두했기 때문에 나온 것이다. ··· 우리는 이 현명한 사람에게 이 빛의 첫 번째 섬광을 준 것에 감사해야 한다.”

- I. 칸트, 염승준(옮김), <<프롤레고메나>>, 책세상, 2013, 27쪽.

* ‘독단의 선잠’이라고 옮기지 말고 ‘독단이라는 선잠’으로 옮기면 이해하기 더 좋다. (선잠과도 같은 독단, 선잠=독단)

* Prolegomena zu einer jeden kunftigen Metaph. G. 7—l5. “Ich gestehe frei, die Erinnerung des David Hume war eben dasjenige, was mir vor vielen Jahren zuerst den dogmatischen Schlummer unterbrach und meinen Untersuchungen im Felde der spekulativen Philosophie eine ganz andere Richtung gab.”