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베틀라나 알렉시예비치(Святлана Алексіевіч), 박은정 옮김, «전쟁은 여자의 얼굴을 하지 않았다», 문학동네, 2015.

우크라이나 출신인 외할아버지는 전쟁터에서 전사해 헝가리 땅 어딘가에 묻혔고, 친할머니는 빨치산으로 활동하다가 티푸스로 돌아가셨다. 할머니의 두 아들은 군대에서 복무하다가 전쟁이 발발한 지 한 달 만에 행방불명이 되었다. 할머니의 세 아들 중 한 명만 살아 돌아왔다. 바로 우리 아버지이다. 먼 일가친척들 중에서 열한 명이나 되는 친척들이 아이들과 함께 산 채로 독일군에게 불태워졌다. 누구는 자기 오두막에서, 또 누구는 시골 교회에서. 집집마다 그런 사연 하나쯤은 있었다. 어느 집이나. 시골의 사내아이들은 오랫동안 ‘독일인’이나 ‘러시아인’ 흉내를 내며 놀았다. – 14

전쟁터에서 위생사관, 저격수, 기관총 사수, 고사포 지휘관, 공병으로 복무했던 여인들이 지금은 평범한 회계원이나 실험실 조수, 여행가이드, 교사가 되어 살아간다… 그때 그곳에서의 삶과 지금 이곳에서의 삶의 완벽한 부조화가 놀랍다. – 18

오랜 시간을 들여 삶의 영역이 저마다 다른, 많은 사람들을 만나러 다녔다······ 그것도 한 번의 만남에 그치지 않고 주기적으로 여러 번 만났다. 보고 또 보고서야 인물을 화폭에 담아내는 초상화가처럼. – 19

텍스트, 텍스트. 사방이 텍스트다. 도시의 아파트들에서, 시골의 농가들에서, 거리에서, 기차 안에서······ 나는 듣는다······ 나는 점점 커다란 귀가 된다. 다른 사람들의 이야기를 하나도 빼놓지 않고 모두 담으려는 커다란 귀. 나는 목소리를 ‘읽는다’. – 23

도스토엡스키가 던진 물음. ‘사람은 자신 안에 또다른 자신을 몇 명이나 가지고 있을까? 그리고 그 다른 자신을 어떻게 지켜낼까?’ 이 물음을 이제 나 스스로에게 던져야 한다. 악은 분명 매혹적이다. 그리고 선보다 솜씨가 뛰어나다. 마음을 더 잡아끈다. 내가 전쟁이라는 밑도 끝도 없는 세계에 점점 더 깊이 빨려들어가는 사이, 다른 것들은 모두 빛을 잃고 흐릿해지며 시들해졌다. 거대하고 무자비한 세계다. 이제 나는 그곳에서 돌아온 이들의 고독을 이해한다. – 23

얼마 전 딸아이가 물었다. “엄마, 전쟁이 뭐예요?” 아, 어떻게 대답하나······ 나는 우리 아이가 사랑으로 이 세상과 만나기를 바라며, 함부로 꽃을 꺾어서는 안 된다고 가르친다. 무당벌레를 밟아 죽이거나 잠자리의 날개를 잡아 뜨는 건 잔인한 짓이라고. 그러면서 어떻게 이 아이에게 전쟁을 설명한단 말인가? 어떻게 죽음을 설명할 수 있을까? ‘거기선 왜 사람들을 죽이냐’는 물음에 어떻게 대답해줘야 할까? 우리 딸처럼 어린아이들까지 죽어나가는 그곳. – 27

하지만 여자들이 그보다 더 견딜 수 없는, 원치 않는 일은 사람을 죽이는 일이다. 여자는 생명을 주는 존재이기 때문이다. (···) 나는 여자에게는 죽는 것보다 생명을 죽이는 일이 훨씬 더 가혹한 일이라는 걸 알게 되었다. – 29

그들의 울음과 비명을 극화해서는 안 된다는 걸 잘 안다. 그러지 않으면 그들의 울음과 비명이 아닌, 극화 자체가 더 중요해질 테니까. 삶 대신 문학이 그 자리를 차지해버릴 테니까. – 31

나는 ‘하찮은 이야기 따위는 필요 없소… 우리의 위대한 승리에 대해 쓰시오…’라는 추신이 덧붙여진 편지를 여러 번 받았다. 하지만 나에겐 바로 이 ‘하찮은 것’들이 중요하다. 이 하찮은 것들이야말로 삶의 온기이자 빛이므로. – 32

고통에 귀를 기울인다…… 고통은 지난한 삶의 증거이다. 다른 증거 따윈 없다. 다른 증거 같은 건, 나는 믿지 않는다. 사람의 말이 얼마나 우리를 진실에서 멀어지게 했던가. 나는 비밀에 직접 잇닿는, 비밀에 대한 최상의 정보인 고통에 대해 생각한다. 삶의 비밀을 간직한 고통을. 모든 러시아문학은 고통에 대해 말한다. 사랑보다 고통에 더 많은 페이지를 할애한다. 그리고 사람들도 내게 고통에 대해 더 많은 이야기를 한다…… – 32

그들의 이야기를 듣는다…… 그들의 침묵도 듣는다…… 그들의 이야기도 침묵도 나에겐 모두 텍스트다. – 34

“누군가 우리를 배반하는 바람에… 독일군이 우리 빨치산의 은신처를 알아버렸어. … 우리는 몇 날 며칠, 몇 주를 머리만 내놓고 목까지 늪에 잠겨 있었어. 우리 일행 중에 여자통신병이 있었는데, 출산한 지 얼마 되지 않은 참이었지. 아이가 배가 고파서… 젖 달라고 보채는데… 엄마도 먹은 게 없으니 젖이 나올 리 없었지. 아이가 울어댔어. 아이는 울지, 독일군 추격대는 코앞에 있지… 수색견까지 데리고… 결국 지휘관이 결단을 내렸어… 누구도 지휘관의 결정을 아이 엄마에게 차마 전하지 못하고 망설이는데, 그녀가 스스로 알아차리더군. 아이를 감싼 포대기를 물속에 담그더니 한참을 있었어… 아기는 더이상 울지 않았지… 우리는 차마 눈을 들 수가 없었어. 눈을 들어 아기 엄마를 마주 대할 수도, 서로의 얼굴을 바라볼 수도 없었지…” – 45

“사람을 죽이는 게 얼마나 어려운 일인지 당신을 모를 거야. 나는 지하공작원이었어. 반년 후에 임무를 하나 받았는데, 독일군 장교 식당의 여종업원으로 잠입하는 거였지… 수프 냄비에 독을 풀고, 그날로 바로 빨치산에 합류하는 게 내 임무였어. 하지만 나는 그들에게 이미 친밀감을 느끼고 있었지. 아무리 그들이 적군이라도 매일 얼굴을 보고, 나에게 ‘당케 쇤… 당케 쇤…’ 하는데, 죽이는 게 어디 쉽나… 어찌 보면 죽이는 게 죽는 것보다 더 끔찍하지…” – 59

“특히 우크라이나는 비 온 뒤나 봄철이면 땅이 어찌나 무겁게 질척이던지, 꼭 땅을 반죽해놓은 것 같았지. 3일 동안 잠 한숨 못 잔 상태로 전사한 전우들을 묻고 무덤을 만들기 위해 땅을 파는데…… 아, 정말 죽겠더라고. 다들 우는 것도 힘에 부쳐서 울지도 못하고 그저 쓰러져 한숨 자기만 간절히 바랐어. 자고 또 자기만을.” – 120

“다섯 살 난 내 조카애가 우리 이야기를 듣고 있다가 ‘마냐 숙모, 만약 내가 불에 타면 뭐가 남는 거예요? 덧신만 남아요?라고 묻더군. 자, 보라니까, 우리 아이들이 우리한테 무슨 질문을 하는지… 사람이 타고 남은 뼛가루를…… 이제 나는 단박에 알아볼 수 있어…… 그건 하얀 게, 정말 새하얗거든…” – 122

“아직 3개월밖에 안 된 갓난쟁이 우리 아이를 작전에 데리고 다녔어. … 도시에서 의약품이며 붕대, 혈청제 등을 공수해오는 게 내 임무였어. 나는 아이의 양손과 양말 사이에 필요한 물건들을 넣은 다음 포대기로 꽁꽁 싸매는 식으로 물건을 들여왔어… 경계가 삼엄해서 누구도 그 일을 해낼 사람이 없었어. 나만 통과할 수 있었지. 우리 아이랑. 포대기 속에 있는 우리 아기랑… 아이 몸에 열이 올라서 울게 만들려고 소금으로 아이 몸을 문질렀어. 그러면 아이의 온몸이 새빨개지고 발진이 올라오면서 피부에 부스럼이 돋았지. 아이는 비명을 지르며 울어댔어. 검문초소에서 나를 불러세우면 ‘티푸스예요, 장교님…… 티푸스……’라고 둘러댔어. 그러면… 냉큼 사라지라며 우리를 쫓아냈지. … 검문초소들을 무사히 빠져나와 숲에 도착하면 한없이 울었어. 엉엉 목을 놓아 울었어! 우리 아이가 가여워서 마음이 찢어졌지. 그래도 한 이틀 지나면 다시 임무에 나섰어……” – 123

“내 방에서 꽃을 가지고 나와 이웃에게 부탁했던 게 기억나.
- 나 없는 동안 이 꽃에 물 좀 주세요. 금방 돌아올게요.
하지만 내가 돌아온 건 4년 후였지……” – 125

“한번은 밀밭에 몸을 숨기고 있었어. 햇살이 눈부신 날이었지. 독일군의 기관총이 ‘따다다다……’ 한바탕 불을 뿜고는 조용해졌어. 사그락사그락 밀 잎사귀 부딪치는 소리만 귀를 간질였지. 그리고 다시 쏟아지는 독일군의 총소리 ‘따다다다……’ 총소리를 들으며 생각했어. ‘밀 잎사귀의 속삭임을 나는 언제 다시 들을 수 있을까? 그 다정한 속삭임을……” – 126

“전쟁터에서 다짐했던 게 있어. ‘그 어떤 것도 결코 잊지 않겠다.’ 하지만 점점 잊혀가……” – 145

“전쟁터에서 제일 끔찍했던 건, 남자 팬티를 나르는 일이었어. … 이 한 목숨 바쳐 조국을 수호하겠다고 전쟁터까지 와놓고 남자 팬티나 나르다니.” – 152

빨치산이었던 여인은 지금도 전쟁 하면 모닥불 냄새부터 떠올린다. “뭐든 모닥불에서 했어. 빵도 굽고, 음식도 끓이고, 재가 남으면 그 위에 가죽외투며 겨울군화도 올려놓고 말리고, 밤엔 모닥불 옆에서 추위도 피하고……” – 163

“우리 중에 나타시카 질리나라고, 모스크바 출신인 아이가 있었거든, 그런데 그 아이가 ‘용맹한 병사’ 메달을 받고 포상으로 며칠간 집에 다녀오게 된 거야. 나타시카가 집에서 돌아오자 서로 나타시카 냄새를 맡겠다고 난리가 났지. 정말 돌아가며 줄을 서서 맡았다니까. 다들 나타시카한테서 집냄새가 난다며 좋아했어.” – 195

“우리는 전쟁을 잊고 말고 할 능력이 안 돼요. 우리 힘으로 어떻게 할 수 있는 일이 아니지.” – 201

“나는 밤마다 어린 소녀병사들의 머리를 구불구불하게 말아줬어. 파마용 클립 대신 솔방울을 써서…… 전나무에서 떨어진 마른 솔방울들도…… 비록 앞머리이지만 그렇게라도 해주고 싶더라고……” – 306

“나는 군대에서 기록병사였어…… 나는 죽음을 카메라에 담는 게 싫었어. … 주로 병사들이 쉬고 있는 모습을 카메라에 담았지. 담배를 피운다거나 포상을 받고 활짝 웃는다거나 할 때. … 부대에서 누군가 전사하면 병사들이 나를 찾아와 사진을 부탁했어. ‘혹시 그 친구 살아 있을 때 사진 있나요?’ 그러면 같이 사진을 찾는 거야…… 환하게 웃고 찍은 사진을……” – 307

“나는 군대에서 다리를 건설하고 지키는 일을 하게 됐다고 집으로 편지를 썼어. … 폭격을 맞았는지 폭파를 당했는지 산산이 부서진 다리를 보면 내 마음도 찢어지게 아팠어. 나한테 다리는 그저 임무의 대상이 아니라 살아 있는 생명체나 다름없었으니까. 부서진 다리를 보면 눈물부터 나는 거야… 전쟁이 나면 맨 먼저 다리부터 파괴시키거든.” – 317

“그들은 선량하고 정직한 사람들이었어. 스탈린이나 레닌을 믿은 게 아니라 공산주의 사상을 믿었지. … 모든 사람들을 위한 행복. 한 사람 한 사람을 위한 행복, 바로 그걸 믿었어.” – 31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