앨런 브링클리(Alan Brinkley), 황혜성 등 옮김, «있는 그대로의 미국사2», 휴머니스트, 2011(2005).

‘명백한 운명론’은 19세기 중반 미국의 국민주의를 특징짓는 자부심의 성장과 당시 개혁의 열기를 크게 자극했던 ‘오나전한 사회’라는 이상을 반영하고 있다. 이는 미국이 신과 역사에 대해 방대한 땅 너머로 나라의 경계를 확장할 운명을 타고났다는 생각에 기반한 것이었다. ‘명백한 운명론’은, 1840년대에 ‘저가 신문(penny press)’의 발행으로 과거 어느 때보다 많은 사람이 신문을 접할 수 있게 되면서 나라 전역으로 확산되었다. – p. 71

미국은 1820년대에 두 번이나 멕시코에 텍사스를 구매하겠다는 의사를 밝혔으나, 멕시코가 완강히 거부했다. … 1830년대 중반에는 이미 멕시코 정부와 미국인 정착민 사이에 갈등이 커지고 있었다. … 1836년에는 미국인 정착민이 과감하게 텍시코로부터 독립을 선포했다. … 잭슨 대통령은 노예 제도를 인정하는 거대한 주가 연방에 더해질 경우 지역 갈등이 가중될 것이라고 우려해 텍사스의 가입을 막았고, 1837년까지는 이 새로운 공화국을 인정하는 일조차 유보했다. 미국에게 퇴짜맞은 텍사스는 외톨이가 되었다. – p. 73

1848년 1월, … 시에라네바다 산맥의 한 작은 언덕에서 금의 흔적을 발견했다. 그 소식은 몇 달이 안 돼 미국 전역, 나아가 전 세계에 퍼졌고 삽시간에 수십만 명이 금을 찾아 캘리포니아로 밀려들었다. 골드러시가 절정에 달할 무렵 캘리포니아는 거의 광적인 흥분과 탐욕에 가까운 분위기에 휩싸여 있었다. 극서부로 향하는 이주민은 대개 여정을 시작하기 전에 세밀한 준비를 하게 마련이지만, ‘49년에 온 사람(forty-niner)’이라는 명칭의 캘리포니아 이주민은 달랐다. 그들은 농장과 직업, 집과 가족을 버려둔 채 우르르 배에 올랐고 육로로 몰려들었다. 49년에 온 사람 대부분(약 95퍼센트)은 남자였기 때문에 그들이 캘리포니아에 건설한 사회는 여성과 아이, 곧 가족이 없어 매우 불안정하고 변동이 심했다. … 캘리포니아는 금을 둘러싼 갈등과 인종 및 종족 간 갈등이 교차하는, 매우 혼란스러운 곳이 되었다. – p. 9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