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야기] 고양이를 사랑하면

고양이를 키우는 건 이루어질 수 없는 짝사랑에 빠지는 일이다. 고양이는 고즈넉한 오후를 홀로 즐기고 고적한 밤을 홀로 활보하며 때가 되면 조용히 독립한다. 고양이를 키우려는 이들이여, 아니 고양이의 삶에 관여하려고 하는 이들이여, 고양이는 자신을 버린 주인을 찾아 천리길을 돌아오는 누렁이가 아님을 잊지 마라.

고양이의 앞발 가운데를 살포시 누르면 숨어있던 발톱이 나온다. 고양이를 새끼 때부터 돌보고 다 클 때까지 자주 눌러본 이들은 이 느낌을 안다. 이 부드러운 것 속에 그렇게 날카로운 게 들어 있었다니. 중1 이래 고양이의 삶에 개입한 지 3년, 방금 낚시에서 돌아온 아버지의 물고기 가방을 고양이가 습격했다. 치명상을 입은 붕어는 펄떡거리며 마루에서 마당으로 떨어졌다. 몸부림치는 붕어를 수습하려던 나를 고양이가 할퀴었다.

고양이 발톱에 다친 상처는 금세 낫지 않는다. 생채기가 아물고 딱지가 저절로 떨어져 흉터가 희미해질 무렵 그 자리에 머물렀던 배신감도 함께 사라졌다. 우리는 서로 조금 더 알게 되었고 그 이후 나는 그의 삶에 그다지 관여하지 않았다. 여전히 나는 고양이를 좋아했고 사랑했다. 그러나 사랑하는 대상과 적당한 감정의 거리를 유지한다는 것은 애초부터 불가능한 일이었다. 야간 자율학습 때문에 고양이와 함께 보내는 시간이 줄어들었고, 고양이는 외박이 잦아졌다. 고양이는 나보다 훨씬 빠르게 어른이 되고 있었다. 고양이는 집 근처 공터에 사는 재규어를 닮은 커다란 황색 고양이와 어울렸다. 오래 짝사랑했던 고양이를 재규어에게 뺏긴 것 같았다.

고양이는 흰색과 검정색이 섞여 있었는데 어느 것이 바탕이고 어느 것이 얼룩이었는지 모르겠다. 아마도 흰색 고양이와 검정색 고양이 사이에서 태어났으리라. 마지막 외박은 6개월간 지속되었다. 어느 날 우리집 마당으로 산책나온 고양이 가족을 만났다. 내가 사랑했던 고양이와 재규어, 그리고 검정, 흰색, 황색이 골고루 섞인 얼룩 고양이 새끼 두 마리. 얼룩은 정직하다.

새끼 고양이들을 쓰다듬어 주었다면 예전보다 훨씬 더 날카롭고 강해진 발톱으로 날 할퀴었을 것이다. 예전에는 관여하지 않았던 것이지만 이제는 관여하고 싶어도 그러지 못하는 처지가 되었다. 그들은 다정하고 단단해 보였다. 한 가족이 천천히 사라질 때까지 마루에 앉아 물끄러미 그 모습을 바라보았다. 평화로웠다.

가끔 고양이 포즈, 그러니까 앞발을 쭉 펴면서 허리는 최대한 낮추고 엉치는 최대한 세우는 자세를 취하면 내 배 위에서 낮잠을 자고 나서 기지개를 펴던 고양이의 모습이 떠오른다. 새벽에 쓰레기 봉투를 뒤지고 있는 길고양이들을 마주칠 때면 세 가지 색을 공평하게 물려받은 새끼 고양이들 모습이 떠오른다. 물루라는 고양이를 짝사랑했던 쟝 그르니에는 이런 글을 남겼다. “고양이가 다리를 반쯤 편다면 그것은 다리를 펴는 것이 필요하기 때문이고 또 다리를 꼭 반쯤만 펴는 것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야속하고 무심하게 멀찍이 나를 보는 그이에 대한 조건 없는 사랑처럼, 고양이에게 주는 사랑도 그러하다. 그러나 고양이를 짝사랑해본 사람은 언젠가는 또 다시 고양이를 사랑하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