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념 정리] 굿맨의 ‘초랑색’ 문제: 귀납의 한계를 밝히다.
* 영상 해설
귀납법이란 ‘아마도’라는 단서가 붙는 예측이나 설득 방법을 가리키는 말이다.
“구름이 잔뜩 낀 걸 보니, 아마도 소나기가 내릴 것 같다.”
“출생률이 계속 낮아지고 있으므로, 10년 뒤에는 아마도 인구 절벽이 시작될 것이다.”
‘귀납/연역’이라는 용어는 일본 근대화 시기인 메이지유신 때 학자인 니시 아마네가 서양의 개념어들을 한자를 활용해 번역하면서 창안한 용어다.
- 니시 아마네가 창안한 번역 용어들은 인문학 영역에서 깊이 뿌리내렸다.
- 시간/공간, 선천/후천, 주관/객관, 긍정/부정, 내포/외연, 이성/오성, 추상/현상, 개념/관념… 같은 용어를 만들었다. ‘인문학’이라는 말도 그가 창안했다.
‘귀납’(歸納)의 ‘납’은 실로 꿰맨다는 뜻을 지녔다. 즉, 천 조각들을 모아서 뭔가를 만든다는 것으로, 자료를 수집한 다음 어떤 결론을 예측한다는 말이다. ‘내가 해봐서 아는데…’라고 말한다면 귀납법을 쓰는 것이다.
귀납법에 ‘아마도’가 붙는다면, 연역법에는 ‘당연히’라는 결론이 붙는다. 이미 입증되었다고 알려진 것을 대전제 삼아 어떤 사례를 설명하는 것이므로 당연히 다 맞거나 당연히 다 틀리거나 둘 중 하나다.
‘연역’(演繹)의 ‘역’은 실을 풀어헤친다는 뜻을 지녔다. 즉, 이미 만들어놓은 것을 풀어헤쳐서 보여주는 것으로, 기존 지식을 이용해 어떤 것을 입증한다는 말이다. ‘뉴턴의 이론에 따르면…’ 같은 방식이 연역법이다. 뉴턴의 이론이 옳다면 결론도 당연히 옳지만, 뉴턴의 틀린 이론을 전제하고 추론을 했다면 당연히 결론도 틀리게 된다.
철학자 넬슨 굿맨은 귀납법이 과학적 추론에는 적합하지 않다고 단정한다.
그의 ‘초랑색’(grue) 비유를 살펴보자.
초랑색(grue = green + blue)이란 굿맨이,
그런 색이 있다고 가정하고 만들어본 말이다.
초록색(green): 예전에도 초록색, 앞으로도 초록색
파랑색(blue): 예전에도 파랑색, 앞으로도 파랑색
초랑색(grue): 예전에는 초록색, 어느 순간부터 파랑색
* 이미지 참조: Youtube, “Wireless Philosophy”
전제(Premis): 관찰된 모든 에메랄드는 초랑색이었다.
결론(Conclusion): 모든 에메랄드는 초랑색이다.
전제(Premis): 관찰된 모든 에메랄드는 초랑색이었다. (O)
결론(Conclusion): 모든 에메랄드는 초랑색이다. (X)
에메랄드는 초록색이다.
지금까지 관찰된 모든 에메랄드가 초록색이었다.
관찰된 모든 에메랄드가 예외 없이 초록색이었으므로,
앞으로 발견되는 에메랄드 역시 초록색일 거라고 추정한다.
이것이 현재의 귀납적 방식이고, 이상한 부분이 없다.
이건 어떨까?
우리에게 알려지지 않은 에메랄드가 있는데,
오늘까지는 초록색이었다가,
내일부터는 파랑색으로 변하는 그런 에메랄드다.
색깔이 초록에서 파랑색으로 변하므로 ‘초랑색’이라고 부르자.
이 초랑색 에메랄드는 오늘까지 초랑색이었다.(O)
(초랑은 변하기 전까지는 초록과 구별이 안 됨)
이 초랑색 에메랄드는 내일도 초랑색일 것이다.(X)
(초랑은 일단 초록이었다가 나중에 파랑으로 변함)
이 초랑색 에메랄드는 내일은 파랑색으로 변해있을 것이다.
지금까지 초록색이었으니 내일도 초록색일 것이다. (정상처럼 보임)
지금까지 초랑색이었으니 내일도 초랑색일 것이다. (비정상처럼 보임)
똑같은 구조인데 왜 하나는 타당한 귀납이라고 하고,
다른 하나는 이상한 귀납이라고 하나? 그건 불합리하다.
이것은 귀납의 본질적인 문제이므로 이 둘을 구분하는 건 무의미하다.
결국 귀납은 너무나 취약한 논증인 것이다. 이것이 굿맨의 결론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