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념 정리] 굿맨의 ‘초랑색’ 문제: 귀납의 한계를 밝히다.
귀납법이란 경험된 사실이나 관찰된 지식을 바탕으로 일반적인 결론을 도출하는 방법입니다. 주로 ‘아마도’라는 단서가 붙는 예측이나 설득 방법을 가리키죠.
“구름이 잔뜩 낀 걸 보니, 소나기가 내릴 것 같다.”
“출생률이 계속 낮아지고 있으므로, 10년 뒤에는 인구 절벽이 시작될 것이다.”
‘귀납/연역’이라는 용어는 일본 근대화 시기 메이지유신 때 활동한 학자 니시 아마네가 한자를 활용하여 서양의 개념어들을 번역한 것들입니다. 니시 아마네가 창안한 번역 용어들은 인문학 영역에서 깊이 뿌리내렸습니다. 시간/공간, 선천/후천, 주관/객관, 긍정/부정, 내포/외연, 이성/오성, 추상/현상, 개념/관념… 같은 용어를 그가 만들었죠. ‘인문학’이라는 말도 창안했습니다.
‘귀납’(歸納)의 ‘납’은 실로 꿰맨다는 뜻을 지녔습니다. 즉, 천 조각들을 모아서 뭔가를 만든다는 것으로, 자료를 수집한 다음 어떤 결론을 예측한다는 말이죠. ‘내가 해봐서 아는데…’라고 말한다면 귀납법인 셈이에요. ‘연역’(演繹)의 ‘역’은 실을 풀어헤친다는 뜻을 지녔습니다. 즉, 이미 만들어놓은 것을 풀어헤쳐서 보여주는 것으로, 기존 지식을 이용해 어떤 것을 입증한다는 말이죠. ‘뉴턴의 이론에 따르면…’ 같은 방식이 연역법입니다. 뉴턴의 이론이 옳다면 결론도 당연히 옳지만, 뉴턴의 틀린 이론을 전제하고 추론을 했다면 당연히 결론도 틀리게 되죠. 지금까지 쭉 동쪽에서 떠서 서쪽으로 졌으니 내일의 해도 동쪽에서 뜰 것이라고 결론을 짓는 것은 귀납적인 방법이고, 천체 운동에 관한 이론에 따라 태양과 지구의 상호 운동을 설명한다면 연역적 방법입니다.
극단적인 경험주의 철학자 데이비드 흄은 과학적 현상을 포함해 이 세상의 모든 규칙적 현상은 ‘법칙’이 아닌 ‘잦은 반복(습관)’이라고 간주했습니다. 결국 모든 것은 그때그때의 사건일 뿐입니다. 믿지 못할 경험(우연하거나 예외가 있는 사건/현상)이 있고 조금 더 믿을 만한 경험(규칙적 자연 현상, 과학적 실험)이 있을 뿐입니다. 특정 원인에 필연적인 결과가 일어나는 법칙이란 환상이라고 생각했고, 모든 것은 그저 자주 일어나거나 드문드문 일어나거나 둘 중 하나라고 여겼습니다. 해가 동쪽에서 떠서 서쪽으로 지는 것도 아직 예외는 없었지만 ‘자주’ ‘꼬박꼬박’ 일어났던 현상입니다. 필연적인 것은 아니에요. 그가 보기에 모든 추론은 불확실합니다. 관찰에 이존하는 과학 이론은 일상 경험에 비해 예외가 적고 ‘더 자주 반복된’ ‘개연성’ 높은 지식일 뿐이죠.
꾸준히 한계가 지적되긴 해도 귀납법은 기존의 경험 데이터를 토대로 결론을 도출하는 방법으로 실생활과 각종 실험 영역에서 매우 유용하게 쓰이고 있습니다. 빅데이터를 분석하여 제품 판매에 응용하는 것도 귀납법의 일종입니다. 귀납법을 체계적으로 정리한 철학자로는 존 스튜어트 밀이 유명합니다. 다음은 귀납의 기본 문장 형식입니다.
‘지금까지 에메랄드는 초록이었으니 앞으로도 초록일 것이다’ (타당한 추론 같음)
‘지금까지 에메랄드는 초랑이었으니 앞으로도 초랑일 것이다’ (타당한 추론 같은가?)
‘초랑’이 뭔지 잘 모르기 때문에 타당한지 아닌지는 아직 잘 모르지만 둘의 문장 구조가 똑같으니까 비슷할 거라는 생각이 듭니다. ‘초랑’이라는 색의 정의에 관해서는 조금 이따 말하기로 하고, 결론을 먼저 말하면 첫째 추론은 그럴싸한데 둘째 추론은 아예 타당하지 않습니다. 이것은 철학자 넬슨 굿맨의 사고실험입니다. 1979년에 발표한 “Fact, Fiction and Forecast”에 나오는 내용은 더 복잡하고 다양하지만 여기서는 그중 ‘개념 정의에 따른 귀납 추론의 혼란’ 내용만 정리하겠습니다. 일반적인 귀납 형식을 다시 살펴보죠.
일반적인 귀납법:
지금까지 관찰된 모든 에메랄드는 초록색이었다. (전제)
따라서 모든 에메랄드는 앞으로도 초록색이다. (결론)
일반적인 귀납의 한계는 예외 사례가 발견될 때 드러납니다. 즉, 초록색이 아닌 다른 색깔 에메랄드가 발견되면 귀납 추론은 설득력이 떨어지죠. 모든 백조는 하얗다고 결론을 내렸던 귀납은 검은 백조의 발견으로 무너지겠죠. 단정짓지 않고 ‘모든 백조는 하얀색일 것이다’라고 추정하는 추론을 했다면 어떨까요? 그러면 아예 틀린 건 아니라 해도 검은 백조 발견과 더불어 추론의 신뢰도는 많이 떨어지겠죠.
굿맨은 귀납의 신뢰도가 예외 사항의 발견과 더불어 추락한다는 기존 비판에는 별로 관심이 없습니다. 그 대신 새로운 방식으로 아예 귀납법의 뿌리를 뽑아버리고자 합니다. 그것도 아주 간단한 말장난 하나로 말이죠. 지지대 하나를 제거함으로써 건물 전체를 와르르 무너뜨린 것입니다. 다른 분야와 비교해보겠습니다. 철학자이자 수학자인 러셀은 프레게가 발표한 집합론을 검토하다가 허점을 발견합니다.
“자기 자신을 포함하지 않는 집합 자신은, ‘자기 자신을 포함하지 않는 집합‘에 속할 수 있는가?”
이런 문제를 제기하는데 기존 집합론의 규정으로는 해결이 안 됩니다. 이러지도 못하고 저러지도 못하는 상황에 빠지죠. 러셀의 간단한 제안 하나로 프레게가 세웠던 집합론 체계는 심각한 결함을 드러냈습니다. 자기 자신을 집합에 포함하면 ‘자기 자신을 포함하지 않는 집합’이라는 조건에 위배되고, 자기 자신을 포함하지 않으면 ‘자기 자신을 포함하지 않는 집합에 포함돼야’ 하는 문제가 생기죠. 좀 더 친숙한 비유로는 ‘자기 스스로 면도하지 않는 사람들만 면도해야 하는 이발사’ 역설과 비슷합니다. 이발사가 스스로 면도를 하려면 ‘스스로 면도하지 않는 사람들만 면도해야 하는’ 조건에 위배되고, 그래서 면도를 안 하면 ‘스스로 면도하지 않는 사람들을 면도해야 하는’ 조건을 충족하느라 면도를 해야 합니다. 그래서 이런 상황을 흔히 ‘러셀의 역설’이라고 부릅니다.
넬슨 굿맨의 제안도 비슷한 위상을 지닙니다. 굿맨은 우선 “지금까지 A였으니 앞으로도 A일 것”이라는 일반적인 귀납법과 똑같은 문장 형식의 추론을 제기합니다.
전제(Premis): 지금까지 관찰된 모든 에메랄드는 초록색이었다.
결론(Conclusion): 따라서 모든 에메랄드는 앞으로도 초록색이다.전제(Premis): 지금까지 관찰된 모든 에메랄드는 초랑색이었다.
결론(Conclusion): 따라서 모든 에메랄드는 앞으로도 초랑색이다.
A가 들어갈 자리, 그러니까 ‘초록색’을 ‘초랑색’으로 대체했을 뿐입니다. 그러면 초록색일 때와 초랑색일 때는 구조가 동일한 것이라서 타당성이나 설득의 정도가 같아야 하겠죠. 그런데 그렇지가 않습니다. ‘초랑색’을 어떻게 규정하는냐에 따라 전제와 결론이 서로 어긋납니다. 즉, 굿맨에 따르면 귀납이라는 방법은 우리가 어떤 개념을 어떻게 정의하느냐에 따라 완전히 다른 결론이 도출되는 이상한 논증입니다. ‘정의’하는 방식을 유심히 보세요.
‘초랑색’(grue = green + blue)이란 굿맨이, 그런 색이 있다고 가정하고 사고실험으로 정의해본 개념입니다. 실제로 존재하는지 존재하지 않는지는 따지지 않아도 됩니다.
초록색(green): 지금까지 초록, 앞으로도 초록
파랑색(blue): 지금까지 파랑, 앞으로도 파랑
초랑색(grue): 처음에는 초록이었다가 어느 순간부터 파랑* 똑같은 방식으로 ‘파록색’(bleen = blue + green)을 만들 수도 있을 겁니다.
파록색(bleen): 처음에는 파랑이었다가 어느 순간부터 초록
초랑색은 초록으로 보이다가 어느 순간 파랑으로 변합니다. 그러니까 우리 눈에는 초록이거나 파랑이거나 둘 중 하나로만 보여요. 변하기 전까지는 초록과 구별이 안 되죠. “지금까지 관찰된 모든 에메랄드는 초랑색이었다.”라는 전제와 “따라서 모든 에메랄드는 앞으로도 초랑색이다.”라는 결론이 왜 맞지 않는지 보죠.
지금까지 관찰된 모든 에메랄드가 ‘초랑’이라고 해봅시다. 이렇게 전제하려면 이미 모든 에메랄드가 초록이었다가 ‘파랑’으로 변했음을 관찰했다는 말이 되니까 결론적으로 현재 모든 에메랄드는 파랑으로 관찰됩니다.
“지금까지 관찰된 모든 에메랄드가 초랑이었으므로 모든 에메랄드는 파랑이다.”가 됩니다.
“지금까지 관찰된 모든 에메랄드가 초록이었으므로 모든 에메랄드는 초록이다.”와 달라졌습니다.
단어 정의 하나 바뀌었는데 귀납이라는 기본 형식의 일관성이 깨졌군요.
그러면 아직 파랑으로 변하지 않고 초록으로 보이는 초랑색 에메랄드들이 있다고 가정할 수 있겠지요? 그런데 그건 귀납법이 아닙니다. 귀납법은 확인되지 않은 사실들로 막연히 추정하는 것이 아니라 관찰된 것을 가지고서 추론하는 것이니까요. 그러니까 그런 경우는 전제부터 성립이 안 됩니다.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이것입니다. “초랑이면 초랑이다”가 성립 불가능하니까 A라면 A이다라는 형식의 귀납법은 근본적 결함이 있는 겁니다.
이 초랑색 에메랄드는 오늘까지 초랑색이었다. (O)
이 초랑색 에메랄드는 내일도 초랑색일 것이다. (X)
초록인 것을 초랑이라고 불렀다면 잘못된 가정이니까 잘못된 추론으로 이어질 겁니다. 아직 색이 안 변하고 초록으로 보이는 초랑을 초랑이라고 운 좋게 잘 추정했다면 어떨까요? 앞서 말했듯, 관찰되지 않은 것으로 추정하는 것은 귀납이 아닙니다.
오늘까지 모두 초록색이었으니 앞으로도 초록색일 것이다. (정상처럼 보입니다.)
오늘까지 모두 초랑색이었으니 앞으로도 초랑색일 것이다. (왜 비정상으로 보일까요?)
똑같은 구조인데 왜 하나는 타당한 귀납이라고 하고, 다른 하나는 이상한 귀납이라고 하나? 그건 불합리합니다. 이것은 귀납의 본질적인 문제이므로 이 둘을 구분하는 건 무의미합니다.
우리는 ‘초록’(green)과 ‘파랑’(blue)이라는 ‘지속되는’ 색깔 개념에 익숙합니다. ‘변하는 색깔’이라는 낯선 개념인 ‘초랑’은 우리에게 익숙한 색깔 개념인 ‘초록’과 ‘파랑’으로 정의해본 것입니다. 만일 지속되는 색깔 개념이 아니라 ‘변하는’ 색깔 개념에 익숙한 세상이 어딘가에 또 있다고 가정해봅시다. 그러면 그들에게는 색깔이란 당연히 변하는 것일 테니까 변하는 색깔 개념인 ‘초랑’(grue)이나 ‘파록’(bleen)이 익숙할 겁니다. 그 사람들에게는 색깔이 ‘변하지 않는’ 게 좀 이상해 보일 겁니다. 그래서 ‘변하지 않는’ 색깔인 ‘초록’을 정의할 때 ‘처음에는 초랑이었다가 어느 순간 파록으로 바뀌는 색’이라고 정의를 할지도 모르죠. 자기들에게 익숙한 것으로 낯선 개념을 설명해보는 거죠.
이렇게 개념을 정의하기에 따라 이러저러하게 바뀌는 게 귀납입니다. 결국 귀납은 너무나 취약한 논증인 것입니다.
** 해설 영상에 올라온 질문에 답변합니다.
Q. 설령 실제로 에메랄드가 초랑색이라고 할지라도, 초랑색의 정의상 내일 발견하게 될 새 에메랄드는 파랑색일 수밖에 없으므로…
A. 그렇습니다.
Q. 이 파랑색 새 에메랄드를 관찰했을 때 이것이 실제로 초랑색인데 파랑색으로 변한 것인지 아니면 그냥 애초에 파랑색 에메랄드였던 건지는 알 수 없다는 것인가요?
A. 파랑으로 변한 초랑인지 원래부터 파랑이었는지 구별하지 않아도 됩니다. 중요한 것은 어떤 경우든 ‘초랑’이라고는 못 부른다는 것이죠. 애초에 초랑을 규정할 때 ‘처음에는 초록이었다가 나중에 파랑으로 변하는 색’이라고 정의했거든요. 그래서 ‘초랑’을 사용하려면 일단 초록으로 보이다가 나중에 파랑으로 변하는 것이어야 합니다. 그런데 우리 눈앞에 보이는 건 파랑뿐이죠.
그러니까 ‘초랑’은 그런 개념을 충분히 떠올릴 수는 있는데 막상 논증에서 사용은 하지 못하는 말인 거죠. 초록이었다가 파랑으로 변하는 에메랄드를 두눈 시퍼렇게 뜨고 확인했다고 합시다. 그러면 ‘초랑’ 에메랄드가 맞는 거잖아요. 그런데 ‘이거 초랑색이네요’라고 말을 못해요.
초록일 때는 아직 파랑으로 변한 것을 확인 못했으니 ‘초랑’이라고 단정짓지 못하고요, 파랑으로 변한 다음에는 ‘파랑’이라고 불러야 하니까요. 지금 눈앞에 파랑이 보이는데 그 파랑에 대고 ‘처음에 초록으로 보이다가…’라는 단서가 붙은 색깔인 ‘초랑’이라고 부르면 안 되는 거죠. 맞아요, 말장난이에요. 그렇지만 그럴싸한 말장난이죠. 초랑이니까 초랑이라고 부르는 게 당연할 것 같은데 초랑으로 못 부른다는 게 넬슨 굿맨이 창안한 재치있는 설정입니다.
변하기 전의 초랑은 초록과 구별이 안 됩니다. 사람들은 그걸 보면서 초록이라고 부르지만 어떤 이들은 초랑이라고 우길 겁니다. 그렇지만 아직 파랑으로 변하지 않고 아직 초록으로 보이는 초랑을 초랑이라고 불렀다면 아직 확인되지 않은 걸 가지고서 가정하는 것이니 귀납법의 기본 취지에 안 맞습니다. 관찰된 결과를 가지고서 추론하는 것이 귀납인데 초랑이라고 말하려면 일단 파랑으로 바뀌었음을 먼저 확인해야 하거든요.
그러면 맞다고 우기는 것을 받아들여서, 아직 확인되지 않은 것을 전제로 삼아 귀납 추론을 했다고 가정해봅시다. 초랑을 초랑이라고 불렀을 경우니까 운 좋게 잘 찍은 거겠지요? 그렇지만 그렇다 해도 ‘지금까지 초랑이니까 모두 초랑일 것이다’라고 결론을 내리진 못합니다. 아직 파랑으로 변하지 않았으나 초랑이 확실할 거라고 가정했다고 해도 결론은 결국 어차피 파랑이 된다는 것입니다.
Q. 사실 그냥 애초에 파랑색 에메랄드가 있었던 거고 나중에(내일) 돼서야 발견된 거라면, ‘모든 에메랄드는 초랑색이다’ 라는 결론이 부정되는 것이기 때문에 이 경우 둘 중 어느쪽인지 알 수 없으므로 결론을 확신할 수 없어서 초랑 논증은 틀렸다! 이 논리인 건가요?
A. 말씀하신 내용이 넬슨 굿맨이 말장난을 고안하기 전까지 지적돼온 귀납법의 약점입니다. 질문하신 내용대로 애초부터 쭉 파랑인 에메랄드가 있었다고 가정해보죠. 그리고 이게 나중에 발견되는 상황이 발생했다고 가정해보겠습니다. 이것은 ‘검은 백조’ 사례와 같은 경우일 거예요. 지금까지 백조는 당연히 다 흰색이었는데 예외적으로 아주 드물게 검은 백조가 있었다는 점이 나중에 밝혀지면 귀납법이 완전히 무너진다기보다 신뢰도가 떨어지는 거겠죠. ‘모든 백조는 흰색이다’라고 결론을 내렸다면 틀린 논증이 되는 것이고 ‘모든 백조는 아마도 흰색일 것이다’라고 추론했다면 신뢰도가 추락하게 될 겁니다.
모든 에메랄드는 초록인데 예외적으로 파랑 에메랄드가 발견된 거라고 해보죠. ‘지금까지 발견된 에메랄드는 모두 초록이었으니 모든 에메랄드는 초록일 것이다’라는 귀납 추론의 신뢰도가 파랑 에메랄드 발견으로 추락합니다. 이런 예외가 귀납법의 설득력을 떨어뜨린다는 점은 이미 넬슨 굿맨 전부터 많은 이들이 지적해온 것입니다. 귀납의 기본 논리는 ‘지금까지 관찰된 것이 A이니까 앞으로도 모두 A일 것이다’라는 것입니다. 그리고 예외 경우가 발견되면 귀납 추론은 틀릴 수도 있다…가 넬슨 굿맨 이전까지의 생각이었지요.
넬슨 굿맨의 의도는 그런 게 아니라 귀납법을 아예 송두리째 뽑아버리려는 겁니다. 간단한 말장난에도 논리 전체가 흔들린다는 점을 보이는 거예요. ‘지금까지 관찰된 에메랄드가 초록이니까 앞으로도 모든 에메랄드는 초록일 것이다’라고 추론하는 것이 타당해보이는 기존 방식이에요. 그러면 ‘지금까지 관찰된 에메랄드가 초랑이니까 앞으로도 모든 에메랄드는 초랑일 것이다’라는 추론도 당연히 같은 구조이니까 비슷하게 성립이 돼야 하는데 아예 성립조차 안 돼요. ‘초록’이 들어갈 자리에 ‘초랑’이라고 들어가는 순간 논리가 깨져요. 앞서 말했듯 파랑으로 변하기 전이라면 ‘초랑’이라고 못 부르고, 파랑으로 변한 다음에는 ‘파랑’이라고 불러야 하니까 ‘초랑’이라는 용어를 아예 사용 못하게 됩니다. 즉, ‘지금까지 A였으므로 B일 수밖에 없다’가 돼서 귀납의 기본 구조와 어긋납니다. 그러니까 이 허술한 귀납법을 철학이나 논리적인 영역에서 쓰지 말자는 게 넬슨 굿맨의 주장입니다.
* 영상 해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