앙투안 드 생텍쥐페리(Antoine de Saint-Exupéry), 엄기용 옮김, «성채», 범우사, 2002(1975).
원제: Citadelle
<상권>
사람이 사는 거처를 누가 억설로 지을 수 있겠는가… 벽돌이나 돌무더기, 기왓장에 인간의 정신과 마음이 있을 수 없다. … 나는 건축가다. 나는 하나의 정신과 하나의 마음을 갖고 있다. 침묵으로 돌을 변화시킬 수 있는 능력을 소유하고 있는 것은 오로지 나 혼자일 뿐이다. 단지 재료에 지나지 않는 흙을 논리적인 방식에 따르지 아니하고 오로지 신에게서만 찾아볼 수 있는 창조자의 영상에 따라 내가 반죽하고 있다. – 35
나 혼자 힘으로 속죄양과 양떼와 나의 저택과 산 언덕을 확보하고, 태양을 향해 텅빈 두 팔을 열어젖히는 이 젊은 우상, 모든 것을 장악하게 되는 원동력인 나라는 인간을 키워나가고 바로 그 속에서 나오는 것이 이미지, 그리고 사랑인 것이다. – 36
성채여! 나는 그대를 하나의 선박과 같이 지었던 것이다. 나는 순풍에 불과한 시간 속에다 그대를 못 치고 돛을 매고 닻줄을 늦추었노라. – 37
배 안에서 살게 되면 바다는 내다볼 수 없는 것이다. 가령 누가 바다를 볼 수 있다고 해도 그 바다는 선박의 장식에 지나지 않는 한 부분이었을 뿐이다. … – 38
나는 또 긴요한 사실로 다음과 같은 것을 알아냈다. 우서 배를 건조하고, 대상들에게 행장을 차리게 하고, 인간보다 더 오래 지속되는 신전을 세우는 일이 긴요한 일이라고 알려 주면, 그 후부터 그들은 자신들보다 더욱 값진 것과 스스로를 기꺼이 맞바꾸게 된다는 것을 나는 알았다. 그러면 화가, 조각가, 판화가, 금은 조각사들이 탄생된다. 영원히 남을 작품을 만들지 않고 자신의 당대만을 위해 일하는 사람은 인간으로서의 소망을 지니지 못한다. 그렇기 때문에 내가 그들에게 건축술과 필요한 규칙을 가르쳐 주어도 아무 쓸모가 없게 된다. – 4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