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라스무스(Desiderius Erasmus Roterodamus), 박문재 옮김, «우신예찬», 현대지성, 2022.
** 요약
“우신예찬”은 ‘우신의 자화자찬’을 의미한다. 에라스무스는 어리석음과 무지를 관장하는 ‘우신’을 설정한 다음, 그 우신의 입을 빌려 세상 사람들에게 메시지를 전한다. 최초 설정인 ‘우신’ 말고는 그가 따로 지어낸 것이 없으며, 모든 내용이 우리 주변에서 실제 일어나는 일이거나 실제 전해져온 이야기들이다. 그래서 우신의 이야기를 곰곰이 들어보면 틀린 말이 하나도 없다. 그 시대 사람들에게 커다란 호응을 불러일으켰던 것은 그 때문이다. 당시에만 맞는 말이 아니라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다 통하는 말이다.
우리의 이기심과 허물들이 우신의 허심탄회한 연설로 만천하에 드러난다. 교회와 성직자들의 허물들도 물론이다. 그렇지만 재미있는 우신의 자화자찬 이야기들을 그냥 유쾌한 농담처럼 흘려들으면 될 일이지, 트집을 잡거나 정색을 하고 화를 내면 그 사람이 범인이 되는 것이다. <우신예찬>은 그렇게 살아남았고 널리널리 퍼져나갔다. 다음은 우신의 자화자찬 연설 내용이다.
사람들은 대체로 앎을 싫어하고 배움도 싫어합니다. 그 대신 어리석음의 신인 나 ‘우신’을 좋아하지요. 무지와 만취라는 유모들이 어릴 적 나를 키웠습니다. 자아도취, 아부, 망각, 태만, 쾌락, 경솔, 방탕, 광란 등이 나를 거들었던 시종들이죠. 지혜가 최고 덕목이라 일컫는 자들도 있지만, 그 지혜롭다고 자처하는 자들을 포함해 모든 인간, 모든 신들까지도 내가 깊이 관여하는 눈먼 사랑과 쾌락 없이는 태어나지 못했음을 명심하십시오. 진짜 어리석은 자든, 아니면 어리석은 척하는 자든 술자리에 웃음꽃이 필 수 있게 흥취를 돋을 사람이 있어야 사는 게 즐거워집니다.
당나귀 귀를 지녔던 미다스 왕의 이야기처럼, 속마음을 현명하게 감추지 못하고 다 털어놓는 것이 우리네 본성입니다. 어리석은 우리들은 이것저것 따지지 않기에 부끄러움을 모르고 뭔가를 바로 말해버리고 실행합니다. 어리석은 자들은 이렇게 진실되고 한결같은데, 현명한 자들은 항상 심사숙고만 하기에 실제로는 아무 일도 하질 않습니다. 인생사는 온통 어리석은 것들로 가득차 있는데 지혜만 가지고서 뭔가 해보려는 게 말이 됩니까?
지나치게 많이 아는 건 인생에 득이 될 게 없는데도, 철학자와 현자들은 공부에 매달리며 빛나는 청춘을 허비합니다. 그들은 자신에게는 늘 엄격하고 타인에게는 신랄하며, 무지한 대부분의 이들에게 적대적이라서 늘 외톨이입니다. 심각한 문제만 궁리하느라 인생을 낭비하고 우울한 노년을 보내지요. 이웃들에게 고발당하여 독배를 받고 죽은 소크라테스의 비참한 말년을 보십시오. 그렇게 되고 싶은가요? 소크라테스, 플라톤, 아리스토텔레스가 주장했던 이념대로 세워진 국가가 한 곳이라도 있었습니까?
철학자들이란 물건을 사고팔거나 일상적인 계약도 하나 스스로 처리 못하는 쓸모없는 인간들입니다. 학문하는 자들은 대체로 쓸모가 없지만 일상의 일을 처리하는 법률가들과 의사들은 그나마 우리가 친하게 지낼 만합니다. 우리의 삶을 움직이는 것은 정욕과 분노입니다. 감정이나 욕망은 제거되고, 이성만 남은 이른바 완벽한 현자가 있다면 그건 괴물이나 다름없습니다.
무지는 인생에서 꼭 필요합니다. 다 알면서도 일부러 모른 척 하는 것도 종종 필요하지요. 친구나 동료의 결점을 보면 적당히 눈감아주어야 합니다. 적당히 속아주면 만사가 태평해지지요. 적당히 거짓으로 칭찬해주면 서로 행복해집니다. 인생은 거대한 연극입니다. 분장을 하고 가면도 쓰고 각자 자기에게 맡겨진 역할을 충실히 해내는 거지요.
자아도취는 여러 나라의 국민들에게 행복과 즐거움을 줍니다. 스코틀랜드인은 고귀한 혈통에 뿌듯해합니다. 프랑스인들은 세련된 취향을 자부하지요. 이탈리아인들은 수사학과 문학에 자존심을 세우고, 그리스인들은 모든 학문의 원조가 자기들이라고 추켜세웁니다. 유대인들은 오지도 않는 자신들만의 구세주를 기다리면서 희망에 부풀어 살지요. 자아도취에게는 아부라는 동생이 있습니다. 사기를 쳐서 타인을 불행에 빠뜨리는 아부 말고 일반적인 좋은 아부 말입니다. 낙심한 자를 일으켜세우고 우울한 자에게 위안을 주며 병자의 고통을 덜어주고 서툰 자에게 자신감을 불어넣는 아부는 노동과 질병 등 온갖 고통으로 가득찬 인생을 그래도 살 만하게 해줍니다.
광기는 어떠한가요. 물론 타인에게 해를 주지 않는 무해하면서 어리석은 광기 말입니다. 사냥에 미친 자들은 사냥개의 똥을 코에 들이대며 들짐승을 잡을 생각에 들뜹니다. 수천 번은 지켜보았을 들짐승 해체 작업을 빙 둘러서 다시 보며 자기들끼리 황홀해합니다. 어떤 한 분야에 미쳐가는 건 엄청난 행복을 줍니다. 미친 것들은 서로 얼굴만 봐도 즐겁습니다.
여러분의 감사 기도 내용을 한번 보십시오. 돈을 벌게 해주어서, 목숨을 건지게 해주어서, 위기에서 혼자 벗어나올 수 있어서, 불륜 현장을 들키지 않고 도망칠 수 있어서 감사 기도를 올리지 어리석음에서 벗어나게 해주어 감사하다고 기도를 올리는 이는 못 봤습니다. 사람들의 바람이 이러하건대 사제들과 설교자들이 돈벌이에 나서는 것도 당연하고 교회에서 면죄부를 파는 것도 당연한 일이죠. 그러다 보니 성인들에게도 역할이 다 할당됩니다. 치통을 낫게 해주는 성인, 도둑맞은 물건을 찾게 해주는 성인, 양떼를 잘 키우게 해주는 성인… 우리 요구대로 성인들이 역할극을 해주면 됩니다. 하도 어리석은 짓이라 우신인 나조차도 창피할 지경이군요.
지혜는 불공평하여 아무에게나 혜택을 주지 않지만, 우신인 나는 공평무사하므로 누구에게나 모든 것을 아낌없이 베풉니다. 모든 이의 마음속에 가득차고 모든 관습 속에 스며듭니다. 성서에, 어리석음은 감추되 지혜는 감추지 말라고 적혀있는데요, 그건 어리석음이 더 귀한 거라서 그렇습니다. 귀중한 건 집안에 감추어 두잖습니까.
플라톤의 동굴 비유요? 우리가 동굴 벽의 그림자만 보며 살아가기에 불행하다고요? 그저 행복하면 되는 겁니다. 그게 가짜로 인한 행복이라고 해도 말이죠. 지식인이란 것들은 모두 재수가 없는데, 자유분방한 족속인 시인들과 사람들을 웃기려고 애를 쓰는 수사학자들이 그나마 내가 관심을 갖는 부류입니다. 신학자들은 온갖 질문에 모두 빠져나갈 수 있는 갖가지 변명들과 구멍들을 마련하느라 여념이 없습니다. 어떤 수도사는 60년 동안 단 한 번도 자기 손으로 돈을 만져본 적이 없다고 자랑합니다. 장갑을 끼고 만졌으니 아예 틀린 말은 아닙니다. 여자들이 또 수도사를 좋아합니다. 그들 앞에서 남편 욕을 실컷 해도 되니까요.
군주는 학문과 진리를 미워하니 내 편입니다. 주교와 추기경은 가난하게 살았던 사도들을 대신하여 보란 듯이 부유하게 살아갑니다. 그리스도의 대리자를 자처하는 교황 자리를 왜 온갖 폭력을 동원하여 차지하려고 할까요? 권력, 직위, 면책특권, 돈, 면죄부, 쾌락 등은 어리석음과 친해져야 얻을 수 있는 것들입니다. 힘들고 어렵고 지혜로운 일들은 베드로와 바울에게 떠넘기면 됩니다. 우리에게 세속적인 행복과 위안을 주는 나와 기독교는 참으로 비슷합니다.
이런, 내가 별 이야기를 다 하는군요. 지켜야 할 선을 넘겨버린 것 같은데 내가 다 우둔해서 그렇습니다. 함께 술마시며 했던 이야기를 다 기억하는 사람은 질색이라는 말이 있지요? 내가 한 말을 모두 기억하는 청중은 질색입니다. 그러니 술을 더 마십시다. 술잔을 드세요. 잘 사십시오. 끝.
… 당시 여견으로는 진지한 글을 쓰기가 그리 마땅치 않아 해학을 담아 ‘어리석음’을 예찬하는 글을 쓰기로 마음먹었습니다. … 그런 생각을 하게 된 것은 무엇보다 ‘모어’라는 당신의 성 때문입니다. … ‘모어’는 ‘어리석음’을 뜻하는 그리스 단어와 비슷하답니다. 우리가 해학을 즐기는 천성을 타고 난 것을 당신도 충분히 인정할 테고… 당신은 모든 면에서 교양 있고 유쾌한 농담을 기꺼이 즐기며 우리 모두의 유한한 인생에서 데모크리토스처럼 살아가고자 할 것이라고 보았기 때문입니다. – <서문> 로테르담의 데시데리우스 에라스무스가 친구 토마스 모어에게
위대한 웅변가가 오랫동안 심사숙고해서 연설을 준비해도 청중의 근심과 걱정을 없애기 힘든 법인데, 나는 그저 여러분 앞에 등장한 것만으로도 그런 일을 해냈습니다. – 20
나는 잠시 소피스트 흉내를 내보려고 이렇게 여러분 앞에 섰습니다. … 현자라는 치욕스러운 명칭을 거부하고 궤변가이기를 자처한 저 옛 사람들을 흉내 내려 합니다. – 21
대중연설가들… 그들은 거머리처럼 두 개의 혀를 사용하고, 말할 때 마치 신이라도 된 듯이 여기며, 자신들의 라틴어 연설문 곳곳에 적절하지도 않고 빈약한 그리스어 단어들을 모자이크 장식처럼 끼워 넣는 것을 대단한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 단어들의 뜻을 이해하는 사람은 자기가 어려운 것도 해독할 수 있다는 데 만족감을 느끼고, 그렇지 못한 사람은 알 수 없는 대단한 글을 쓴 저자에게 더 큰 존경심을 갖게 하기 위해서지요. … 더욱 가관인 것은 그런 말들을 이해하지 못했으면서 이해한 것처럼 보이려고 당나귀처럼 ‘귀를 씰룩거리며’ 큰 소리로 웃고 박수 치는 사람들입니다. – 28
… 아름답고 매력적인 두 요정이 젖을 먹여 나를 키워주었기 때문이지요. 바쿠스의 딸 ‘만취’와 판의 딸 ‘무지’가 그들입니다. – 35
부록: 에라스무스가 마르턴 판 도르프에게 보낸 편지
호라티우스도 … “웃으며 진실을 말하는 사람을 누가 막겠는가”라고 말했습니다. … 진실 자체는 버겁고 힘들지 몰라도 거기에 재미를 더앴을 때, 사람들의 마음속에 좀 더 쉽게 파고들 수 있기 때문입니다. – 25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