후천적 재능에 관하여

저는 어릴 때부터 성적과 무관하게 여러 분야를 공부하는 것을 무척 좋아했는데, 학교 성적으로 보면 최상위권은 아니었어요. 그래도 시험 공부는 물론 열심히는 했으니까 상위권 성적은 유지했어요. 해야 할 공부가 아무리 밀려있어도 친구들이 어떤 문제나 개념을 물어보면 하던 일을 멈추고 차근차근 설명해주었어요. 물어본 친구가 잘 이해하고 고마워할 때, 그 기쁨과 보람이 되게 크더라고요.

설명을 하다보면 제 생각이 또렷하게 정리되기 때문에 제게도 유익했어요. 나중에 알았지만 ‘가르쳐보는 것’은 아주 좋은 공부 방법이더군요. 제가 힘들게 이해했기에, 쉽게 이해시킬 수 있었고 답으로 향하는 올바른 지름길도 알게 되었어요.

친구에게 도움이 되었다는 뿌듯함에 신이 나서 제 공부도 더 잘 됐기 때문에 설명하는 시간이 전혀 아깝지 않았어요. 전국 등수를 다투는 최상위권 친구들보다 내가 설명을 훨씬 잘해줬어요. 몰라서 함께 좌절하는 경우도 물론 많았지만요. 괜히 물어보았다가, 이 당연한 걸 왜 모르지? 하는 표정을 본 친구들은 어김없이 나를 거쳐갔죠. 저는 머리가 팍팍 돌아가는 영재가 아니었기에 굼뜨게 개념을 겨우 이해했는데, 그래서인지 친구들이 왜 그걸 물어보는지, 어디에서 막히는지 바로 공감할 수 있었어요.

뭔가를 스스로 이해하는 능력과 자기가 이해한 것을 남에게 쉽게 설명하는 것은 영역이 서로 다른 것 같아요. 역사상 최고의 수학 천재라고 불리는 가우스는 ‘동료 수학자들이 쓸데없는 것들을 질문하고 물고 늘어질까봐 논문 발표를 하기 싫다’고 말한 적 있죠. 물론 나쁜 의미는 아니었어요. 다른 사람들에게 설명하느라 보내는 시간을 자기 연구를 발전시키는 데 오롯이 쓰고 싶다는 말이었으니까요. 천재는 응당 그러해야 돼요.

뒤늦게 난 알았어요. 초등학교, 중학교, 고등학교, 대학교, 대학원을 거치면서 내 안에 있는 조그마한 재능을 조금씩 단련시키고 키워왔다는 것을요. 그러다보니 천부적인 건 아니지만 제가 발전시켜온 재능이 제법 번듯해졌어요. 제가 딴 건 잘 못해도 어려운 개념을 열심히 이해해서 남에게 조금 더 쉽게 전달하는 건 잘하거든요, 라고 말할 정도는 됐어요.

제가 1997년에 대학교 서버에 개인 홈페이지를 만들어 올렸거든요. 제목이 “새내기를 위한 문학과 웹”이었어요. 인문학부 신입생들이 문학 이론 공부를 더 쉽게 할 수 있도록 도와주려는 목적으로 만들었는데, 대학원에 가면서 서버를 옮겼고 내용도 더 풍부해졌습니다. 1998년에는 당시에 가장 큰 포털 사이트였던 야후!코리아가 선정하는 금주의 웹사이트가 되기도 했고 연말에는 올해의 웹사이트 후보에도 올랐죠.

그러고보면 뭔가를 공부하여 나와 같은 길을 걷게 될 사람들에게 그 지식을 쉽게 전달하는 일에 언제나 기쁨과 보람을 느꼈던 것 같습니다. 고등학교 때도 문과였고, 영문과 대학생, 국문과 대학원생이던 제가 과학교양서를 썼어요. 10대 시절부터 후천적으로 키워온 해설 재능이 과학교양서 한 권을 쓸 수 있을 정도로 성장했어요. 제 자신이 기특합니다. 제 후천적 재능은 계속 발전할 것 같아요. 공부가 예전보다 훨씬 더 재미있어지고 그래서 더 즐겁게 공부하고 있거든요.

꾸준히 갈고닦으며 일구어가야 하는 후천적 재능은 천재들의 선천적 재능만큼 빛나고 폼나지는 않아요. 그렇지만 후천적 재능은 선천적 재능과 달리 그것을 다른 사람들과 공유할 수 있어요! 그 점이 너무나 아름다워요. 볼수록 아름다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