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야기] 키에 관한 재미없는 이야기

키에 관한 이야기를 하려면 긴 한숨과 심호흡이 필요하다. 지금 내 키는 179센티이고 작은 편이 아니지만 중학교 3학년 때까지는 늘 제일 앞 자리에 앉는 작은 소년이었다. 경북 봉화의 춘양국민학교에 입학하자마자 한 달도 채 안돼 충북 제천으로 전학 왔는데 그때 교장이 어머니에게 말했다. “이렇게 작아서 학교나 제대로 다닐 수 있을지 모르겠군요.” 내가 또래에 비해 아주 작다는 것은 친구들과 어울리며 자연스럽게 알게 됐다.

초등학교 3학년 때 한 소녀를 좋아했는데 소녀는 계집아이와 사내아이를 통틀어 키가 가장 큰 아이였고, 난 우리반에서 둘째로 작은 아이였다. 그 친구는 내게 항상 친절하게 대해줬지만 난 소녀 앞에서 한 번도 좋아한다는 말을 꺼내지 못했다. 창피당할까 두려웠다. 초등학교 고학년이 되면 어울리는 부류가 정해진다. 키가 큰 아이들은 큰 아이들끼리만 어울린다. 그놈들은 가끔 중학생처럼 굴기도 하고 같은 반 작은 아이가 다른 반 아이에게 맞고 오면 응징하고 오겠다며 쉬는 시간에 변소 뒤로 성큼성큼 나가기도 한다. 그들이 나누는 대화는 어른들의 이야기 같았고, 멋있어 보였다. 그 자식들이 어울리는 여자 아이들과도 친해지고 싶었다. 그들의 세계를 동경하다가 결국 그들과 어울리지도 못했을 뿐더러 어느덧 작은 아이들 사이에서도 왕따가 돼버렸다. 친구 춘식이는 나와 어울려주고 이야기를 나눠준 키 큰 무리중 유일한 친구였는데, 그것도 방과 후부터였다. 그를 이해한다. 어쨌거나 고마웠다. 춘식아.

10대 시절, 내 유일하고 간절한 소원이 있다면 그것은 작은 키를 벗어나는 것이었다. 하늘에 계실 어떤 분께 매일 잠들기 전 빌었던 것은 내 학급 등수만큼 가져가시고 대신 키로 보상해 주십사 하는 공평한 거래였다. 키 작은 내게 늘 희망을 준 것은 키 큰 우리 외삼촌이다. 약골에다 키도 작은 게 꼭 외삼촌 어릴 때랑 똑같다는 어머니의 말로 그나마 위안을 삼았다. 학교에서는 틈나는 대로 농구를 했고 방과 후엔 후미진 동네 담벼락에 분필로 금을 그어가며 혼자 높이뛰기 연습을 했다. 4학년 때 학교에 야구부가 생겼는데, 부모님의 반대로 야구부에 들진 못했다. 하기야 야구는 재미있긴 해도 키 크는 데는 별 도움이 되지 않는 운동이다.

신체검사일은 정말 죽기보다 싫었다. 반 아이들이 모두 지켜보는 가운데 공개되는 내 작은 키와 적은 몸무게, 낮은 시력과 야윈 가슴. 아, 신체검사 얘기는 그만 두자. 체력장이 있는 날엔 내 주변에 늘 친구들과 형, 누나들이 몰려들었는데, 5학년 중 쬐끄만 놈 하나가 멀리뛰기와 던지기를 정말 잘한다는 소문 때문이었다. 실제로 나는 6학년 형들을 제치고 전교에서 멀리뛰기와 던지기를 둘째로 잘하는 아이였다. 그러나 그들의 관심은 내가 저 멀리 던지는 공이 아니라 내 작은 키였다. 저렇게 작은 놈이 어떻게… 그런 거지. 동물원의 원숭이가 된 건 같아 창피했고, 악이 받쳤고 그래서 평소보다 더 멀리 공을 던졌다. 저 날아가는 공처럼 내 근심도 날려 버릴 수 있으면 좋으련. 중학교 시절 3년도 암울하고 외로운 시기다. 조바심을 낸다고 키가 크는 것도 아닌데 왜 난 그렇게 소모적인 고민에 소년 시절을 보냈던가. 하루에 우유 열 잔을 마시고 내내 설사만 했던 일도 더러 있다.

하느님이 간절한 내 협상 시도에 응답해 주셨던 것인지, 고등학교에 진학하면서 내 키는 1년에 10센티 이상씩 자라기 시작했고, 내 성적은 키와 반비례하여 추락하기 시작했다. 지금도 잊을 수 없다. 100점 만점 영어시험에서 33점을 기록하고 전교 석차가 289등까지 떨어졌던 그날 저녁에 방 벽에 뒤통수를 박고 하루가 다르게 자라는 키를 표시하느라 미친놈처럼 행복하게 웃었던 기억. 하느님 감사합니다. 키가 커서 제일 먼저 치른 의식은 내가 졸업한 초등학교 교정에 가서 덩크슛을 해보는 일이었다. 농구대를 뺏긴 아이들은 지치도록 덩크슛만 하며 놀고 있는 고등학생 형을 보고 혀를 차진 않았을지.

고등학교에 가면 작은 아이들과 큰 아이들 부류가 좀 더 명확해진다. 이제 난 큰 아이들 부류가 됐다. 하지만 그들 세계는 내가 생각했던 것처럼 신기하지도 멋있지도 않았다. 다 똑같이 철없는 아이들일 뿐이었다. 허탈감이 성취감 비슷한 것에 실려 밀려왔다. 인간은 참으로 간사한 동물이다. 원하는 것을 얻고 나면 이전에 절절히 품던 고민과 고통 따위는 모두 잊게 되니. 난 이렇게 키에 대한 고민과 함께 10대 시절을 건넜고, 작지 않은 키로 20대를 시작할 수 있는 행운을 얻게 되었다. 대학교 3학년 때 짧은 어학연수를 다녀왔다. 미국인 회화선생님이 나를 보고 “미스터 리 이즈 톨” 이라고 했는데 난 이 쓰잘데기 없는 말만 기억하고 회화표현은 다 까먹어버렸다. 결혼식장에서 사진 촬영을 할 때 사진사가 ‘키 큰 분들 뒤로 가고 작은 분들 앞에 서세요’ 라고 말하면 난 아직도 뒤로 갈 생각을 하지 못한다. 초등학교 선생님인 친구의 결혼식이 있어, 그 친구를 대신해 반 학생들을 인솔하여 예식장에 간 일이 있다. 초등학생들 사이에 둘러싸인 나를 보고 활짝 웃는 한 여인이 눈에 띄었다. 3학년 때 내가 좋아하던 그 키 큰 소녀였다. 여인이 된 소녀가 내게 말을 건넨다. ‘강룡이, 너 키 많이 컸구나’. 응, 그래, 희정이 넌 그대로구나. 이럴 줄 알았으면 우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