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례본에 훈민정음 자모 이름이 안 나오는 까닭

세종대왕님은 왜 훈민정음 해례본에 자음과 모음의 명칭을 따로 적지 않았을까. 아마도 적을 필요가 없었거나, 필요가 있다 해도 안 적는 게 백성들에게 더 유익하다고 여겼던 것 같다.

어떤 문자를 배울 때 그 명칭을 몰라도 읽고 적는 데 아무 지장이 없다. ‘비읍’ ‘니은’ ‘아’ 같은 명칭을 몰라도 ‘바나나’를 읽고 적을 수 있다. 프랑스어 문자 H의 명칭은 ‘아슈’인데 그걸 몰라도 H이 묵음이라서 발음하지 않는다는 건 직접 언어를 쓰면 다 알 수 있다. 그리스 문자 O의 명칭이 ‘오미크론’이라는 걸 몰라도 ‘오’ 발음이 난다는 건 쉽게 알 수 있고, 문자 생활에 전혀 지장이 없다.

순전히 추측이지만, 집현전 학사들과 회의를 하면서 자음은 ‘그, 크, 브, 프…’ 모음은 ‘아, 야, 으, 이…’처럼 부르면 충분하다고 판단했을 것 같다. 기록상으로는 중종 대의 언어학자 최세진이 <훈몽자회>에서 기존 상용 한자들의 발음을 활용하여 ‘기윽’, ‘니은’, ‘디읃’… 등으로 자음 이름 표기를 시도했다. 후대 학자들이 이를 잘못 해석하여 ‘기역’, ‘디귿’, ‘시옷’이 돼버렸다.

훈민정음 반포 시점에서 가장 중요한 것을 생각해보자. 빨리 배우고 빨리 실생활에 씀으로써 빨리 확산시키는 일이다. 백성들에게 새로운 문자 28자를 쉽게 깨우치게 하는 것이 목적이었으므로, 굳이 자모에 이름을 붙임으로써 28개 암기 사항을 추가로 만들 필요는 없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