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헤티우스(Ancius Manlius Severinus Boethius), 정의채 옮김, «철학의 위안», 바오로딸, 2007.
우리는 인생의 험한 파도와 폭풍우에 시달린다 해서 너무 놀라고 이상히 생각할 것이 없다. 우리는 가장 악한 자들의 비위에 거슬리도록 운명지워져 있는 것이다. 그들은 수효가 아무리 많을지라도 어떤 확고한 지도 이념을 좇아 움직이는 것이 아니고 다만 오류에 이끌리어 이리저리 제멋대로 놀아나는 것이니 경멸하는 게 좋다. – p. 21.
행운이 매혹적으로 보이는 것은 그것이 행복이라는 가면으로 사람들을 속이기 때문이고, 불운은 무상한 변화로 영속성이 없는 자신을 솔직히 드러내기 때문에 언제나 진실한 것이다. 전자는 사람을 속이고 후자는 사람을 가르친다. 전자는 행복의 가면 아래, 거짓을 즐기는 사람들의 정신을 속박하나 후자는 깨어지기 쉬운 행복의 본체를 알게 함으로써 사람들의 정신을 해방시킨다. 그러므로 너도 알 수 있으리라. 행운 속의 사람은 바람에 불리는 것같이 흔들려서 안정성이 없고 언제나 자기 자신을 헤아리지 못하나 불운한 사람은 정신을 가다듬어 준비하고 있기 때문에 불운과 부대낌으로써 현명해지는 것이다. 마지막으로 행운은 교태를 부려 인간을 참된 선에서 이탈케 하나 불행은 종종 사람들을 매질하여 참된 선으로 이끌어놓는다. 또한 너의 몸서리나고 견디기 어려운 불운은 네 친구들의 마음속을 드러내게 하여 거짓 벗과 참된 벗을 구별하여주니, 행복은 떠나면서 자기 것을 모두 집어가고 정작 네 것이었던 것만을 남겨놓는다. 너는 이런 것을 생각해봄이 쓸데없는 일이라고 여기느냐? – p. 7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