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로사와 아키라(黒澤明), 김경남 옮김, «자서전 비슷한 것», 모비딕, 2014.

영화의 길로 들어서기까지 내 삶이 우연이라기에는 너무나 교묘하게 준비된 것 같은 생각이 든다. 나는 탐욕스럽게 미술, 문학, 연극, 음악 등의 예술에 몰두하긴 했지만, 장차 내 앞에 그 모든 것을 쏟아부을 수 있는 영화라는 길이 있으리라고는 전혀 알지 못했다. 다만 우연치 않게 나에게 그런 길이 마련되었다고 생각한다. – 163쪽

나는 입사하자마자 조감독으로서 제일 처음 맡은 일 때문에 바로 그만두기로 결심했다. [···] 선배 조감독들이 그만두겠다는 나를 열심히 만류하면서, 작품도 이런 작품만 있는 게 아니고 감독도 이런 감독만 있는 게 아니라며 달래주었다. / 결국 나는 두 번째 일부터 야마모토 가지로 감독이 이끄는 팀에 들어가게 됐고, 거기서 선배들이 말한 대로 작품도 감독도 가지가지라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 내 얼굴에 고갯마루의 바람이 불어왔다. 고갯마루의 바람이란 길고 험한 산길을 오를 때 고갯마루에 가까워지면 산 저편에서 불어오는 시원한 바람을 말한다. 그 바람이 얼굴에 닿으면 고갯마루가 가깝다는 뜻이다. 그리고 곧 고갯마루에 올라서서 탁 트인 전망을 내려다볼 수 있다는 말이다. / 나는 카메라 옆의 감독 의자에 앉아 있는 야마 상 뒤에 서서 ‘드디어 여기까지 왔구나’ 하는 감회로 가슴이 벅차올랐다. 야마 상이 지금 하고 있는 일, 그것이야말로 내가 정말 하고 싶은 일이었다. / 나는 겨우 고갯마루 위에 다다랐던 것이다. 그 고개 너머로 탁 트인 전망과 일직선으로 뻗은 길이 보였다. – 167쪽

좋은 집을 지으려면 노송나무나 삼나무를 키워야 한다. 막대기와 판자 조각을 주워 와서 만들 수 있는 건 겨우 쓰레기통 정도다. – 171쪽

비판은 누구나 할 수 있다. 하지만 비판과 함께 구체적으로 정정하는 일은 웬만한 재능만 갖고는 절대로 할 수 없다. – 183쪽

내가 편집에 대해 야마 상에게서 배운 것은 이루 다 헤아릴 수가 없다. 그중에서도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것은 편집을 할 때는 자신의 일을 객관적으로 바라볼 수 있는 능력이 필요하다는 점이다. 야마 상은 고생해서 찍은 자신의 필름을 마치 가학증 환자처럼 잘랐다. [···] ‘저렇게 자를 거면 뭐하러 찍었지?’ 하고 생각한 적도 있었다. 나도 같이 고생한 필름이니까 잘리는 건 가슴 아팠다. 하지만 감독이 고생을 하건 조감독이 고생을 하건, 아니면 카메라맨이나 조명 담당이 고생을 하건, 그런 일은 관객이 알 바 아니다. / 중요한 건 군더더기 없이 충실한 영화를 보여주는 것이다. – 187쪽

야마 상은 배우들을 정중하게 대했다. 나는 가끔 엑스트라의 이름을 잊어버려서, 그들이 입고 있는 옷 색깔로 부르곤 했다.
“거기 빨간 아이”
“잠깐, 거기 파란 양복”
그러던 어느 날 야마 상에게 지적을 받았다
“구로사와 군, 그러면 안 돼. 사람에게는 이름이란 게 있다네.”
물론 나도 그 정도는 알지만 워낙 바쁘니까 이름을 알아볼 여유가 없을 뿐이었다. 하지만 야마 상은 지시를 내리고 싶은 배우가 있으면 그 사람이 엑스트라라도 “구로사와 군, 저 사람한테 가서 이름 좀 알아봐주게”라고 했다. 내가 그 사람의 이름을 야마 상에게 알려주면, 야마 상은 그때서야 그 엑스트라에게 지시를 내렸다.
“OO씨, 두세 걸음 왼쪽으로 가주세요.”
자기 이름이 불린 무명 배우는 몸 둘 바를 모른 채 감격했다.
– 190쪽

나는 연꽃잎이 벌어질 때 뭐라고 표현할 수 없는 상쾌한 소리를 낸다고 들었기 때문에, 아침 일찍 시노바즈 연못에 그 소리를 들으러 간 적이 있다. 그리고 새벽에 아침 안개가 피어오르는 가운데 그 소리를 들었다. 미미한 소리였지만, 정적에 싸인 아침 안개 속에서 들려오는 그 소리는 마음에 스며들 듯이 들렸다. – 222쪽

열악한 조건 속에서는 한 시간이 두세 시간처럼 느껴진다. 하지만 열악한 조건 때문에 그렇게 느낄 뿐 한 시간의 작업은 한 시간치 작업일 뿐이다. – 227쪽

나는 내 작품에 대해서 말하는 것을 좋아하지 않는다. 모든 것은 작품 속에서 말했으니, 그 이상 뭔가 말하는 것은 사족이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간혹 내가 작품 속에서 말했다고 생각하는 것을 관객들이 알아주지 않을 때면, 나도 모르게 설명하고 싶어진다. 그래도 참고 말하지 않는다. 왜냐하면 내가 말한 게 진실이라면, 누군가 분명히 알아주는 이가 있으리라고 믿기 때문이다. – 295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