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자가 자기 책 구매하기

출판사에서 받은 증정본이 다 떨어져서
대형 서점에 간 김에 몇 권 사려고 인문학 서가로 갔습니다.
이쯤이면 책꽂이로 옮겨갔을 법도 한데
기특하게도 여적 평대에 누워있는 녀석들을 보니 흐뭇합니다.
저자가 서점에서 자기 책을 사는 일이 썩 자연스러운 모습 같지 않아서
일단 매대 앞에서 잠시 서성거리며 주변인들의 동태를 살폈습니다.
날 아는 사람도 없는 것 같고 신경 쓰는 이도 없는 것 같습니다.
네 권을 한 손에 집어드니 옆 사람이 약간 이상하게 봅니다.
슬그머니 두 권을 내려놓습니다.
네 권 정도 필요하지만, 에잇 타이밍을 놓친 것 같아요.
난, 왜 이럴까요.
그냥 두 권만 들고 잽싸게 계산대로 갑니다.
줄을 서면서 혹시 아는 사람을 마주칠까봐 약간 긴장합니다.
드디어 계산 차례가 왔습니다.
책 밑둥에 빨간 도장을 찍으며
점원이 날 흘끔 봅니다. 움찔.
“회원 카드 있으세요?”라고 물었는데,
(니 책을 니가 사세요?)라고 묻는 것 같습니다.
약간 정신이 혼미해진 탓인지,
“아뇨, 없어요”라고 하면 간단히 계산이 끝날 것을
무의식중에 회원 카드를 내밀어 사태를 키웁니다.
“이강룡 회원님, 적립금 천원 쓰시겠습니까?”
점원이 다시 내 눈을 보며 눈으로 메시지를 보냅니다.
(다시 묻겠는데, 니 책을 니가 사냐구요…)
움찔움찔.
아, 네에, 사용해 주세요.
“포장 봉투 100원인데 하시겠어요?” 하는데,
(괜찮아요, 니가 니 책 사는 게 뭐 흉인가요?…)
라고 들립니다.
무사히 내 책을 내 돈 주고 사는 데 성공했습니다.
서점을 나서며, 난 왜 이 모양으로 생겨먹었나 자책합니다.